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손봉호 교수 ©노형구 기자

2020년 초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한국교회와 사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본지는 새해를 맞아 최근 서울 강남구 소재 밀알학교(이사장 홍정길 목사)에서 서울대 사회교육과 명예교수 손봉호 장로(84)를 만나 인터뷰했다. 손 교수는 본지에 한국교회의 윤리, 포괄적 차별금지법, 방역당국의 대면예배 제한조치에 대한 교회의 저항권 행사, 올해 3월 대선 등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장 강학근 목사) 소속 영동교회(담임 정현구 목사) 장로이기도 하다. 다음은 손봉호 교수와의 일문일답.

-한국 기독교의 윤리적인 실패란 대표적으로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교단 총회에서의 금권선거, 교회 세습이라든가, 목회자의 성범죄, 공금횡령 등이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법을 어겼거나 나쁜 짓으로 재판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있다. 일반인들에게 기독교가 윤리적인 공동체라는 인상을 주지 못한 것이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성경이나 성경 밖이나 윤리의식의 기초는 두 가지다. 첫째, 거짓말하지 않는 것, 둘째, 공정성이다. 여기서 거짓말이란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상대방을 오해하고 착각하도록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공정성도 마찬가지다. 타인을 억울하게 하는 모든 행위가 공정성에 어긋난다.”

-칼뱅은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빠뜨린 윤리적 계명의 실천이란 가능하다고 보나?

“세상과 기독교 윤리는 그 내용이 같지만 동기는 다르다. 십자가 은혜를 빠뜨린 채 윤리적로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성경적 사랑은 실천할 수 없다. 성경적 사랑이란 희생을 전제로 한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행하셨다. 세상의 윤리란 철저히 자존심이나 윤리적 의무 때문에 실천한다. 전부 자기 공로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수님께 빚진 자로서 그리스도인에게 율법의 실천이란 의무다. 신자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그 동기로 율법을 실천해야 한다. 여기서 율법이란 십계명이다. 정직과 공정은 십계명의 총망라다.”

-윤리적 실천성을 너무 강조하면 복음이 주는 용서·자유 등을 퇴색시켜, 그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신자는 은혜로 구원 받는다. 그러나 은혜로 구원받는 사람은 윤리적이어야 한다. 윤리를 무시하는 사람이 과연 믿는 사람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야고보서에도 그렇게 나왔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구원받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러나 과도한 윤리적 실천의 강조는 소위 바리새인처럼 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바리새인처럼 보여주기 위한 윤리라면 진짜 윤리는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윤리란 사랑이다. 율법을 지키는 게 곧 사랑이다. 십계명의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 사랑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이웃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강조하셨다.

때문에 정의의 연장선상에서 기독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 도와야 한다. 구약과 신약에선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하고 병든 자·소외된 자들을 적극 돌보라고 나왔다. 그리고 이를 다 지켰어도,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게 은혜로 구원받는 삶이다. 구원도 계명을 지키는 것도,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다.”

-지난해 10월 15일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종교개혁 504주년 포럼에서 손 교수님은 한국교회 타락의 원인 중 하나로 ‘값싼 은혜’를 말씀하셨다. 이에 대해 추가 설명을 부탁드린다.

“‘나는 은혜로 구원받아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잘못된 의식을 지적한 말이다. 즉 ‘은혜로 구원받은 삶이기에 행실이 선할 필요는 없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값싼 은혜의 원인은 무엇인가?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게 너무 힘드니까. 쉽게 구원받는 길을 선택하려는 유혹이 그 원인이다. ‘나는 죄인이니까’, ‘올바르게 살 수 없으니까’ 등의 구실을 내세운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을 앞세워 성경이 말하는 실천을 외면한다. 사실 한국사회는 도덕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그런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살려면 많은 손해를 봐야 한다. 거짓말, 뇌물 공여 등이 빈번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것들을 일일이 안하려고 노력하니 힘든 것이다.”

[인터뷰]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손봉호 교수 ©노형구 기자

-그렇다면 성경말씀에 기초한 ‘값비싼 은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은혜로 구원받은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 말씀을 지켜내고자 애쓰는 삶이다. 그 핵심은 정직과 공정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돈의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 현대인을 부정직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돈이다. 돈을 무시할 줄 알아야 한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나도 성경 말씀대로 살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해서, 말씀 순종을 요구하는 성경적 진리는 부정될 수 없다. 성경이 요구하는 일은 마땅히 행해야 한다. 아울러 신앙은 내 축복, 내 구원에만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구원받은 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함이다. 웨스트민스터고백서 제1장에 나온 인간의 존재 목적이란 구원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나왔다.”

-앞선 종교개혁 504주년 포럼에선 한국교회 타락의 또 다른 원인으로 기복적 번영신앙을 제시하셨다.

