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회포럼 세미나
권수경 교수(고려신학대학원)가 ‘고통의 신학적 이해’라는 제목으로 첫 발제를 했다. ©미래교회포럼 세미나 영상 캡쳐

미래교회포럼이 19일 ‘복음과 보편적 고통’이라는 주제로 1차 온라인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날 권수경 교수(고려신학대학원)가 ‘고통의 신학적 이해’라는 제목으로 첫 발제를 했다.

권수경 교수는 “2021년 미래포럼의 주제는 ‘복음과 보편적 고통’이다. 모두가 함께 겪는 고통이 보편적 고통이다. 인구 전체를 괴롭히는 코로나19 범유행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며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런 의미에서 고통은 필연적이며 보편적이다. 또한, 고통과 인간관계는 고통을 이해하는 중요한 측면이다. 고통은 관계를 통해 존재하고 증폭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고통은 사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가 다쳐 아픈 것이 나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내가 아프면 내 가족이나 친구 친척 등 가까운 사람들도 그 고통을 공유한다. 이 점에서 고통은 사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오늘 발제의 주제는 ‘고통의 신학적 의미’이다. 고통의 신학적 의미를 기독교 신학 전체의 틀에서 찾아보려 한다. 전체 신학의 관점에서 고통을 핵심 주제로 다룬 일은 거의 없고 다른 주제와 관련해 부차적으로 언급하는 정도였다. 고통은 주로 죄가 가져온 결과로 또 그리스도 사역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등장한다. 신학에서 고통을 독립된 주제로 다루지 않은 이유는 핵심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고통은 죄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데 전통 신학은 죄가 가져온 결과보다 원인인 죄 자체를 주로 다룬다. 다른 종교와 달리 복음은 고통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고통은 복음과 신학의 중심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성경 첫 부분에서 이미 고통은 인류의 숙제가 되었고 구약 욥기도 고통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다. 시편에도 고통받는 성도의 부르짖음이 가득하다. 선지자들의 메시지도 불의와 고통에 관한 것이 많다. 신약성경도 인류의 고통과 그 고통에 참여하시는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으며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도 고통과 악의 문제는 신정론이라는 분과를 태동시켰다”고 했다.

“사실 복음의 기본을 담은 창조, 타락, 구원의 구도 자체부터 없었던 고통의 등장 및 그 고통을 제거하고자 하는 노력과 나란히 달린다. 복음은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 고통이 넘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 고통의 의미를 일깨우고 또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참 방법을 제시한다”고 했다.

자연 종교가 다루는 고통

권 교수는 “자연 종교는 고통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면, 종교라면 고통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삶의 근본 문제와 씨름하고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종교인데 고통은 인간 존재 자체와 깊이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종교가 고통을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그 해결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며 “보편적 고통인데도 해석이 다양한 이유는 성찰의 바탕이 되는 신화와 세계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진리는 하나지만 비진리는 다양한 모양을 갖는다. 자연 종교의 공통된 특징은 고통을 개별적 현상으로 이해하고 탐구했다. 몸과 마음의 온갖 아픔에다 모든 고통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의 문제까지 파고들었지만, 그것을 보편적 고통으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통의 원인을 탐구할 때도 질병, 상처, 죽음 등 개별 현상에 대한 자연적 원인만 따졌을 뿐 그 모든 것들이 공통분모인 고통이라는 것 자체가 왜 있어야 하는지는 묻지 못했다. 이게 자연의 한계다. 한 마디로 보편적 고통이라는 개념에 도달하지 못했고 따라서 근본적인 문제도 묻지 못하고 말았다”며 “고통은 개인적으로도 문제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더 큰 문제로 발전한다. 사회 곧 인간관계는 그저 아픔을 증폭, 공유, 치유하는 역할로 그치지 않는다. 고통이 사회적 차원에서 갖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악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불의라는 악이다. 고통 자체도 아프지만, 그 고통이 의롭지 못하다는 사실, 공평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더 큰 아픔을 가져온다”고 했다.

성경이 말하는 고통

권 교수는 “이제 성경이 말하는 고통을 보면, 고통의 원인은 죄이다. 기독교 복음은 처음부터 고통의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고통의 문제는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의 기본적 기독교 세계관 구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성경 첫 부분은 하나님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선언에 바로 이어 그 아름다운 우주에 왜 고통과 악이 들어오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교만한 욕망이 불순종으로 이어져 인간에게 고통이 왔고 그 고통의 절정인 죽음도 왔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고통은 인간의 조건 가운데 피조성이 아닌 죄성에 집중한다”고 했다.

