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이야기(4)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창 12:4~20)

안지영 목사

그러면 하나님의 이런 시도가 아브람에게 먹혔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 당시에, 어느 신이 큰가를 평가할 때의 잣대는 그 부족의 군사력, 경제력, 인구 등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브람은 자기 밖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신인 여호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었을까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 세겜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그 약속은 아브람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겁니다. 아, 처음에 그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흥분이 되었겠지요. 그러니까,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지 않았겠습니까! 얼마나 신나는 일이었겠는가요!

하지만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 살고 있는 가나안 땅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 허황된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 눈에 보이는 가나안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가 더 현실적이었을 겁니다. 저들에게서 느끼는 의심의 눈초리, 거부감, 등등이 자식 점지하여 주시겠다는 처음 알게 된 여호와라는 신보다 더 피부로 다가왔을 겁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매우 지엽적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자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밖에는 아직 아브람이 경험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들의 뒤숭숭한 분위기가 아브람을 은근히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장막을 다 거둬들이고는 남쪽을 향하여 이동을 합니다. 자신의 하나님은 아무리 봐도 주변 부족들의 신들보다 못해 보입니다. 자기의 나그네 된 신세를 기준으로 평가를 해보니 말입니다. 가뜩이나 그 세겜 땅에 살고 있는 그곳 주민들을 떠올릴 때면, 그들의 땅이 자기 땅이 된다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마음이었으니, 아브람이 짐을 싸서 그 장소를 떠나는 게 자연스러울 수밖에요. 그곳에 죽치고 있다가는 자기 생명에 해가 될 것이라 여긴 거지요. 죽음은 누구나 두려운 것이니 말입니다.

이런 아브람의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절대적인 능력자이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막상 위기 상황이 밀려왔을 때, 우리는, 그동안 배운 하나님의 크심 보다는 현실에 처한 상황이 더 커 보여서 위축되기 일쑵니다. 내 앞에 닥친 일만 크게 보일 뿐, 그렇게도 찬양하며 예배드렸던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저 '주여, 주여' 소리만 입안에서 맴돌고 있을 뿐입니다.

아브람은 이렇게 세겜을 떠나 남쪽으로 더 내려오다가 베델 동쪽 산간 지방에 장막을 칩니다. 그 자리에서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아이 성이 보입니다. 두 성 사이가 약 3 km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하니, 그리 멀지 않은 거리지요. 두 성 사이에 자리잡은 아브람의 의도가 궁금하네요. 어느 한 성을 선택하지 않고, 왜 굳이 두 성 사이에 장막을 치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세겜 성에 있었을 때 가졌던 느낌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짓눌리게 만들었던 그곳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말입니다. 그래서 베델 성과 아이 성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못하고 두 성 사이에 장막을 쳤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아브람은 여전히 눌려 있었던 같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다시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가 드리는 이 예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궁금하네요. 어쩌면 베델과 아이 성 사이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땅에 관한 약속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반응으로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배의 자리를 떠납니다. 다시 장막을 거두고는 네겝 광야로 떠납니다. 인적이 드문 곳입니다. 자기가 신경을 써야 할 주변 사람들이 없는 곳입니다. 그는 그곳에 장막을 치고는 한동안 그곳에 정착합니다. 여기서는 예배드렸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는 여기에 와서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움직일 생각이 없었던 것 같네요. 그나마 사람이 적은 네겝에 와서야 안심이 되었나 봅니다. 네겝은 아브람에게 안전이 보장되는 장소였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신의 크기만큼 그의 행동의 크기가 결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의 문제가 더 크게 보여,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 축 처지는 아브람의 모습이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네요.

이제 안전한 환경에 익숙해진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움직이게 만드십니다. 편한 자리에서 불편하고 불안정한 환경으로 떠나도록 만드십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드는 바람에, 아브람은 할 수 없이 잠시 이집트로 옮겨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작할 땅도 없는 나그네 신세에 굶어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집트는 가나안 땅의 군소 부족 국가와는 그 결이 다른 차원의 나라입니다. 그 당시 가장 강한 나라였기 때문이지요. 아브람의 심장은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을 겁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아내에게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이 없었거나, 아니면 욕심이 있어도 시도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집트는 차원이 다른 곳입니다. 이집트 땅에 들어온 아브람 일행은 즉시 왕에게 보고가 되었고, 그들을 눈여겨 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아브람의 집안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사래의 존재도 드러났습니다. 아브람이 그렇게도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만 겁니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아내를 아내라 하지 못하게 된 형편이니! 이집트인들에게 아브람의 누이동생 사래는 매우 매혹적인 여인이었던 것 같네요. 이 여인에 대한 보고가 왕에게까지 올라간 것을 보면 말입니다.

