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덕진 인내의 보상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 영(Rev. L. L. Young) 목사의 보고이다.

“매서인들의 활동은 전체적으로 보아 양호하고 일상의 어려움들은 용감하게 인내하고 있다. 외곽 시골 마을에서 어떤 매서인은 현지인들로부터 아주 심한 폭행을 당해 10일간 활동을 못 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그의 끈덕진 인내의 보상으로 그 마을에서 점점 신자들이 늘어가고 있는 작은 교회를 보게 되었는데, 그를 박해했던 어떤 이들을 새 신자 가운데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골 구역에서

함흥 북쪽에 위치한 북청, 흥원에서 활동하는 우리 매서인들의 보고에 의하면, 지난해가 성경판매에 제일 어려운 해였다고 한다. 전에는 매서인들이 일반학교에 들어가 성경을 팔면 한 번에 15~20권을 판매했는데, 지금은 학교에 들어가기도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교육과정에만 국한해서 교육시키라는 지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순사들이 상주하는 읍 지역이나 큰 마을에서의 매서 활동도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판매 실적이 저하되지 않은 데 대해 기쁘고, 더구나 이와는 반대로 요즘은 전에는 판매가 잘 되었던 중심지를 떠나 전에는 무관심했던 오지에 들어가 성공적인 활동과 실적을 얻고 있다. 매서 활동은 더 어려워졌지만, “길과 산울타리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는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다.

매서인 가운데 한사람이 북청 북쪽에 있는 귀리와 토마토로 유명한 커다란 산 지역에서 1년 반 동안 활동했다. 이전에 매서인들은 저지대의 흰쌀밥을 선호했지만, 이제는 귀리 음식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언급하는 매서인 이 씨(AR BFBS 1913에 보면 판매 실적 현황 46p에 매서인 이 씨는 L. L. Young 선교사 지역인 함남에서 활동한 이영회 Yi Yiung Whoi로 나와 있지만 이영휘인지 이영해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산골짜기로 들어가 지난해 1,725권의 성경을 판매했다. 그의 이러한 열성적이고 굳건한 믿음으로 6개 그룹이 주일과 수요일에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우리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매서인들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대리점, 총무(agent)는 없지만, 성서공회를 통해 매서인들이 이곳에서 활동 가능케 함을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다.

조선물산공진회 연합전도관
1915년 일제는 조선의 정궁 경복궁에서 한일합방 5주년의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조선물산공진회(박람회)를 개최했다. 박람회장 입구에 외국선교부와 한국교회의 여러 교파가 주축이 되어 연합전도관을 만들고 박람회 기간 연합전도 활동을 했다. ©GCAH Digital Gallary

일본인 가운데

성서공회는 5개월 동안 일본장로교 선교부에서 일본 매서인 키타고카(Mr. Kitagoka) 씨를 지원하고 있는 커티스(Rev. F. S. Curtis) 목사와 협력했다. 그는 조선 남부의 18개 지역을 방문했는데 주로 대전, 군산, 목포, 부산, 대구지역이다. 그는 1,091권의 성경을 판매했고 전도와 가가호호 방문을 통해 흩어져 있는 일본인 신자들을 규합하여,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더 깊이 이해시키고 더 관심을 갖도록 했다.

그의 방문은 일본장로교 선교부와 성서공회의 협력으로 성사되었는데 그는 복음을 전하며 성경책을 판매하며 발전하는 방안을 시도했다. 그의 가족 중 한 명이 중병에 걸려 갑자기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며, 공회에서는 그 이후 후임을 물색하지 못하였다.

바위를 깨뜨려 버리다

매서인의 일은 선구자의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예비하고, 익은 곡식을 추수하게 한다. 안주에서 매서인들과 함께 사역을 하고 있는 장로교 선교부 블레어(Rev. W. N. Blair) 목사의 보고이다.

“우리는 안주(An Ju) 서부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려고 10여 년 동안 노력했는데, 이곳은 우리 북쪽 구역에서 복음화되지 않은 최대 지역이다. 조선 선교사와 매서인들이 매년 방문했지만 헛수고였다. 올해 나는 우리 앞에 버티고 있는 이 바위를 깨뜨리기로 작정했다.

