박상원 목사
박상원 목사

북한의 코로나가 심각하다는 뉴스를 접했다. 우리는 이제 코로나가 서서히 소멸해 가고 있는데 그곳은 이제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안그래도 지난 1월 지하성도들이 3명이 코로나로 생명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했던 터라 심각한 줄로는 생각이 되었다. 평양을 제외한 북한지역은 의료시스템이 사실 전무하다는 것이 탈북자는 물론 북한 현지 주민들의 솔직한 말이다. 이래재래 북녘의 동족들의 고난이 계속되고 있으니 마음이 무겁다.

1996년 고난의 대행군으로 300만 명이 아사한 이후부터 북한은 그들의 사회시스템(배급제도)가 붕괴되었고, 자력갱생이라는 대책으로 장마당을 통해서 그나마 연명이 되었다. 그러나 탈북의 러쉬로 가족간의 이탈이 심화되어서 가정도 심각할 정도의 수준으로 분리가 되었다는 것이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이다. 남한과 미주로 정착한 3만5천 탈북민들이 북녘의 가족들을 돕고 있는 것은 기적 같다.

이 모든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유의 사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라는 가치를 주었다. 그 자유의 사용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평화를 이루라고. 그런데, 인간은 그 자유를 인간의 욕심(사탄의 유혹)으로 죄를 선택하므로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졌고(선악과), 결국 인간간의 관계도 불화(형 카인의 동생 아벨 살인)가 시작되었다. 그 이후 역사는 선(하나님)과 악(사탄)의 대립의 역사가 지속되었다.

이 깨어진 평화를 봉합하려 급기야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인간세상에 보내셨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하나님을 그렇게 율법으로 신봉하던 유태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셨다. 그 이후 세상은 왕권이라는 힘과 깨어난 민중들간의 피나는 혁명의 역사가 계속되다 마침내 자유의 힘이 이겼다. 어렵게 되찾은 자유의 힘이 평등이라는 문제를 만나 다시 유혈사태를 맞게 된다.

한쪽은 힘(폭력)이라도 먼저 평등을 이루면 평화(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는 (좌)측과 절차적 시스템(평등한 투표)을 통해서 어느 정도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우)측으로 근현대역사가 다시 대립되기에 이르렀다. 한쪽은 100년 만에 자체 모순으로 먹는 문제와 평등은 여전히 퇴보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다른 한쪽은 시스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의 쏠림과 자유가치의 남발로 역차별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몸살을 앓고 휘청거리고 있다.

그래서 평화는 먼저 무리하게 평등을 이룬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무제한적 자유로 평등을 이룬다고 평화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먼저 서로 화해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성경은 평화가 아니라, 화평(和平))이라고 말한다. 인간들끼리 먼저 화해를 이루면 평등해 질 것이고, 평화도 만들어 진다는 뜻이다.

인간 안에는 죄와 선의 의지가 공존한다. 이 양자의 의지를 인간 스스로 도무지 화해시킬 수가 없다. 그래서 참 평화의 상태가 아니다. 이를 아시고 하나님은 화해의 중재자 예수님을 보내줬다.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과 배반한 우리를, 인간관계의 불화까지도 화해시키는 실체이시다. 이 진리가 복음이다. 북한과 남한의 통일도 이렇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화해(용서)를 먼저 이룰 때 참된 평화로 통일될 수 있다. 그래서 '복음통일'이라는 뜻이다.

"화평(和平)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義)의 열매를 거두느리라"(약3:18)

박상원 목사(기드온동족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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