왕은 여인을 왕궁으로 데리고 오도록 하였고, 그에 대한 사례로 사래의 오라비인 아브람에게 많은 재물과 노비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래가 바로의 왕궁으로 불려가자, 하나님은 바로의 집안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재앙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사래가 왕궁으로 들어가자 얼마 안되어 바로 왕 집안에 우환이 생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몹쓸 병에 걸리거나, 죽거나, 사고가 나거나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럴 경우, 신관을 대동하여 그 재앙의 근원을 찾을 때, 무엇이 눈에 띄겠습니까? 당연히 사래이지요. 전에 없던 일이 새 사람이 들어온 후에 생겼으니 말입니다. 신관의 판결에 따라, 바로 왕은 아브람을 불러 꾸짖고는 사래와 함께 이집트 밖으로 추방하였습니다.

당시 이집트의 최고 신은 태양신이었습니다. 물론 바로 왕은 태양신의 화신이었지요. 그가 태양신이고, 태양신의 대표자였습니다. 아브람이 보기에 자기만 알고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강한 제국 이집트의 태양신에 비하여 열등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이 자기를 이집트의 신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아내 사래를 누이동생이라 하여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자기에게 자식을 주시겠다고 한 여호와는 아브람의 눈에 차지 않았던 것 같네요.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여호와는 이집트의 강력한 신 앞에서는 초라하게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세겜부터 여기 이집트까지 아브람에게 평가절하를 당하신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서 아브람이 하나님을 어떤 신인지 알기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브람이 전혀 거부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이집트의 바로 왕과 그의 뒤에서 받치고 있는 태양신이 하나님의 발 아래 엎드려 있는 것을 본다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아브람의 평가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바로 왕은 아브람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무나 두려워서 사래를 그대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뿐 아니라, 신부값으로 준 모든 재물과 노비를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람 스스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목격하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지요.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은 아브람을 얽매고 있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섭리하셨다.

이 모든 과정을 주관하셨던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너는 나를 그렇게도 믿지 못할 정도로 약한 신으로만 알고 있었지? 자, 이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가 그렇게도 두려워해서 아내 사래까지 내어줄 정도로 강한 이집트 신의 대리자를 내가 징계했으니, 이제 너는 나를 어떤 신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런데 혹자는, 그럼 바로 왕은 그냥 당하기만 한 피해자가 되지 않느냐는 반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정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바로 왕도 절대권력자로서 이집트의 수호신의 대리자라는 자부심이 충만했던 교만했던 태도가 틀렸다는 도전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자기가 절대적으로 의지했던 이집트의 수호신보다 더 강한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그럼 그에게는 어떤 신을 선택할 것인지 자신이 결정해야 할 기회가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에게는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과 재력이 더 큰 매력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보면, 바로 왕이 반드시 억울하다고 볼 필요는 없겠네요.

더불어 사래를 이집트 왕으로부터 건져내신 하나님의 조치는 아브람에게 생길 아이가 사래에게서 태어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려움에 휩싸였던 아브람이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오히려 사태가 반전되면서 아브람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사래가 하나님의 약속의 통로라는 겁니다. 비루한 자신의 처지를 놓고 간장이 끊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오는 이 순간을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위한 기회로 반전을 시키십니다. 여태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하나님에 대하여 더 알게 되었으며, 사래가 하나님이 정하신 약속의 통로라는 사실을 확인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의도를 알리시는 기회로 사용하셨습니다.

사실, 아브람이 사래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식을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면 아내를 포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네요. 이렇게 분명한 메시지가 없이는, 당시 고대 사회의 환경 상, 아브람은 자기 아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일 수도 있다고 충분히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어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개연성이 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아브람이 두려워했던 이집트 왕으로부터 사래를 구해내신 것을 보고는, 자기의 정실인 사래가 자식을 낳아줄 여인인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다는 것을 알아채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알아채는데 빠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인생 여정 중에 하나님의 뜻을 확연하게 알아가는 데는 속성 과정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알려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긴 시간이 걸리네요. 하나님의 뜻을 소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는 한 평생이 걸립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함도 속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평생을 걸쳐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가면서 그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영적 원리입니다. 속성 과정은 없습니다. (계속)

안지영(미드웨스턴 실천신학 교수, 달라스 나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