안주에서 시무하는 김창성 목사가 동의하고 2명의 매서인과 나, 이렇게 4명이 1912년 11월 마지막 주에 우리 앞에 버티고 있는 이교도 요새를 공략하기로 했다. 우리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이 일을 위해 중보기도를 요청했고, 마지막에는 몇몇 사역자가 더 동참했다. 우리는 제일 큰 마을에 가서 방 2개를 빌려 일주일 동안 함께 전적으로 기도하고 이후에 집집마다 방문하며 전도했다.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이 저녁 모임에 참석했지만, 날이 갈수록 관심이 높아져서 우리가 떠나기 전날에는 33명이 참석했는데, 이중 여인들 몇몇 외에는 모든 소년이 신자가 되기로 작정했다.

우리가 묵었던 집 주인은 도박꾼이었는데, 매일 저녁에는 마을을 나가 그의 친구들과 주막에서 보냈다. 우리는 계속해서 전도했고 마침내 우리의 전도 말씀에 깊은 감화를 받았지만, 그의 오랜 습관과 친구들을 끊을 수 없었다. 그러는 목요일, 그는 나에게 환한 얼굴로 다가와서는 말하기를 자신의 노름빚을 모두 청산했고, 그 시간부터는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겠다고 했다. 그날도 그다음 날도 우리는 저녁 어두움 가운데 그의 친구들이 그에게 주막에 가자고 권유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응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그는 우리의 저녁 모임에 참가했으며, 우리가 떠나기 전에 그는 우리를 그의 집으로 초대해 예배를 드려달라고 했다. 지금까지 이런 새 신자들이 교회 건물을 그들 자신들이 짓고자 강구하고 있다.

“2명의 성서공회 매서인들이 이 성공적인 시도에 많은 역할을 했다. 그들은 지치지 않고 열성으로 전도했고 성경을 판매했다.”

안주 서부 지역의 이러한 성공적인 캠페인은 우리를 고무시켰고 다른 구역에서도 캠페인을 열게 했다. 매서인들과 이웃 교회에서 참여 가능한 일꾼들이 함께해서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그 구역에 가서 전도했다. 모든 캠페인에서 우리는 새신자 그룹을 만들게 되었으며, 그들은 항구적인 교회 설립을 약속했다.

양육 재단

어떨 때 매서인은 몇 년의 기다림이 없이는 그들의 결실을 보지 못한다. 이러한 사례는 스톡스(Rev. M. B. Stokes) 목사 매서인의 경우인데, 지난해에 18명이 교회를 시작한 경우이다.

제주도에서

성서공회에서는 제주도에 장로교회 이 목사(Rev. K. P. Yi)의 감독하에 활동할 매서인 한 명을 보냈는데, 이 목사의 보고이다.

“저는 매서인이 성과 있게 활동했음을 보고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비록 그의 성경판매는 매우 저조했으나 사람들이 지고 있는 어려움이나 가난을 보자면, 그의 사역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 그 이상입니다. 우리는 성서공회에서 그러한 매서인을 우리 섬에 파견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많은 반대자들을 만났고 한 번 이상 심하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한번은 그를 폭행하는데 가담한 사람의 집에 성경을 팔게 되었습니다. 집주인은 성경을 읽은 후 그의 죄를 진정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지난여름에는 이 사람이 그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50명이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거기에는 매서인을 통해 전도 받고 주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나 성서공회에 이 매서인의 사역 열매에 대한 감사를 어떻게 드려야 할지요. 우리는 성서공회에서 하는 이 사역이 계속되기를 기도하며, 우리와 같은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박해받았지만 승리함

왓슨(Rev. R. D. Watson) 목사의 감독하에 매서인으로 일하고 있는 정수원은 처음 믿을 때 부모와 친척으로부터 많은 박해를 당했고, 이 지역에서 매서활동을 할 때도 많이 부딪혔다. 하지만, 성경 말씀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격하는 기쁨으로 이것을 극복해 나갔다. 거제도에 사는 원천유는 정 씨로부터 누가복음서 한 권을 샀다. 이 사람의 마을엔 현재(1912년) 140명의 신자가 있고, 그들이 세운 기독교 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누가복음서를 읽은 결과이다. 이 매서인은 또한 통영지역에서 3개의 신자 모임을 출발시키는 기쁨을 맛보았다.

