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교회 홍석균 목사
홍석균 목사

디모데 전서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이다. 바울은 학문과 신앙을 겸비한 노련한 사역자였다. 반면 디모데는 목회 초년병이었다. 이 목회 초년병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니, 바울의 입장에서 얼마나 걱정이 되겠는가? 그뿐만 아니라 당시 에베소 교회는 이단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이 서신을 통해 목회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서 목회적 가르침을 준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의 상황은 어떠한가? 14절에 나와 있다.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사실 바울은 디모데가 목양하고 있는 에베소 교회로 가고자 했다. 그런데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학자들에 따르면 지금 바울이 감옥에서 잠깐 풀려났을 때였다고 한다. 그러니 어쩌면 감옥에서 당한 심한 고문 때문에 몸을 회복해야 했을지 모른다. 혹은 마음의 안정도 찾아야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지 않고), 신기하게도 바울은 디모데가 있는 에베소 교회로 속히 가기를 바랐다 왜 그런가? 바울은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교회를 무엇이라고 하나? 15절 후반 절에 나와 있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인간이 주인 노릇을 하는 곳이 아니다. 또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지는 곳이라고 뜻이다. 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곳인가?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사랑했던 것이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통해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았다. 초등학교 3~4학년쯤으로 기억하는데, 어머니는 성미를 교회에 가지고 가셨다.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항상 어머니는 밥을 지을 때면 성미 주머니에 몇 숟가락씩 쌀을 담으셨다. 그리고 그 성미 주머니를 교회에 가지고 가셨다. 또 집에 있는 수세미며, 빨랫비누며 교회에 가지고 가셔서 쓰셨다. 어머니께 물었다. ‘교회 걸로 쓰면 되는데, 왜 집에 있는 것을 왜 가지고 가세요?’ 어머니는 ‘성전에 있는 것은 아껴야 해’라고 대답하셨다.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어머니는 가난해서 헌금을 많이 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교회 사랑을 표현하신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저도 교회 물건이라고 하면 소중하게 여기는 습관이 배게 되었다. 그리고 본당 안에서는 죄송합니다만 코딱지도 파지 않는다. 성전은 깨끗하고 소중한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코를 파면 교회 휴지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정 못 참고 코를 파게 될 때면 주머니에 넣어서 집에 와서 버린 기억이 난다.

그렇다. 바울에게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컸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에베소 교회로 달려가고 싶었던 것이다. 어제 많은 일로 피곤하고 마음도 어려웠던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새벽에 교회를 나와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귀하게 보신다. 이제 알겠는가. 바울이 그토록 에베소 교회로 가기 위한 것은 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바울이 자신의 제자 디모데를 믿음으로 세우기 위함이었다. 디모데는 지금 목회 초년병이다. 그래서 스승 바울이 디모데를 어떻게든 세우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이 새벽에 나오는 여러분은 어떻게 보면 영적인 스승이다. 가정에서 영적인 스승, 교회에서 영적인 스승이다. 여러분도 바울처럼 처한 상황이 참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바울처럼 가정에서 교회에서 영적 스승이시니, 다음세대들을 디모데와 같은 지도자를 세우는 데 애를 쓰셔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5절 전반 절에 그 답이 나와 있다. 15절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함이니...”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세우기 원한다면 아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어야 한다. 지난 행축에 많은 사람들이 다락방으로 초대되어 왔다. 그들은 교회가 어색하다. 용어도 낯설고, 모임도 낯설지 모른다. 그러니 그들에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어야 한다. 우리의 가정에서도 화내지 말고 사랑으로 아이들에게 반복해서 가르쳐 줘야 한다. 바울도 디모데 전서로 가르쳐 주고 안 되니까 후서까지 또 써서 가르쳐 준 게 아닌가? 여러분! 하나하나 가르쳐 주면 반드시 영혼들과 자녀들이 변화될 줄로 믿는다.

저는 한성교회 있으면서 많이 배운다. 저도 처음 왔을 때는 마치 조련되지 않은 말이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했다. 그러니 실수도 잦고, 문제도 많았다. 그때 마다 담임 목사님이 부르셔서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도 저는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았다. 그러면 답답해하실 것 같은데, 가르쳐 주시고 또 가르쳐 주셨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쳐 주듯이, 가르쳐 주셨다. 물론 지금도 잘 모른다. 그런데 희미하지만 조금 아는 것 같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여러분! 우리도 영혼들에게 하나하나 가르침으로 사랑을 표현해 보자. 그 때 16절에 나오는 것처럼 바울의 외침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로 시작되는 예수그리스도를 찬송이 우리와 우리가 세운 영혼들에게 함께 울려 퍼질 것이다. 이런 축복이 공동체에 넘쳐나길 축복한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 디렉터)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홍석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