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수 교수
가진수 교수

예배의 중요한 네 가지 중요한 기둥은 만남과 말씀, 성찬과 파송입니다. 그리고 성경적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결단 후 사명을 받아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예배자들은 이 같은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성경적 구조가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근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의 자리에 초청하시면 우리는 찬양과 경배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선포이자 설교입니다. 설교가 끝나면 주신 말씀에 결단과 헌신을 고백하며 예물과 정성을 드리는 봉헌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결단 후 세상으로 나아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준비의 시간이 파송의 시간입니다. 파송은 예배가 끝나는 것이 아닌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삶의 예배로의 진짜 예배가 시작되는 것이며, 영적 전쟁을 앞 둔 진군가와 같은 것입니다.

말씀은 기독교 예배의 가장 중요한 예전입니다. 종교개혁 이후 말씀은 예배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자 순서로 자리 잡았습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바로 말씀의 소중함과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래 하나의 글인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이후의 이스라엘 회복의 내용입니다.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무너뜨린 후 고레스 왕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해도 된다는 칙령을 내렸습니다(스 1:1-4).

좋은 지도자는 모두가 어디로 향해 가는지를 알아내고, 백성들을 잘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런 유형의 지도자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서에 등장하는 유다의 성직자이자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력은 절대 그런 유형의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지도력이란 하나님께 신실하고 백성들이 체계적으로 돕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역대기 마지막 부분에서부터 오십년이 넘는 망명생활 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지속된 이스라엘 예배의 역사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바벨론에서 상대적으로 번영을 이루며 살았기 때문에 황폐하고 적막한 땅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와 안전을 포기해야만 하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생각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는 그 땅에서 다시 한번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망명기간 동안 성전에서 예배 드린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전을 재건하는 것에 대해 그 지역의 많은 권위자들은 강력하게 반대했으며 성전 건축에 대한 많은 문제점들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재건하기로 선택했고, 새로운 성전의 기초가 놓였을 때 사람들은 크게 찬양하며 악기들을 연주하여 그들의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에스라는 현지 관리들이 성전의 완공을 방해하여 많은 어려운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다리오 왕의 명령으로 성전 건축을 진행할 수 있었고 성전은 곧 완공되어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또 다른 어려움은 에스라가 이교도 여인과 결혼한 유대인 남자에게 유대교가 아닌 아내와 이혼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율법을 손상시키고 순결한 예배가 부패된다고 맞서면서 시작됐습니다. 에스라의 이 말은 일부 유대인 지도자들을 화나게 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아내와 이혼하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기로 했으며 에스라의 말에 따라 이교도 아내들과 이혼했습니다.

유다의 이웃한 족속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재건하는 회복 사업은 마침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스 3-6장). 그리고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집에서 감격적인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오랜 기간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예배자라면 주일에 드리는 예배도 이러한 가슴 벅찬 감동과 기다림이 있어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성전’으로 시작하셨다는 사실은 예배의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성전이 완성된 후 약 50여 년 동안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력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회복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스 7-10장, 느 1-13장).

제사장이자 율법 교사인 에스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치고 실천함으로써 유다의 영적 회복을 촉구했습니다. 페르시아 왕 정부의 관리였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도록 사람들을 격려했으며 총독의 직분으로 유다의 회복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와 같이 느헤미야도 하나님에 대한 열정적인 마음을 가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느 1장).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금식을 하며 간절하게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 1:4)

느헤미야의 기도의 자세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기억해야합니다. 첫째는 어떤 기도이든 먼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원하심, 존귀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는 것이며, 우리가 간구하는 기도의 목적과 방향, 응답, 우리의 믿음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느 1:5)

둘째는 회개입니다. 어떤 일을 당할 때 그것이 절망이든 역경이든 어떤 어려움이든 우리의 잘못을 찾아 겸손하게 고백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느 1:6-7)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가 바벨론 포로로부터 그의 선조들의 땅인 유다를 향해 떠나면서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느헤미야는 가장 먼저 성벽을 재건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의 일부 이방인 관리자들은 그 계획에 반대하며 갈등을 일으키려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성공적으로 준비했고,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완성하기 위해 유대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제사장 에스라가 진행하던 주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는 일을 이어갔습니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수문 앞에 모였을 때 에스라와 그의 동료들은 율법책을 낭독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자백하게 했으며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일상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는 것은 점점 분주해지는 우리 삶의 여정에서 쉽지 않습니다. 주일에 예배 드리며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모습이 우리의 일상에서 지속되지 않는 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의 예식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가장 중요한 목적인 예배는 우리의 삶에 언제나 이루어져야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는 것은 우리의 영적 양식이며 예배자들에게 늘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영적 운동과 같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회복의 최고 정점은 성전과 성벽이 재건된 후에 왔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힘을 합해 갱신하며 민족을 이끌었습니다. 부흥은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람들에게 읽어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의 첫 번째 반응은 죄에 대한 비탄으로 인해 우는 것이었습니다(스 10:1, 느 1:4). 그러나 회개와 애통함이 당연함에도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사람들에게 먼저 기뻐하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느 8:10).

초막절 축제를 기쁘게 보낸 후에,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다시 모여 그들 전체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느 9:1-38). 고백 후 그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 성전 제사에 관한 구체적인 약속들을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했습니다(느 10:1-39).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서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고 신실하게 축복하시는 오직 한 분뿐이시며 영광스럽고 거룩한 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계속되는 불성실에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통해 심판하셨습니다(느 9:30). 그러나 그때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을 기대하며 찬양합니다.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느 9:31). 우리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시면서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이시면서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시며 영적인 마른 뼈에 새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날마다 새로워져야하며, 그분의 구원의 말씀으로 기뻐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그리스도의 새 언약 안에서 매일 예배자로 살아가며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우리 자신을 헌신해야합니다.

느헤미야서 마지막 장은 율법을 더 보강하기 위한 개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현지 지도자들을 임명하였고 성전 예배를 전담할 레위인들을 조직했으며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릴 음악가들을 지정했습니다. 그는 성스러운 용도로만 사용하기 위해 성전의 방들을 순결하게 했으며, 레위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십일조를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거룩성을 위해 이방 사람들과의 결혼을 금지했습니다. 좋은 지도자였던 느헤미야는 자신의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명예와 권력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오직 백성들의 예배의 기초를 굳건히 세우기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느헤미야의 마지막 요구는 하나님의 기억과 축복이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느 13:31)

예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정하시는가?’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만큼 우리 피조물들에게 가장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평생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으로 살면서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등의 주옥같은 찬송을 10,000여 편 작사한 찬송가의 여왕 패니 크로스비(Fanny J. Crosby, 1820-1915)의 코네티컷 주 브리지포트 묘비에는 다음의 한 줄이 쓰여 있습니다.

“She hath done what she could”(그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했다.)

패니 크로스비의 이 묘비명은 마가복음 14장에 나오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에 집에 식사하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던 말씀입니다. 옥합을 깨뜨릴 때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향유를 허비했다고 말하며 그 여자를 책망했을 때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 패니 크로스비의 묘비의 글입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막 14:8)

에스라와 느헤미야에게 맡겨진 일은 허물어진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높은 지위에 있었기에 바벨론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고 행복을 누릴 수 있었지만 하나님이 이들에게 주신 사명을 최고 우선수위에 두었습니다. 말씀으로 백성들을 깨우치고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며 백성들을 새롭게 세우라는 임무를 세상의 평안과 행복보다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당신은 이 땅위에서 어떤 사명이 있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편안함과 욕망, 즐거움을 가까이 했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줍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이 땅 위에서 예배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명령입니다.”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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