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도라는 굳센 바위를 망치로 깨고 채석하는 석수장이와 같은 매서인들
1909년 대한 기독인 ‘백만구령운동’에 연보, 7만일 이상 ‘날 연보’ 서원

1910년도 BFBS 대한제국 활동 상세 보고서

인구(추정) 약 10,000,000명,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상류층에서는 유교 의식이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제국에는 승려들도 많이 있다.

지난해(1909년) 약 114명의 매서인은 1908년도의 6만581권, 1909년 5만3,996권보다 많은 9만5,252권의 성경책을 판매했다. 전 세계 성경배포량을 보면 1908년도에 16만2,687권, 1909년 35만6,617권이었는데, 지난해의 성경배포량은 66만6,178권이었다. 또한 지난해 회계 기간 대영성서공회에서 받은 후원금, 판매대금은 39파운드 6실링이었다.

대한국지부: 대한제국, 서울, 종로, 대영성서공회사
총무: 민휴(Mr.Huh Miller)
부총무: 서울 베시 목사(Rev. F.G. Vesey)

부인 매서인
성경을 판매하는 부인 매서인. ©GCAH Digital Library

서언

 

지난해 대한제국은 일본에 병탄되었고, 영사재판소의 치외법권행사가 폐지되었지만, 선교활동에는 해를 끼치지 않았다. 비판은 더이상 나올 수 없다. 교회의 놀랄만한 집회는 선교사들이 부패한 관리들과 무원칙한 정부에 맞서 보호해 주리라는 열망에서였고, 병탄 이후 어떤 사건으로 판단하자면(내주: △1905년 제2차 을사늑약 체결 △1907년 한국군 해산·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고종 황제 퇴위·제2대 황제 순종 즉위 △1909년 기유각서·사법권과 경찰권 박탈·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남한 대토벌 작전 △1910년 데라우치 제3대 통감 부임·한일 병합조약 등 앞선 굵직한 사건과 비교하자면) 비판(투쟁)은 결코 없거나 저항이 줄어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선교활동은 모든 단계에서 전에도 그랬지만 효과적이고 대중적이다. 집회에 모이는 신자들은 이전보다 더 늘었다. ‘백만구령운동’은 대한에서 1909년 가을에 선언된 백만 명의 새로운 신자 달성 목표인데, 대한의 크리스천들에게 그들의 믿음을 열정적으로 간증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지난해만큼 이 나라의 모든 가정에서 예수님에 대한 개인 전도는 많지 않았다. 대한에서 대영성서공회는 특별보급판 마가복음서를 60만 권 발행했으며 대한의 기독인들에 의해 50만 권 이상이 판매되고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배포되었다. 이 복음서들은 읽힐 것이고, 낮게 잡아도 전체 100만 인이 넘을 것 같다.

이와는 별도로 대한 기독인들은 25만 엔(25,000파운드)을 ‘백만구령운동’에 연보했고, 또한 7만 일 이상 ‘날 연보’를 드려 전도하기를 서원했다. 아직 대한 기독인들의 숫자가 얼마나 늘었는가를 집계할 수 없지만 공공예배에 참석자가 늘었고 문의를 해오는 그룹이 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보고서에 있는 지난해 대한의 성경 사역에 관한 정보는 『The Bible in the World』에서 보강될 것이다. 1910년 8월 통계는 마펫(Rev. Dr. Moffet) 목사의 글 ‘Bible Study in Korea’, 9월 통계는 베시(Rev. F.G. Vesey) 목사의 ‘In a Korean Temple of Buddaha’, 10월 통계는 데비스(Mr. G.T.B. Davis)의 글 ‘Five hundreds miles' Pilgrimage for a Bible’, 그리고 1911년 1월 통계는 베시의 ‘Sowing and Reaping in Korea’ 기술을 참조한다.

위원회에서는 미국 미시건의 알비온대학(Albion College) 출신의 롬프레이(Mr. Ivan.L. Lomprey)를 대한공회 부총무로 임명했다. 롬프레이는 장로교단 소속이며 신실한 기독교인이고, 교육자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고 사업 경험도 있어 우리 서울 보급소(Depot)에 기여가 기대된다.

성서공회 주일

성서공회 주일은 5월에 지켜졌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대한 신자들로부터 400엔(40파운드)의 후원금이 모금되었다. 우리는 공회와의 협력사업과 이렇게 신뢰하고 지지해 주는 결과에 고무되어 있다. 많은 부분이 가난한 과부의 정성 어린 헌금이기 때문이다.

