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에덴의 언어』
©도서『에덴의 언어』

성서는 문자로 기록된 언어이다. 그것은 또한 말이기도 하다. 성서가 무엇인가를 실감 나게 알려면 우리는 언어의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성서는 신을 말씀하시는 분이라고 밝히고 있다. 신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말씀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말씀으로 모세와 대화를 했다. 말씀으로 다윗에게 언약을 하셨다. 말씀으로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셨다. 그리고 말씀으로 세상과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약속하셨다. 그들은 신을 보기라도 했다는 걸까? 이 답변은 간명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죄인인 인간은 전능하고 거룩하신 신을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성경은 마치 절대타자인 신을 본 것처럼, 대화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성경은 성령으로 영감된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아 기록해놓은 책이다. 신의 음성은 계시의 형태를 통해 인간에게 전달되었다. 신의 음성은 인간의 인격과 경험과 지적 능력에 들어와 창조적으로 변형되어 인간의 언어로 내뿜어졌다. 그게 우리가 읽는 성경이다.

김준수 - 에덴의 언어

도서『내게 왜 이러세요?』
©도서『내게 왜 이러세요?』

세상에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다. ‘왜 그러셨어요, 하나님?’ 애처로운 사연들을 만나면 늘 그렇게 묻고 싶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리처드 로어(Richard Lower)의 말을 마음에 품고 산다. “해답을 가졌다는 것이 믿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무런 해답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누구에게 속했는가?(Whose am I)’로 인생관이 변해야 참된 크리스천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만이 인생의 고난에서 아무런 해답을 듣지도 못하면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삶을 보여 준다. 그들은 고난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 답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답은 딱 하나이다. “그런 질문은 하는 것이 아니란다.”

왜 그러실까. 어차피 세상에서 얻어지는 답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죽음을 두고 어떤 답이 이해가 될 것인가. 그러니 차라리 그냥 안고 가는 것이 좋다. 그러면 마음으로 답을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해답이다. 하나님은 참 오묘하게 답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품에 머리를 묻고 살면 된다.
강정훈 - 내게 왜 이러세요?

도서『절대 완전한 기도』
©도서『절대 완전한 기도』

이처럼 우리 인간 역사의 중심에는 늘 하나님 없이 자신이 왕이 되고자 하는, 이른바 욕망이라는 열차에 탄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을 주님이 아셨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기도보다, 하나님을 위한 어떤 종류의 사역이나 역사보다 먼저 하나님의 통치가 삶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만일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잠시 좋아 보일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자기에게 갇혀 하나님을 배반하고 인간 중심의 삶을 살게 되며 종말에 이르게 될 것을 아신 것이다.

하정완 - 절대 완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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