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목사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작금의 사회는 상징(로고)의 홍수 속에 있다. 자동차 회사 가운데 삼성, 현대, 기아, 테슬라, 아우디, 벤츠, BMW 등을 떠올리면 각 회사의 상징(로고)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그러면 스마트폰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징은 무엇인가? 안드로이드는 로봇이고 애플사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다. 특히 애플의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라는 상징(로고)은 단순하지만 아주 매력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이 로고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 가지 가설은 스티브 잡스가 오리건주 사과 농장에서 일하면서 ‘지겨운 사과 농부생활을 청산하고 돈을 벌자는 의미’로 이런 상징(로고)을 사용한 것이라 한다. 또 다른 가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상징하여 하와의 타락을 떠올리려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어느 주장이 사실인지 분명하게 알 수는 없다.

문제는 최근 애플사 로고가 너무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애플 로고는 여섯 무지개로 된 다양한 디자인이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은 분명히 애플사의 제2대 회장 팀쿡이 동성애자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팀쿡이 비록 동성애자라 하더라도 굳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의 반감으로 판매량이 저조해지는 지장을 감수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두 번째는 팀쿡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매킨토시 pc에 이런 동성애적 상징을 사용함으로써 과연 어떤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인가?

이 점을 이해하려면 논리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필요하다. 논리학에서 ‘개념’(concept)은 외연과 내포로 구성된다. ‘외연’은 주로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나 이름 등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말, 소, 개, 사과, 오렌지 등은 외연에 해당한다. 그런데 외연엔 ‘내포’적 의미가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말’이라는 외연을 떠올리면 ‘힘’이라는 내포적 의미가 떠오른다. ‘개’라는 외연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적대시하는 내포적 의미가 떠오른다. 마찬가지로 ‘에덴동산 애플의 여섯 무지개’라는 외연은 ‘하와가 선택한 것은 동성애였다’는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여섯 무지개’라는 ‘외연’에 ‘동성애’라는 의미를 ‘내포’시키면 사람들에겐 많은 설명 없이 간단하게 자신들의 정신(내포)을 확산시킬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확산된 정신은 세력을 하나로 집중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상징이 가지고 있는 감춰진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상징이라는 직관적 이미지는 장황하게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상징 아래 사람들을 손쉽게 규합한다. 이렇게 사람들을 하나로 규합하기 위해 사용되는 상징(로고)은 매력적이고 세련되며 직관적일수록 효과는 배가된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세련된 상징 아래 모이는 것을 세련되고 지적이며 명예로운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엔 매스컴과 SNS, 영화, 그리고 유명 연예인들의 홍보 같은 것들이 큰 역할을 한다.

최근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수많은 민간인들은 군대라는 강력한 힘에 끔찍한 희생을 당하면서 저항하고 있다. 훈련된 군대와 강력한 화력으로 무장한 군대를 민간인이 이긴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얀마 군부는 심각한 곤경에 빠져 있다. 그들을 곤경에 몰아넣은 것은 미얀마 시민들이 사용하는 상징(로고) 때문이다. 엄지와 소지를 접고 세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행위를 정의와 민주화를 위한 투쟁으로 상징한 것이다. 수많은 군중들은 군부의 탄압 앞에서 손가락 세 개를 들어서 저항했다. 이 상징이 미얀마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미얀마 전 국민은 하나로 단합됐다. 이 상징이 힘을 발휘하게 된 데는 소셜미디어와 총과 손가락 셋을 치켜올린 미스 미얀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이를 통해 미얀마 전역에 있는 사람들은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리고 군부에 저항하는 일(외연)은 선하고 지적이며 정의로운 것(내포)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 상징을 통해 사람들은 아낌없이 자기의 몸을 던져 희생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이 어떤 전문적인 이념 교육 없이 이렇게 결집됐다는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단지 하나의 상징 아래 모이는 것이 정의롭고 명예로운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오늘날 동성애, 패미니즘, 무정부주의, 사탄 숭배, 신성모독 등은 이런 식으로 세련되고 매력적으로 포장된 상징(로고) 아래 사람들을 결집시킨다. 유명 연예인들이나 아이돌들이 한쪽 눈을 가리거나 사탄의 뿔을 상징하는 손가락 표현으로 화보를 찍는다. 극장에서 최고 흥행하는 영화나 대중음악 공연장에 사악한 상징을 사용한다. 혹은 권력자들이나 갑부들이 애용하는 고가의 사치품에 이런 상징물이 각인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젊은 세대들이나, 일반 대중들로 하여금 이런 상징물 아래 들어오는 것이 명예와 성공과 부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하여 소극적으로는 로고가 내포하는 정신을 거부하지 않거나, 적극적으로는 동참하게 한다.

과거 초기 기독교에서도 이런 흔적이 있다. 초대교회는 로마의 극심한 박해 가운데 ‘물고기’(익두스)라는 상징을 사용했다. 물고기 문양은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라는 헬라어의 각 첫 스펠링을 조합해서 상징화 한 것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기독교인들이 이 상징 아래서 결집하고 박해를 이겨나갔다는 점이다.

 

십자가
©unsplash

그것은 바로 ‘십자가’다. 이 외에는 다른 어떤 상징도 필요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굳이 십자가를 아름답게 디자인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내포하는 의미는 결코 세련됨과 육신적 아름다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아름답고, 세련되게 인위적으로 디자인하면 도리어 십자가의 내포된 정신은 사라진다. 십자가는 수치와 자기 부인과 복종과 마음의 할례와 죽음, 그리고 그 안에서 부활을 의미한다. 이것은 십자가를 매력적으로 디자인해서 얻을 수 있는 산물이 아니다.

 

십자가는 성도들 각자의 삶을 통해 아름답게, 자랑스럽게, 매력적이게, 순결하게 표현돼야 한다. 사도 바울이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이라고 한 고백이 신자들 각자의 삶에 ‘내포’되면 십자가라는 ‘외연’은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상징으로 여겨진다. 어느 시대든지 교회는 이렇게 십자가 아래서 결집되고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고 세상을 이기는 이김을 주셨다.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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