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은 샘병원 미션원장,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공동대표
박상은(샘병원 미션원장,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공동대표)

최근 인권위원회가 낙태죄 폐지와 관련해 정부에 향후에는 재생산권 차원에서 논의해 주기를 요청한 바 있다. 급진 페미니즘에서 사용하는 재생산권이라는 용어는 자기결정권과 함께 이제 그리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재생산 권리란 차별, 강요, 폭력, 사회적 낙인 없이 자녀를 가질지 여부와 출산의 시기, 방법, 자녀의 수 등을 여성 스스로 결정하고 행사할 권리를 말한다. 내 자궁안의 태아도 내 소유이기에 내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태아도 마치 물건처럼 내가 생산해내는 것이기에 내가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철저히 유물론적인 사상이 아닐 수 없다.

자녀의 성별도 내가 결정하고 자녀의 터울과 태어나는 시기까지 내가 결정한다는 이 사고 속에는 태아가 존엄한 인간생명이라는 인식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태아는 얼마든지 수단적 존재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지난 연말 시한까지 낙태법 개정이 무산되고 올해 낙태와 관련해 무법천지의 세상을 맞이하면서 급진 페미니즘 단체들은 이참에 재생산권리와 관련된 다양한 법적인 조치까지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이 말하는 인권은 너무도 편협하여 태아와 아기의 생명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급진 페미니즘 단체들이 주장하는 내용 중에는 24주 이후 후기 낙태수술을 받았음에도 모체 밖에 살아나오는 경우 이 아기를 죽일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해달라는 요청도 포함된다. 원했던 출산시기가 아니며, 본인이 원했던 임신이 아니었기에 이 아기는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재생산권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가령 장애를 가진 아이임이 발견되어 후기낙태수술을 받는 도중 살아서 배출되는 경우 장애아이를 원하지 않았기에 아기생명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까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아이의 생명보다 자신의 행복과 가장 멋진 아이에 대한 욕심을 앞세울 때 우리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언론을 통하여 양모, 양부의 살인적 아동폭력으로 죽임을 당한 정인이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며 온 국민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아동학대의 과정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이 어린 아이는 철저히 수단적 존재이며, 물체로 취급을 받는 것이다. SNS를 통해 우리는 너무도 생생한 실체를 접하게 된다. 서 있는 아기의 다리를 벌려놓거나 걸음마 중인 아기에게 다리를 거는 방법으로 일부러 넘어지게 한 뒤 그 모습을 보고 깔깔깔 웃으며 동영상을 촬영한다든지, 아기를 마치 가방 들 듯이 목덜미만 잡은 채 발은 공중에 떠 있게 한다든지 엘리베이터 손잡이 위에 아기를 세워두고 태연하게 거울을 보고 있는 장면은 치를 떨게 한다.

병원에서 찍은 CT영상에 고스란히 드러난 폭력의 실상, 갈비뼈를 비롯한 여러 뼈들이 지속적으로 골절 당하고 복부장기파열이 심해 장에서 피가 나와 배안이 피로 가득해 장기까지 썩었고 심지어는 가장 뒤쪽에 위치한 췌장마저 절단된 아이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낙태된 태아의 모습과도 같은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어느새 오랜 동안 반복적인 낙태로 길들여진 폭력이 은밀히 우리 속에 내재화되어 출생한 아기에게까지 아동학대의 모습으로 확산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인권의 시작은 가장 연약한 인간생명의 보호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낙태와 아동학대의 공통점은 인간생명의 수단화이다. 그 어떤 인간도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인종이 다르고,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결코 다른 사람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입양한 정은이를 포함한 우리 모든 인간은 목적적 존재이다. 그 누구도 나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또한 남에게 자랑하고 그럴 듯하게 치장하기 위한 수단이 결코 아니다. 여성의 재생산권 주장도 내 몸이고 내가 원하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그로 인해 고통받을 연약한 생명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재생산권 논의를 생명존중의 관점에서 재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박상은(샘병원 미션원장, 한국생명윤리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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