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 문항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묻고,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성경의 첫 말씀인 창세기의 목적은 ‘예배’입니다. ‘예배’라는 말이 통용되기 위해서는 예배를 받는 대상과 예배하는 자가 있어야하는데, 창세기는 창조하신 창조주와 예배하기 위해 지음 받은 예배자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창세기는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조하신 마지막 날에 하나님은 세상을 보시고 “참 좋았다”라고 하셨습니다. “참 좋았다”는 말씀은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고 알리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떤 재료를 통해 예술적인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 작품을 보며 감탄합니다. 그것이 그림이거나 보이는 조각품, 또는 건축물일 경우 더 감동합니다. 그리고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을 우러러보며 존경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온 우주와 남자, 여자를 창조하시고 아름다운 꽃과 나무, 생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경하고 경배하는 이유는 바로 이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자라는 것은 예배 받기에 합당하신 위대하심을 나타냅니다.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자격이 있는 예배 대상자는 전능자이자 왕의 왕, 존귀하신 분이어야 하는데, 창세기는 바로 하나님께서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세계적인 찬송가 작곡자이자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이작 와츠(Issac Watts, 1674-1748)는 ‘창조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최초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기억하며 “주의 위대한 능력을 노래하리(I sing the mighty power of God)”를 작곡했습니다. 1715년에 쓴 이 찬양은 하나님이 이 땅에 허락하신 권능과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창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지 이 찬양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의 위대한 능력을 노래하리 산을 만드시고
바다를 만방에 보내시며 하늘을 펼치셨네.
주의 지혜를 노래하리 해를 명하사 낮을 다스리고
달은 주의 말씀에 따라 밝게 빛나며 모든 별들도 그의 말씀에 복종하네.

주의 선하심을 노래하리 주는 이 땅을 양식으로 채우시고
그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만드셨으며 그것들을 선하다고 칭하시네.
내가 눈을 두는 곳마다 주의 경이로움을 보네.
걷고 있는 딸을 보아도,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어둡고 암흑으로 불완전한 이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만드신 건축가이자, 물리학자이자, 생물학자이신 하나님께 우리는 존경을 담아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그 위대하심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 그것이 예배입니다. 이사야 43:21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창조는 예배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지음 받은 예배자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책무인 우리 예배자들에게 예배는 단지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특권이자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택하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도 더 위대한 이유는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랑이라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해 영원한 죄악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이렇게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위대한 나라를 시작하시는 약속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들은 거룩함을 통해 온 땅의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의 구원자이자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으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를 통해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에게서 끊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피조물들과 교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궁극적으로 십자가를 통해 구원으로 이루어지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헌신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기 원하시는 신성한 계획이며, 사랑의 순종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이 요구되는 특별한 관계를 나타냅니다.

계속해서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어떻게 성도들과 악한 자들을 사용하시는 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하나님은 가끔 악한 자들과 같이 행동하는 성도를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이기적인 이득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결코 좌절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그 약속이 언젠가 완성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이자 예배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피조물로서 순종적인 삶을 살며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의 주권적인 목적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성취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을 비롯해 바벨의 오만함,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을 벌하시기도 하시지만, 때때로 침묵하시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창세기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사랑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의 이야기에서 보듯 결국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매 순간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계심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으며,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나아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원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세속적 타락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는 상태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간절한 간구와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에 대해 자비와 용서로 응답하시며, 예배는 이에 대한 적합한 응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비를 구하는 것에 대해 기꺼이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아브라함을 사랑으로 응답해주신 것처럼 지금도 우리를 언제나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나옵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첫 번째 예배로 기록됐습니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창 4:4)

이 말씀 중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아베의 제물 이전에 ‘아벨과’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참 제사는 제물보다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므로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음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우리가 아무리 많은 중요한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해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깨닫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수 있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아벨과 같이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에녹은 참된 예배자로서의 모범입니다. 성경에는 그가 짧게 등장하지만, 하늘로 들려 올라간 두 사람 중 한사람입니다. 성경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

여기서 ‘동행하더니’의 영어 표현은 ‘walked’입니다. 이 원문은 ‘하나님과 동행하다’는 뜻으로 ‘예배자로 평생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히브리서 11장에 조금 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에녹은 동행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참된 예배자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최상의 예배자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만큼 우리 피조물들에게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최대 목적이 되어야합니다.

창세기는 믿음의 예배자들이 많이 언급됩니다. 노아는 햇볕 쨍쨍한 곳에 배를 지었으며,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고, 이삭과 야곱, 요셉을 비롯한 허다한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쁘시게 했습니다. 이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순종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시작됩니다. 순종은 예배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순종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22)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창 12:4)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진실을 다해 예배한다는 것과 같으며 그것은 나의 생각을 온전히 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적절한 응답으로서 기쁨이 있는 예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자신의 생각과 상식을 버리는 위대한 예배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것을 버릴 때 예배의 제단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삼상 15:22).

순종은 믿음의 다른 말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무리 옳아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예배자란 내 생각과 뜻이 하나님의 뜻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카이로스의 시간에 우리에게 많은 축복을 성령님을 통해 부어주시려고 하십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 나의 영적 주파수가 맞춰져 있는, 하나님과 항상 교제하는 예배자의 상태가 되어야합니다. 창세기는 특히 하나님의 뜻에 맞춰 순종하며 살려고 했던 믿음의 예배자들을 보여주는 말씀의 책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기억하며 자신의 안락을 포기하고 자신의 거처를 떠나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진정한 예배의 자리를 위해 지금의 안락과 편안함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 가능하지 생각해보아야합니다. 우리는 참된 예배를 위해 내가 가진 소유와 지위를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나의 생명을 드리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기쁨의 제물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참된 예배는 우리를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위로해줍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우리의 마음과 일생을 하나님께 모두 드리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단지 주일에만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어야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예배가 되어야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뛰어난 예배 학자였던 로버트 웨버(Robert E. Webber) 박사는 예배란 “하나님이 하신 창조의 사역과 구원의 사역,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으심, 부활, 다시 오심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배의 본질인 이 모든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과거의 말씀들을 지금의 시간, 주일 예배에 기억하고 재현하며 감사로 찬양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 예배 이후, 즉 오늘의 시간 이후 시작되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삶을 예배로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격적인 예배이자 온전한 예배이며, 피조물인 예배자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본질이자 내용이라면,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일들을 경외함으로 높여드리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한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주일 예배 등의 공예배뿐 아니라 모든 예배를 포함하며, 더 나아가 우리 삶의 예배를 통해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한편 창세기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예의를 알려줍니다. 희생물과 제단, 돌기둥, 전제, 할례, 경건 의식, 서약 등은 예배 예식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아벨과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하나님을 마음뿐 아니라 예를 갖춰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주일 예배를 포함한 여러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경건을 갖추고 마음과 뜻을 모아 예배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진수 교수
가진수 교수

창세기는 예배의 시작이며 예배의 모본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배자로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 아벨,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그들의 순종과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중심을 통해 참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지금의 복잡하고 현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혜안을 줍니다. 순종과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우리의 예배를 통해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예배자로 부르신 하나님께 존귀와 찬양과 영광을 영원히 돌려 드려야합니다.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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