“예수 믿는 목적이 온통 세상 복을 구하는 데 집중돼 있는 것이다. 한국은 샤머니즘 전통이 강하다. 귀신에게 빌어 받는 복은 세상 부귀영화다. 그런데 이런 기복적 요소가 한국교회에 깊이 침투해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교회 신자들은 착한 일을 하고 말씀대로 살며 노력으로 부자 되는 것보다, 기도해서 부자 되는 길이 더 쉽다고 은연중에 생각한다. 이를 기복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르치는 교회엔 교인들이 많이 몰린다. 하지만 정직과 공정을 가르치는 교회엔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기도의 핵심은 세상 성공이 아니다. 말씀을 잘 지켜내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다.”

-한국교회에 기복신앙이 팽배한 원인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과거보다 풍요를 구가하는 시대다. 그러다 보니, 과거보다 하늘 소망이 줄어든 게 아닐까 생각 된다. 과거 50~70년대 한국교회는 천국에 대한 찬송가를 많이 불렀다. 지금은 장례식 때나 부른다. 물론 하나님 나라는 내세와 함께 지금 여기서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도 포함한다. 우리 행동과 삶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가 복음이 지향하는 초월적인 가치관보다 돈·권력 등 세속적 가치관을 쫓는다면, 세상과 다를 바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기복신앙의 원인은 한국교회가 하늘의 가치관, 즉 사랑·희생·비움 등 십자가의 정신에 투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신뢰도가 높았던 때는 언제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일제치하에서 기독교의 3.1운동·사회적 계몽 운동과 지난 70-80년대 진보적 기독교 계열이 참여한 민주화 운동 등을 제시하고 싶다. 그땐 기독교가 나라와 공익을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면 대사회적 신뢰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교회 성도들이 시급히 회복하고 실천하며 순종해야 할 하나님 말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십자가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손해를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이익을 위해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교회는 손해보고 희생하는 십자가 정신을 신자들에게 적극 가르쳐야 한다. 사람들이 지지하지 않는 성경 말씀은 빼놓고 가르치면, 그 자체로 비(非)진리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를 지켜야 한다.”

-교수님은 1989년 기독교시민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설립의 주축 멤버셨다. 그런데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실패했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진행한다면, 한국교회를 좀 더 윤리적으로 정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뜻하는 바는 이뤄내지 못했다. 활동 초창기엔 정직과 검소운동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한국교회는 절제보단 사치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했다. 예배당 건축·각종 행사 등을 사치스럽게 벌여왔다.”

[인터뷰]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손봉호 교수 ©노형구 기자

-현재 한국교회가 개혁돼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십자가 정신대로 살자. 너무 세속적 성공은 바라지는 말자. 큰 예배당을 세우는 일은 십자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교인 수·헌금 액수 등을 목회의 성공 기준으로 여기는 태도도 문제다. 이는 기독교 정신과 일치하지 않는다. 한국 목회자들부터 이런 태도를 내려놓아야 한다. 세속적 성공을 성경이 말하는 성공으로 일치시키는 가르침이나 분위기를 개혁해야 한다.”

-교회가 한국 사회에 어떤 방향성과 희망을 줄 수 있을지 한 말씀 부탁드린다.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약점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보완해야 한다. 기독교엔 그런 의무가 있다. 가령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윤리의식이다. 우리나라는 경제·교육·예술 등 분야에선 전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어디서 제일 뒤떨어져 있는가? 바로 윤리다. 한 사회의 윤리는 그 사회의 지배적인 종교가 책임져야 한다.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종교가 기독교라면, 윤리문제는 기독교가 보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사람들처럼 돈을 좋아하는 민족도 없다. 돈에 미쳐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물질주의를 초월하는 종교다. 이 문화를 바꾸는데 교회가 앞장서야 했다. 한국사회의 약점을 바꿀 수 있는 성경의 가르침이 있는데도, 한국교회의 세속화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하늘의 가치관을 쫓지 않고 십자가의 정신에 투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한국교회는 사회가 철저히 인지할 수 있도록 기부문화에 앞장서야 한다.”

-끝으로 새해를 맞아 한국교회와 사회를 향해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 기독교인들은 한국 민주주의를 건져내야 한다. 민주주의의 큰 위기는 포퓰리즘 곧 인기영합주의이다. 국민들은 각자가 받은 한 표의 권리를 잘못 사용하는 것 같다. 내게 이익을 주는 후보에게만 표를 몰아준다. 기독교인들도 이러한 포퓰리즘에 넘어가면 나라가 완전히 망한다. 이렇게 망한 나라로는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등이 있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완전히 망했다. 올해 대선에도 여전히 포퓰리즘이 대두되고 있다. 이번 투표에선 기독교인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념에 휩쓸리지 않고 포퓰리즘을 경계하면서 투표해야 한다. 먼 미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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