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잠겨있는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뉴시스
생각에 잠겨있는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뉴시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돌연 선거전 중단을 선언하고 칩거에 들어가면서 정의당이 충격에 휩싸였다.

이에 정의당은 선거대책위원장 이하 선대위원 전원이 일괄 사퇴하는 '극약 처방'을 선택했지만, 심 후보의 대선후보 지지율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데다가 진보 후보 단일화도 물 건너간 겹악재 앞에 마땅한 타개책이 없는 형국이다.

결국 이번이 네번째 대권 도전인 '진보정치의 얼굴' 심 후보와 '20년 역사' 진보정당의 정치적 명운이 나란히 벼랑끝에 선 것이다.

정의당 이동영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당 선대위는 현재 선거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선대위원장을 비롯한 선대위원이 일괄 사퇴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선대위원장을 포함한 선대위원 일괄사퇴는 사실상 선대위를 해체하고 리빌딩을 통해 전면적인 쇄신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심 후보는 전날 정의당 선대위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현 선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이 시간 이후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숙고에 들어갔다"고 밝힌 뒤, 현재까지 일산 자택에 칩거 중이다.

앞서 여영국 정의당 대표와 이은주 의원은 심 후보를 만나기 위해 13일 오전 9시30분께 국회의원회관의 심상정 의원 사무실을 찾았지만 빈손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지도부와 심 후보 측근들이 전화를 걸었지만 후보 본인이 휴대전화 전원을 꺼둔 탓에 연락이 닿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 대표는 심 의원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후보가 연락이 안 돼 답답한 상황"이라며 "혹시나 의원실은 후보와 소통이 되고 있는지 파악하러 왔으나 의원실도 후보의 전화가 꺼있어 소통이 안되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심 후보의 전날 선거전 전면 중단 결정은 여영국 대표를 포함한 극소수와의 논의에서 결정됐다. 가까운 측근들도 입장문을 보고서야 상황을 알게 됐다.

후보 본인도 전날 오후 7시 채널A 뉴스 출연 일정까지 정해진 일정을 정상적으로 소화했고, 한시간 뒤 선언을 한 셈이다.

이와 관련, 여 대표는 "원래 지난해 11월에 1차 선대위를 발족할 때 1월 중하순 경 2차 선대위를 구성하기로 했었다"며 "우리도 이 상황이 만많지 않기에 2차 선대위 구성때는 어려운 현 상황을 타개할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고 최종적으로 후보를 만나 상의하려 했는데 후보가 어제 숙고에 들어가겠다고 말해 당황스러웠다"고 전했다.

그는 "숙고의 시간이 좀 길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루이틀 선거운동을 더 한다고 후보가 그에 대해 마음을 두지는 않을 것 같다. 내게도 그런 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현 상황을 미뤄짐작할 때 길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각의 후보 사퇴설에 대해선 "어떤 판단을 하더라도 당은 후보의 판단을 존중하려 한다"면서도 "그동안 후보가 이번 대선 출마가 자신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몇번을 말했다. 그 점에서 나는 심 후보를 믿는다"고 했다.

후보 단일화를 통한 사퇴 없이 완주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도 "후보가 모든 것을 열어놓고 판단하겠지만 본인이 '대선후보로서 마지막 소임'이라고 몇차례 밝혔기 때문에 마지막 소임을 다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이어 "통화가 안 되면 집에도 찾아가볼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의당은 오전 여 대표와 당3역(원내대표-정책위의장-사무총장)을 중심으로 1차 회의를 한 후 오후 1시 대표단과 의원단 연석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후보직 중도 사퇴 가능성도 제기되나 대선 3개월 후 6월 1일 치러지는 제8회 지방선거를 고려하면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직전 대선 완주를 포기할 경우 지선에 출마할 일선 후보들의 선전도 언감생심인 탓이다.

이런 가운데 돌연 선거전 중단을 선언한 배경으로는 한자릿수대 바닥을 면치 못하는 지지율이 꼽힌다. 4선 의원에 네번째 대선 출마인 심 후보 본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피로감과 의제 주도력 부재가 맞물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나온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기관 합동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심 후보 지지율은 3%로 최하위에 머물렀다.(10~12일 실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심 후보 본인도 전날 한국기자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민심이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대안으로서 국민들에게 아직 믿음을 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답답하고 많은 고민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정의당·진보당·녹색당·노동당·사회변혁노동자당 등의 노동계-진보진영 후보 단일화도 사실상 무산 수순을 밟으며 벽에 부딪혔다.

이때문에 최근 정의당 내에선 "좀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젠더이슈에 민감한 젊은 여성층에 지지를 받는 류호정, 장혜영 의원을 선거 전면에 내세워 흐름을 바꾸는 방안도 제기됐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위기가 문제의 근원인 이상 타개책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가의 판단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초 정부여당과 인사청문회, 입법 정국에서 '비판적' 협력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했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등에서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며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심 후보의 당대표 시절 '사상 첫 진보정당 교섭단체(20석) 달성'이라는 목표 하에 명운을 걸고 밀어붙였던 연동형 비례대표제 '4+1(민주당+군소4당)' 공조는 민주당 마저 위성정당을 출범시키는 참담한 실패로 귀결됐다.

여기에 지난 총선에선 지역별 후보 단일화 없이 대부분의 지역에서 완주했지만 민주당의 180석 석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세대교체를 표방하며 나선 진보정치 2세대 김종철 전 대표는 초유의 성추행 파동으로 몰락하며 진보정당에 치명상을 안겼다.

여기에 높은 정권교체 여론에 힘입어 보수·중도정당이 대선판의 키로 떠오르며 진보 진영의 존재감 자체가 소멸되다시피 했다. 결국 선명한 정체성도, 정치적 영향력도 모두 놓치며 곪았던 상처가 대선을 계기로 터지며 진보정당이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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