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복 선교사
이민복 선교사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북부지역 농작물연구를 위해 함경북도 화성군(명간) 룡덕리에 있을 때이다.

과학원 강냉이연구소 룡덕분장이라 한다. 분장 기숙사에서 숙식하였다. 한창 먹을 나이 때이니 항상 허기졌다. 힘이 넘치던 때라 봄철부터 열심히 기숙사 주변에 작물들을 심었다. 돌 자갈 땅이니 다른 작물을 심기 어려워 웅덩이를 곳곳에 파고 두엄과 좋은 흙을 날라다 넣고 떡호박(단호박)을 심고 물도 주고 잘 가꾸어 키웠다. 가끔 닥치는 오호쯔크 냉기단의 영향을 안 받으면 낮과 밤 차이가 뚜렷한 지역이라 의외로 농사는 잘 되었다.

드디어 떡호박을 먹게된 가을이 왔다. 하지만 식모아마이(북쪽 사투리)는 한 두번 삶아주고는 도무지 막무가내이다. 국가 연구사의 체면도 있어 보채기도 그렇고 하여 한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기숙사 주변 떡호박을 따다 주면서 말은 내가 일하는 시험포 주변의 것을 따왔다고 하였다. 그러자 식모아마이는 몹시 반색하며 얼렁 삶아주면서 하시는 말씀이 “시험포 것이 기숙사 것보다 확실히 맛있다”고 한다. “아! 그러시냐고 그럼 열심히 시험포 것을 따오겠다”고 했다.

식모아마이는 아 그러라고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기숙사 주변 떡호박을 먹고 싶을 때마다 따다 드렸다. 사실 시험포에는 떡호박이 없었다. 기숙사 주변 떡호박은 내가 직접 심었기에 식모아마이는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른다. 보다 가을이 지나 식모아마이는 기숙사 주변 떡호박을 수확하자고 하신다. 그런데 그 많던 떡호박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왜 적은가고 묻기에 아마 도둑이 아니면 멧돼지가 먹은 것 같다고 했다. 아이고! 그럼 열심히 우리가 삶아먹을 걸!

북한에는 리에 하나 기숙사겸 식당이 있다. 주로 간부 손님들을 받기 위한 곳이기에 식모는 음식솜씨도 정치성분도 좋아야 한다. 한 마디로 함부로 뽑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식모아마이도 이기심은 다 같다는 것을 잘 체험하였다. 탈레반 같은 북한에서의 혁명화는 어찌보면 이기심을 없애자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하지만 그 지독한 혁명화도 결국 이기심을 이길 수없다.

이민복 탈북민 선교사(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 대표)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이민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