N.B.S.S.(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지난해 NBSS의 활동을 살펴보면 NBSS는 250파운드를 후원했다. 그중 195파운드는 번역비로 지불되었고, 나머지 금액은 매서인들을 지원했다. 이러한 후원금으로 매서인들이 1,638권의 성경을 판매했고 이 수량은 NBSS 실적으로 계상되었다.

번역

우리는 성경을 완역한 데 대해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이 사역은 개신교 선교사가 조선에 사명을 받고 발을 디딘 지 27년 만의 성과이고, 성경번역위원회가 구성된 지 24년 만의 쾌거이다. 그때 참여했던 멤버 중 오늘날까지 있는 사람은 2명뿐인데, 그중 언더우드(Rev. Dr. H.G. Underwood) 목사만이 활발하게 이 일에 헌신하고 있다. 언더우드 박사는 성서번역위원회의 첫 번째 의장이었고, 그가 선교현장을 떠난 짧은 기간 이외에는 계속해서 그의 능력을 발휘했다.

언더우드 박사, 게일 박사, 번역위원회의 총무, 그리고 구약성서 번역의 많은 짐을 맡았던 레놀즈(Rev. Dr. W.D. Reynolds) 박사에게, 그리고 번역위원회 한국인 형제들과 조수들, 번역위원회와 한국교회는 이들에게 큰 빚을 졌다. 성경 번역은 완역될 때까지 많은 질병, 결근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 선교사 관리 등 난관과 힘든 업무를 극복하고 완성한 것이다. 미국성서공회와 스코틀랜드 성서공회는 대영성서공회와 함께 성경번역 비용을 분담했다.

출판과 출고

지난해 신약성서 2종류 10,000권을 출간했고, 열왕기 상·하 각 2,000권, 사무엘상·하 각 2,000권, 언문판 마가복음 40,000권, 한글 한자 혼용 신약전서 25,000권 포함 449,000권을 출판했다. 이 수량은 1909년과 비교해 보면 23,500권이 적은 것이다.

서울 성서공회 보급소에서는 지난해 57만9,662권을 출고했다. 이는 신구약 합본과 구약성경 590권, 신약성경 5만1,818권과 쪽복음 52만7,254권의 합계이다. 이 통계는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 14만7,578권이 증가한 것이다.

반포

성서공회의 지난해 성경 반포량은 66만6,178권이다. 이것을 작년과 비교하면 30만9,561권이 증가한 것이다. 공회 직원들, 선교사들과 대한의 기독인들에게 우리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낸 것은 그들의 도움과 협력 때문이다.

무료 배포

무료 반포는 주로 병원이나 이주민에게 주어졌다. 지난 12월 성서공회는 서울에 있는 모든 일본인 병원에 반포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수개월 동안 부산에 있는 일본인 목사들의 협력으로, 일본에서 부산에 도착하는 일본인들을 만났고 (그곳에서 바람직한) 모든 일본인에게 복음서나 신약성경을 주었다. 그러한 사역은 잘 진행되었지만, 그 사역은 일본인 목사가 다른 임지로 갔기 때문에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매서인들의 사역

지난해 매서인들이 반포한 성경은 9만5,252권이 늘었지만, 매서인들의 평균 판매량은 많지 않았다. 고려해야 할 것은 비록 읍내에 사는 사람들일지라도 대한 서민들은 책 읽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고, 돈이 많이 부족했다. 매서인들은 그들이 판매하고자 하는 성경을 판매코자 하는 사람들에게 동기 유발을 시켜야 했고, 선교사들은 주어진 사역에 바쁜 정기적인 일들 때문에 매서인들 감독과 지원을 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서공회 제2총무로 롬프레이를 임명하고서 베시는 대한 매서인들을 효과적으로 감독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1910년도 매서인들의 평균 판매 수량은 882권이었으며 1909년의 평균 판매 실적은 529권이었다.