그러나 “고통에는 유익이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가 바로 죄를 깨닫게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고통은 죄의 존재를 일깨운다. 죄를 병에 비기자면 고통은 그 죄의 존재를 알리는 증세다. 증세는 다양하지만, 병은 오직 하나 죄다. 그렇기에 고통은 보편적”이라며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고통받던 수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셨다. 그런데 몸의 병만 고치고 만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의 병이 나은 것을 계기로 영혼의 병까지 고쳐 구원받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자연종교는 개별적 고통만 알았기에 증상을 병으로 착각한다. 따라서 병을 고치려 애를 썼지만 사실상 병은 그대로 두고 진통제만 투여하고 말았다. 그러나 복음은 보편적 고통을 인식함으로써 이 땅의 고통은 병이 아니라 진정한 영혼의 병에 대한 증세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죄의 병에서 고침받는 참 치료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또, “그리스도인에게 고통은 2가지 유익이 있다. 첫째로 죄에 대한 징계로 주어지는 고통이 있다. 이런 고통은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게 만든다.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도 죄와 싸워 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하나님은 고통을 이용해 우리를 꾸짖으신다. 시편에는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죄를 깨닫고 거룩함에 나가아게 된 신앙인의 고백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두 번째로, 고통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겪는 고통이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지 않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산 결과 고통을 겪기도 한다. 한 마디로 복된 고통이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 자체가 이 세상에서는 고난이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 된 우리가 세상의 미움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요 15:18-19)”고 했다.

권 교수는 “고통은 생각보다 복잡한 부분이 이다. 그런 고통에는 불의한 고통과 까닭 모를 고통이 있다. 불의한 고통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안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을 공격하는 요소가 된다. 불신자들이 보기에는 억울한 고통, 부당한 고통이 너무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능력이 모자라거나, 인간의 고통을 즐기는 신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또, “까닭 모를 고통은 성도들에게만 문제가 된다. 구약 욥기가 이런 고통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뛰어난 지혜를 제공한다. 까닭 모를 고통이 우리에게 당혹감을 주는 이유는 하나님의 외면 때문이다. 욥의 경험 그대로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이라도 해 주시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파스칼은 이런 하나님을 가리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라 부른다”고 했다.

성경이 말하는 고통의 해결책

권 교수는 “성경은 고통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의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까지 제시한다. 그 해결책에 대한 성경의 답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 복음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통에서 건지신다는 약속이다. 보편적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이요 위로다. 인간의 죄를 해결하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말하는데 그 구원의 방법이 놀랍다. 하나님 당신이 피조 세계로 들어오셔서 인간이 초래한 모든 고통을 친히 겪으시는 방법이었다. 십자가 고통은 고통의 원인인 죄를 없애 (요일 3:5) 우리를 고통 그 자체에서 해방시켰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주님을 믿은 우리 모두의 죄가 씻겼고 우리 고통의 문제도 해결되었다”고 했다.

이어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한 마디로 사랑이었다. 하나님은 본디 사랑이시기에 인간의 고통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계기가 되었다. 또 고통은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시는 방법이 되었다. 부당한 고통도 까닭 모를 고통도 하나님의 사랑의 계기다. 하나님이 고통 가운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는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고통을 받는다면 고통은 어느 것이든 하나님과 우리가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이 된다”며 “욥기에도 그런 가르침이 담겼다. 욥기는 욥의 인내를 전한다. 인내(忍耐)는 말 그대로 참고 견디는 것인데 헬라어로 참음은 ‘makroqumiva’ 견딤은 ‘uJpomonh’가 된다. 욥은 이 두 가지에서 본을 보였다. 참은 것은 극도의 불행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은 것이다. 욥기 첫 두 장이 가르치는 교훈이다. 그런데 욥기는 참음보다 견딤을 더 강조한다. 욥기 3장부터 마지막 42장까지가 사실 이 견딤에 관한 것이다. 견딤은 자신의 책임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권 교수는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가 본받아 동참해야 할 고난이다. 그 고난에 동참하는 삶은 고통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 삶으로 나타난다. 고난을 견딘다는 것은 가만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 가운데서도 이를 악물고 사랑의 실천을 계속하는 일이다. 코로나19 범유행은 고통이다. 지구촌의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성기일 수 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다. 세상은 들을 수 없는 그 음성을 교회는 듣고 순종해야 한다. 복음과 보편적 고통을 연구하는 2021년의 미래포럼이 그런 노력의 중심에 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는 최승락 교수(고려신학대학원)가 같은 제목으로 두 번째 발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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