불에서 건져냄

홀드크로프트(Rev. J. G. Holdcroft’s) 목사의 매서인 최형송의 보고이다.

“곡산 지방을 방문했을 때 내가 반포한 성경이 살아있는 책이라는 새로운 증거를 발견하였다. 한 노인이 마태와 마가복음을 산 뒤 틈틈이 관심 있게 읽었다. 어느 날 논에 나가 일할 때, 집에 불이 나 다 타버렸다. 집에 돌아온 그는 복음서 2권만이 불에 타지 않고, 가족 중에 누군가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끄집어낸 것을 보았다. 이 사실에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아 복음서를 더 관심을 가지고 읽었고, 마침내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웃 사람들이 처음에는 기독교책을 읽는다고 비웃었으나 점점 친구로서 그에게 돌아왔고, 지금 그 마을에는 80명이 넘는 신자 모임이 있다. 이 역사는 복음서 2권이 해낸 것이다. 그 사람은 오직 성경을 읽고 성령의 가르침만을 통해 개종한 것이다. 그는 신자가 되기 전에는 전도인이나 기독교 교사를 만난 적이 없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준다.”

선교사들 회합

캐나다 장로회 선교부 푸트(Rev. W. R. Foote) 목사의 보고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가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단지 대도시 지역만을 고려했지만, 근래에는 많은 교인이 주로 작은 위성 마을에서 양육되고 있다. 따라서 큰 도시의 교회는 모교회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새 교회들은 순차적으로 가까운 곳에 개종자들을 위해 세워지는데, 여러 곳에서 이러한 증언이 나오고 있다. 성서공회의 지점에서 모든 마을을 방문케 하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비록 작지만 이러한 사업이 지난해 잘 수행되어 복음이 여기저기 전해진 것이다.”

변화된 마을

매서인 중 한 명인 나 씨(Mr. Na)는 약속을 지키는 새로운 사람이다.

“많은 좋은 일 가운데 내가 그의 사역에 대해 들은 것은 격려의 변화를 준 것인데, 300가구나 되는 당모루 마을이 우상 숭배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내가 지난번 보고에서 비록 복음이 전해지고 있지만, 우상 숭배를 깨뜨리지 못하고 남아있는 순위에 있었다.

지난여름 변화가 일어났다. 어느 괜찮은 집안의 한 청년이 간도에서 기독인이 되어 돌아왔다. 얼마 동안 그는 조용히 지냈지만, 매서인 나 씨의 도움으로 그는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들은 함께 전도하고, 사람들과 만남도 함께 했다. 지금까지 아직 교회는 없지만 25명이 주일날 정기적으로 이웃 마을 신자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다른 마을 사람들도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우호적이며, 최근에는 나 씨를 위한 요청을 보내왔는데, 그들은 매서인 나 씨를 위해 그 마을에 나 씨의 집을 만들겠다고 전해왔다. 이에 더해서 교회가 세워진다면 그들은 교회 건물 기금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신실한 매서인

한 씨(Mr. Han)는 우리 매서인 중 1년 먼저 활동한 선배이다. 그는 조선에서 이 분야에서 맨 처음 결실을 수확한 사람 중 한 분이다. 그의 삶은 그가 복음에 대해 웅변적으로 공언하는 그의 간증이다. 무더위, 폭풍우와 추위는 그의 하나님을 위한 봉사를 뒷걸음치게 할 수 없었다. 그의 출현이 모든 산중 이교도 마을이나 평야 지대 마을에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매서 활동 분야에 있어 특별히 앞서는 그룹이 없었지만 큰 진전이 있었다.

3년 전 예수를 믿은 한 젊은 여인이 그녀의 믿음 때문에 많은 박해를 받았다. 그 여인은 남편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예배에 결석하는 일이 없었다.

원산에서 성경공부사경회가 열렸을 때 그녀는 참석해서 공부하는 동안 기숙사비를 위해 일했다. 대부분의 한 씨에 의해 전도 받아 교회로 오게 된 많은 신자들은 이처럼 강한 유형의 신자들이다. <계속>

『매서인은 교회설립의 선구자였다』에서 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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