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1] 세상에 ‘성공’을 원치 않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럼 성공을 원치 않는 그리스도인이 있을까? 이 질문에선 대답이 좀 달라진다.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공’이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단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럼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란 뭘까?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수십억 달러의 돈이 있는 사람이나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낸 사람, 또는 노벨상 수상자나 국가의 지도자 등을 가리킨다.

[2] 이런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천만에다. 나름대로 최선의 땀과 노력의 대가로 그 열매를 따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The only place where success comes before work is a dictionary”란 말이 있다. “노력(work)보다 성공(success)이 먼저 나오는 곳은 사전밖에 없다“란 뜻이다. 알파벳 순서상 ‘w’보다 ‘s’가 먼저 나오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3] ‘노력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을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다. 세인들이 우러러보고 부러워할 만큼 성공하려면 보통 노력을 해서 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엔 ‘성공’이란 단어가 나올까? 당연히 우리말 성경엔 전무하다. 하지만 영어성경엔 여러 곳에서 ‘성공’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영어 성경은 ‘형통’을 ‘success’로 번역한다. 성경에서 ‘success’가 사용된 대표적인 실례가 창 39:2절에 나온다.

[4]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여기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는 내용은 영어로 “so he became a successful man”(NASB)이라 되어 있다. 영어 성경은 ‘형통한’이란 한글 번역이 아닌 ‘성공적인’(successful)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히브리어 단어는 ‘chalak’이다. 이처럼 성경 속에도 ‘성공적인 사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5] ‘성공’ 혹은 ‘성공적’이란 단어가 세속적인 의미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그 단어가 어떤 의미로 정의되느냐에 달려있다. 세상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인간적인 수고와 노력에 의해 얻게 되는 결과를 얘기하지만, 성경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의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를 뜻한다. 요셉이 ‘성공한 자’가 되었다면 세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었어야 하나?

[6] “요셉... 그가 ‘성공한 자’가 되어 ‘그의 집으로 돌아가니’”라가 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는가? “요셉... 그가 ‘성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로 기록하고 있다. 여전히 노예의 신세임에도 성경은 그가 성공한 자라고 말씀한다. 어째서일까? 그게 바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하는 자와 성경이 말하는 성공하는 자의 의미가 다름을 말해주는 것이다.

[7] 세상적인 의미의 성공은 환경에 따라 왔다 갔다 한다. 형편이 좋으면 성공이고 나쁘면 실패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성공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옥같은 환경이 되든 간에 상관이 없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면 그 자체가 성공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성공하게 되어서 마침내 자기 고향 집으로 돌아가게 돠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상상해보라. 그랬다면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을까?

[8]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지 못했다면 그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여 모두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을까?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우선 눈앞에 나타난 실패 같아 보이는 결과를 보고 섣불리 실망하거나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 세상 성공자들은 모두가 스스로 열심히 땀 흘리고 수고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자수성가형 인물’들인 반면, 성경 속 성공자들은 그와는 전혀 다른 ‘신수성가형 인물’들이었다.

[9] 성경 속에서 성공자로 묘사되는 이들은 모두가 그들이 열심히 했거나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셨기에 그리 된 사람들이다. 요셉이 성실하고 열심 있는 사람이었지 않느냐고 이의를 제기할 이가 있는가? 요셉이 그럴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여호와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있음을 놓치지 말라. 다윗이 양도 잘 치고 양 새끼를 앗아가려는 사자나 곰을 때려눕히지 않았느냐고 따지고 싶은 이가 있는가?

[10] 이 모두가 하나님이 보내시는 성령이 역사하셨기에 가능했던 일임을 인정하는가?
그렇다. 성경이 말하는 성공자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자와 다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선생님은 성공하셨습니까?”

지하철에서 평생 이렇게 외치던 한 맨발의 전도자를 기억한다. 그는 생의 마지막 날에도 이렇게 외치고는 지하철 안에서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신 분이다.

[11] 위대한 전도자 ‘최춘선 할아버지’의 얘기다. 이제 천국에서 평안히 안식하고 계실 그 맨발의 전도자가 던진 물음에 우리가 답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 같다.

“선생님은 성공하셨습니까?”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