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에서 직원이 암호화폐 시세를 살피고 있다. ⓒ뉴시스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에서 직원이 암호화폐 시세를 살피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내년부터 암호화폐 소득에 대해 과세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정치권을 중심으로 '과세 유예'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암호화폐를 금융자산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세금을 매기는 건 모순이라는 입장이지만, 대선을 앞두고 20·30대 표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렸다. 일각에서는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반발에 또다시 정부의 과세 원칙이 후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정부는 암호화폐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하고 그 시점을 내년 1월1일로 못 박았다. 암호화폐를 사고팔거나 대여해 발생한 수익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250만원을 기본 공제한 후 20% 세율로 분리 과세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해 동안 암호화폐 소득이 400만원인 경우 250만원을 제외한 150만원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과세 방침에 반발하는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비트코인은 250만원 이상 과세 주식은 5000만원 이상 과세 차별하지 마세요'라는 글은 26일 오전 11시 기준 5만1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암호화폐 세금의 공제금액을 증액해주시고 과세 적용 기간을 더 미뤄주세요'라는 글도 4만6000여명이 지지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게시글도 13만명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았다. 앞서 은 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암호화폐 거래소가 9월 대거 폐쇄될 수 있으며 투자자들을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 없다"는 취지로 발언해 투자자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20·30대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원성이 커지자 대주주 여건 완화 등 정부의 과세 원칙이 무너지는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주식 양도세 부과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강화하려다가 동학 개미들의 반대에 철회한 바 있다.

2023년부터 시행될 주식양도세 기본공제액을 2000만원으로 정했다가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에 대통령까지 제동을 걸면서 5000만원으로 상향한 적도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반발에 또다시 기본 공제액이 상향되고 과세 시기가 유예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최근 여당에서는 암호화폐 과세 등에 대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과세 유예'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에 대한 보호 제도를 만든 이후에 과세해야 한다는 목소리지만, 선거를 앞두고 20·30대 여론 악화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암호화폐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별도 기구 마련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암호화폐 기구 마련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청년들과 소통을 강화하면서 대응 방향과 대응 방식을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도 라디오에 출연해 "(암호화폐가) 자산가치가 없다는데 정부가 세금을 걷겠다고 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빨리 제도를 만들고 민관하고 과학자들이 모여 시스템을 짤 때"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성격을 명확히 구분, 제도화한 이후에 과세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굳이 손을 대겠다면 암호화폐를 잠정적으로라도 금융자산 등 성격으로 규정해 제도권 테두리 안으로 집어넣고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면서 "제도권으로 끌어오지도 않고 세금을 걷겠다고 하니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면적으로 손을 대서 암호화폐 성격을 결정한 후 소관 부처를 정하는 게 우선"이라고 부연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가상자산에 대한 정의가 뚜렷하지 않다 보니 기타자산으로 분류돼 있는데 보완이 필요하다"며 "암호화폐를 해외처럼 투자자산의 일종으로 분류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가져가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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