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 교수
박명수 교수 ©기독일보 DB

박명수 교수(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교회사)가 26일 밤 에스더기도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금요철야 및 매일 철야기도회에서 ‘3.1운동과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박 교수는 “1919년 자유를 외친 조선이 결국 1945년 해방을 통해 자유를 얻었다. 이런 자유를 잘 지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한다. 잘못하면 자유를 잃어버릴 가능성도 있다”며 “우리나라 영화 중 독립에 대한 영화는 많지만, 자유에 대한 영화는 희박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유가 위협받는 이유는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과 그 가치를 알려주는 영화, 매체 등이 적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들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을 정확히 직시해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는 세력은 건국세력이고, 그 중심엔 기독교가 있었다. 1919년은 대한민국에 자유의 씨앗이 뿌려진 날이고, 1948년은 대한민국이 태어난 해이며, 1950년 6.25 전쟁은 대한민국이 시련을 극복한 시기”라고 했다.

그는 “1919년 3.1 운동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꿈꾸던 건국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임시정부라는 씨앗이 뿌려진 시기라는 점에서 독립운동이자 동시에 건국운동이다. 3.1운동은 1948년 대한민국을 만드는 토대석이 된 것”이라며 “3.1운동 이후 그해 4월 10일, 대한민국임시헌장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의 운영 방향을 ‘10가지 조항’으로 명시한 임시헌장의 99% 이상을 현재 대한민국 헌법이 계승한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1910년 황제의 나라인 ‘대한제국’이 종말을 고했다. 대한제국은 고종의 나라인 것이다. 그러나 1919년 상해임시헌장은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적시했다”며 “대한제국이라는 왕조에 종언을 고한 것이다. 경신학교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습득한 기독교인들이 제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을 만들자고 했고, 그 중심엔 도산 안창호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복벽주의가 사라지자 1919년 3.1운동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은 또 다른 암초에 직면했다. 바로 1917년 공산주의를 주창한 볼셰비키 혁명의 발발”이라며 “곧바로 1918년 1차 대전이 끝나고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다. ‘식민지는 지배국가에서 자유로워져 스스로 주권을 갖고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택할 수 있다’며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자유민주주의적 질서를 재편하자는 주장을 했다. 이를 지지했던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열린 세계 공산당 회의가 아닌, 1차 대전의 종언을 선언했던 파리 평화회의에 외교대사를 파견했다”고 했다.

박 교수는 “3.1운동 이후 제정된 임시헌장 제7조는 ‘대한민국은 신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국가로 국제연맹에 가입하여 인류의 문화와 평화 증진에 노력한다’고 나왔다. 결국 3.1운동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대한민국이 편입하겠다는 선언”이라며 “윤치호 선생도 ‘미국은 돈이 많아서 관대하고, 다른 나라와 싸워 복수하려들지 않고 땅이 넓어서 영토 점령 욕구가 적다’고 자신의 저서에 기록했다”고 했다.

또한 “당시 일제강점기에 파견된 서양 선교사들은 조선에 병원, 학교 등을 세워 선교했다. 조선 사람들은 선교사의 행동을 통해 미국을 긍정적으로 봤다”며 “중화질서를 중심으로 돌아간 한국사는 이제 3.1운동을 기점으로 한국민족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서구 질서에 편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결코 외부 강요가 아니”라고 했다.

특히 “3.1운동은 대부분 기독교가 주도했다. 준비과정에서 1918년 11월 기독교인 이승만 박사는 1차 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이 박사를 중심으로 대한국민회은 윌슨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보냈다”며 “비슷한 시기, 중국 상해에서 상해한인교회 청년들이 주축이 된 신한청년당은 ‘향후 중국과 일본이 미국의 적대국가가 될 수 있다’며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유일한 기독교 국가인 대한민국이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할 나라’라며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원조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했다.

박 교수는 “3.1운동은 천도교와 기독교의 합작이지만, 대부분의 희생자는 기독교인이었으며 기독교 학교를 통해 운동은 삽시간으로 전역으로 확산됐고, 이 소식을 해외로 전하는데 기독교가 통로 역할을 했다”며 “3.1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간 상해임시정부도 정동제일교회 담임 현순 목사와 상해한인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돼 이후 대종교 세력이 합류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승만 박사는 현순 목사에게 기독교 정신을 상해임시정부 헌장에 첨가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선언문의 맨 마지막엔 ‘대한민국은 앞으로 세워질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될 것’이라며 신(神)이 세 번이나 기록됐다”며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또한 미국식 민주주의에 따라 삼권분립 적시, 신분제와 공산주의 계급제의 부정, 개인의 인권 곧 종교의 자유, 소유의 자유를 명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독교 정신과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기초로 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계승한 게 대한민국 헌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중국 눈치를 보며 미국과 중국 사이 회색지대에 놓인 상태다. 이럴수록 자유민주주의를 견지하는 미국과의 동맹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아시아에서 중국 공산주의는 위협세력이다. 중국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종교, 재산권의 자유 등 자유민주주의가 이뤄질 때, 아시아에 평화가 도래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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