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의 교훈과 다른 정신분석 이론

민성길 교수
민성길 명예교수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성경)와 정신분석은 공통적이지 않다. 예를 들면 “진리와 자유”에서 진리는 마음 속의 비밀이 아니라, 또한 학문에서의 진리가 아니라,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고, 자유는 “억압”의 제거가 아니라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는 이론적으로는 정신분석의 최고 목표이기는 하나 실제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프로이트 그 자신이 노이로제가 있었고 그 자신의 노이로제와 꿈의 분석으로 정신분석 이론 구성에 기여하였다. 그가 죽음에 임박하였을 때 마음에 자유함과 평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에서 환자들이 신을 말할 때 그 신에 대한 이미지는 그들의 환상(illusion)이었음을 간파하였다. 그는 이 통찰을 확대 적용하여, ‘환상의 미래’라는 저술에서 “신이라는 것은 종교인들이 이야기하는 실재하는 초월적 존재도 아니며 이성의 최종 결과로 나온 산물도 아닌, 가장 오래되고 간절한 인류의 소원이 투사된 환상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무신론 역시 프로이트 자신의 환상이다. 프로이트 같은 천재들은 신을 인정하기 어렵다. 인본주의(humanism)는 인간들의 자기애(narcissism)같아 보인다. 또한 정신분석의 “이론”은 개개 환자의 “치료”와는 상관 없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한 환자의 내면을 드러내어 환자에게 보여주는 치료기법일 뿐이다. 정신분석이라는 기술 자체가 종교의 정당성을 인정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만일 어떤 환자가 이혼하고 싶지만 하나님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겠다고 할 때 정신분석가는 “그 환자가 말하는 하나님”이 과거 자신에게 부당하게 대하였던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닌지 통찰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이혼하라고 조언하지 않는다.

즉 프로이트의 무신론은 실제 신의 존재와는 상관없다. 신의 존재가 정신분석으로 입증되거나 부정될 일도 아니다. 그래도 정신분석가들에게 남는 문제는 왜 인간은 그런 신에 의한 구원의 소원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다. 생존 때문이라면, 생명의 기원과 죽음 이후의 일도 같이 고려되어야 한다. 정신분석은 우리의 과거 경험이 현재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이는 성경과 다르다(정신분석적 결정론은 또한 기독교의 예정론과도 다르다고 보는데, 필자는 신학자가 아니어서 말하기에 한계가 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 예정하시고 인도하시며,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로서 그와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변화한다고 말씀하신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무의식(이드)을 의식화, 즉 본인이 알게 함으로써(통찰) 완료된다. 이후 그 발견된 바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대해서는 정신분석의 교훈은 별로 없다. 프로이트는 내면을 알게 되면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고 문제가 해결된다고만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환자는 자신의 내면을 통찰함으로써(진실을 알게 되어) 더 괴로워질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힘들어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정신분석을 하지않도록 말리거나(그래서 3회 정도 진단적 분석을 하고 정신분석의 적합성을 판단하여 그만 두든지 계속하든지 한다), 환자 수준에 따라 내면을 드러내기보다 감추어 주는 쪽으로 정신치료 할 수 있다(이럴 경우를 지지적 정신치료 또는 억압적 정신치료라 한다). 충분히 자아가 강건한 사람은 정신분석을 통해 발견된 내면의 고통스러운 비밀을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이 과정을 분석이 끝난 후의 훈습(work-through)이라 이름하였다. 그래서 훈습까지 포함하면 정신분석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프로이트의 충고 중 하나는 인간의 이성으로 무의식의 힘을 성숙한 방어기제인 승화(sublimation)를 통해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해 주는 정도였다. 예를 들어 성적 욕망은 문학이나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 공격본능(타나토스)은 스포츠나 경쟁이나 투쟁에 의한 사회적 성공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가혹한 초자아에 대해 유머(humor)라는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꿈은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의 표현으로 보지만 기독교에서는 꿈을 계시로 볼 때가 있다.

치료에서 자유연상은 하나의 고전적인 정화작용(catharsis)이 될 수있고, 기독교의 회개과정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자유연상은 특별한 의도가 없는 무엇이든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이고, 회개는 생각하고 체계적으로 하나님께 말하는(고백하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독교와 정신분석은 이론과 방법에서 모두 다르다. 정신분석은 삶의 문제를 정신병리라고 본다. 임상적으로는 “노이로제”이다. 기독교는 삶의 문제를 “죄”로 본다. 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분석은 노이로제를 치료하려 한다. 기독교의 방법은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건강이고, 기독교의 목표는 구원이다.

정신분석은 세속적 휴머니즘과 인간이성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사상의 이상은, 인간은 창조된 바가 아닌, 자연의 일부로서의 영원함이다. 휴머니즘에서의 인간의 목표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 개인의 잠재력으로 성취하는, 인간의 자기-개선이다. 이는 18세기 계몽주의와 19세기 자유사상에 기초한다. 따라서 정신분석은 하나님 말씀의 충분함을 부인하려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1-32) 하시었다. (계속)

민성길(연세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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