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 맥아더 목사가 2015년 예수의 비유를 다룬 책 "Parables: The Mysteries of God's Kingdom Revealed Through the Stories Jesus Told"을 출간했다. 한국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비유』라는 제목으로 번역서를 생명의말씀사에서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맥아더 목사는 12개의 비유를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어 해설한다. 이 책을 중심으로 하여 존 맥아더 목사의 비유에 대한 이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존 맥아더 목사 ⓒ그레이스투유
존 맥아더 목사 ⓒ그레이스투유

공과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께서 제자들과 무리들을 가르치실 때 본격적으로 '비유'를 사용하신 지점이 있었다. 세 복음서 모두 예수께서 천국에 대하여 가르치실 때 본격적으로 비유를 사용하셨음을 기록하였다. 마태복음서에서는 13장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예수께서...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존 맥아더 목사는 예수의 갈릴리 사역의 막바지 무렵에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가르침의 방식을 바꾸셨다"고 밝혔다.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사건은 바리새인들과의 충돌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2년째가 거의 지날 무렵, 매우 분주했던 어느 하루였다. 예수님 앞에 적대적인 바리새인들 몇 명이 나타났다. 그러자 예수님의 가르치는 방식이 갑작스레 돌변했다." 맥아더 목사는 이 부분에 관하여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연구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께서 본격적으로 비유를 가르치신 것은 13장인데, 그 바로 앞장 12장에 3번에 걸친 예수와 바리새인들과의 공개적 충돌이 나온다. 12장에 기록된 주요 3가지 사건은 ①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서 먹은 사건, ②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친 사건, ③ 귀신들린 눈 먼 벙어리를 고친 사건이다. 그런데 이 각각의 사건 끝에서 바리새인들과의 충돌이 벌어진다. 충돌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안식일' 논쟁이다. 맥아더 목사는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자른 사건과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사건은 서로 다른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임에도(누가6장) 마태기자가 연이어 배열한 것은 시간보다 주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기자의 의도적 배치라고 보았다. 마태기자가 "12장에서 말하고자 한 요점은 안식일 논쟁이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극단적인 적개심을 품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맥아더 목사는 안식일의 원래 의미와 바리새인들이 왜곡시킨 안식일의 현실을 비교하였다. 구약성경의 안식일은 "본래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즐거운 날'(사58:13)"이었고 또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베푸신 선물이자 축복"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무시"했다. 이유는 영적인 일에 대한 무관심, 경제적 이득, 배교, 우상숭배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터였다. 이에 선지자 느헤미야나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게 하려 노력한 바 있다. 예수님 시대에 이르렀을 때는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대하여 집착했는데, 그러나 율법중심주의적으로 왜곡되어 바리새인들의 안식일에 대한 가르침은 "극단에 치우치는 현상"을 보였다. 본래 안식일의 취지와는 달리 "바리새인들의 강요와 감시 아래...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한 채 번거로운 의식만을 치러야 하는... 율법적인 노역을 치르는 날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첫 사건-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을 잘라 먹은 사건 이후 바리새인들은 예수께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한다"라고 공격했다. 바리새인들의 규칙에 따르면 "한 줌의 곡식을 잘라 먹는 행위는 이삭줍기 곧 노동에 해당"된다. 바리새인 입장에서 예수의 제자들은 안식일의 법을 지키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예수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응수하였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보다 강하게 충돌하였다. 안식일날 회당에서 사람들은 예수를 공격할 목적을 가지고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은가"라고 물었다. 그러나 예수의 관심은 알량한 규칙 따위가 아니었고, 궁극적 사랑이었다. 예수께서는 "손 마른 사람을 즉시 고쳐주심으로써 그들의 도전에 응하셨다." 이 사건으로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 번째 사건은 귀신들린 눈 먼 벙어리를 고쳐주신 것인데, 이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능력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에 힘입은 것이라 공격하였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이전과 다르게 심판의 말씀을 하신다: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귀신들린 자를 치유한 것은 성령의 사역이었기에 이 일을 모독하는 말은 "성령의 사역을 사탄의 사역으로 간주하는 것과 같았"던 것이다.

맥아더 목사는 마태복음 12장에 기록된 이 세 사건이 있은 이후로 "예수님은 공적으로 가르치실 때 비유를 사용하여 일부러 그들에게 진리를 감추셨다"고 밝힌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저편으로 건너"가셨고(마가4장), 이날부터 바로 비유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고 밝힌다.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나, 제자들에게는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주셨다.(마태13장)

예수의 비유는, 그 의미가 어떤 자들에게는 "감춰지고" 어떤 자들에게는 "나타난다":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태11장) 맥아더 목사는 예수의 비유가 이같이 이중적인 목적을 지닌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긍휼이 동시에 나타난다고 밝혔다. 예수의 일들을 믿지 않고 냉소적으로 공격했던 이들에게 비유의 의미가 나타나지 않음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나는 수단인 이유는 "일상적인 이야기와 상징 안에 영적 진리를 감추심으로써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머리 위에 죄를 더욱더 높이 쌓아올리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신 것이라고 맥아더 목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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