일본인 매서인

일본인 매서인 기무라는 일본의 외딴 섬이나 대한 반도의 일본 정착촌을 방문했다. 한번 서울을 떠나면 그는 7개월 동안을 활동하기도 했고, 가끔은 질병과 불편함 때문에 낙심하기도 했지만, 그는 성실히 매서 활동을 잘 수행했다. 일반 신문에서도 그에 대해 칭찬하는 기사가 있다. 일본에서 주께 고백한 일본인 5명이 대한에 와서 주의 곁을 떠났는데, 그가 다시 주님의 품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1909년 그는 의주에서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하며 성경을 판매했는데 그에게 성경을 산 여인은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헌데 그가 평양으로 돌아가려는 날 그는 교회에 출석한 그 여인을 만나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여인은 성경을 읽었고 마음 깊숙이 자신의 죄를 고백했고 예수님을 받아들였다. 그 여인은 의주에서 평양으로 이주해 행복한 결혼을 했고, 끔찍한 진흙 구렁텅이에 빠진 자신을 구원해 주신 주를 기쁨과 신실함으로 섬기고 있다.

매서인 기무라는 지난가을 일본성서공회에서 대한을 방문한 로렌스(Mr. A. Lawrence)의 협력으로 많은 힘을 얻었고 또 도움을 받았다.

중국인 매서인

만주지방 성서공회 지소를 지원하고 있는 털리(Mr. R.T. Turley)를 통해 공회는 3개월간 중국인 매서인들과 협력을 했다. 그중 우 씨는 아주 성실히 일했는데 4명의 중국인이 예수를 믿기로 했다고 보고했다. 그는 대한에 있는 중국인들의 주님을 향한 변화를 말해주었다. 처음 다른 중국인들은 매서인이 말하는 이야기며 매서인이 판매하는 성경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인 상인들이 복음을 듣기 원하며 또한 성경을 구입하기를 원했다. 더구나 우의의 표시로 그들은 이웃에 거주하고 있는 그들의 친구들도 매서인에게 소개해 주었다.

성서공회에서도 털리와 그의 협력자들의 방문을 받았는데 그들은 매서인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털리의 방문에 감사했고 특별히 우 씨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중국인 매서인은 영어, 일본어, 한국어를 할 줄 몰랐고 우리는 중국어를 몰라 서로 소통하기 힘들었다. 비록 한자 단어를 써서 소통하는 지루한 대화였지만, 그러나 매서인들은 그의 언어로 소통하는 털리를 환영했다.

서울

7월에 서울을 센터로 해서 사역하는 매서인 감독들과 협력해서, 베시의 지도 아래 매서인들이 서울에 모여 교육을 받았다. 매서인들은 매일 2시간씩 시내에 있는 목사들의 도움을 받아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전도하고 성경을 판매했다. 실질적으로 시내에 있는 모든 집을 방문했다. 이 노력에 대해 밀러는 이렇게 보고했다.

“우리는 서울에 14명의 매서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11명의 봉사자를 지원받았습니다. 그러니 도합 25명이 매일 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계획은 8시에 매서인들이 함께 모여 1시간 동안 기도회를 하고, 두 사람씩 짝지어 활동지역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점심때까지 일했고 오후 3시에 다시 모여 선교사가 지도하는 성경공부 시간을 가졌습니다. 4시에 다시 일하러 가서 해가 져서 어두워질 때까지 전도하고 성경을 판매했습니다. Y.M.C.A는 이 매서인들 교육을 위해 강의실 하나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베시는 우리 공회 매서인들이 활동하는 센터 여러 곳을 방문해서 실제 사역 방법을 시범 보이고 어떻게 매서인들이 가장 성과를 내며 일할 수 있는가를 교육했다. 매서인들은 진실하고 나무랄 데 없었지만, 그들은 성경을 가장 잘 판매하는 방법을 몰랐다. 베시는 매서인들을 감탄스러울 만큼 잘 교육했기에, 우리는 그가 방문한 센터의 매서인들이 그들의 사역에 있어 전도뿐만 아니라 성경 판매 양적인 면에 있어서도 많은 발전을 기대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매서인 감독들과 협력할 것이고, 이 땅에 주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하게 되기를 바란다. 다른 해와 비교할 때 올해 매서인 감독들의 보고는 가장 만족스러웠는데 바로 이들 선교사가 그들의 사역을 직접 보았고, 그들이 씨를 뿌린 곳에서 수확을 했기 때문이다.

바위를 열다

그리어슨(R. Grierson) 의사의 보고이다. “위대함이란 작고 보잘것없는 의무를 싫증 내지 않고 끊임없이 순전한 인내로 함으로써 마지막에는 마음속에 바라던 것을 얻게 되고 대망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매서인들은 진실로 위대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교도라는 굳센 바위를 망치로 깨는 석수장이들로서, 강하게 반발하는 큰 바위에서 다른 사역자들이 쓸 수 있는 돌을 채석해준다. 그들은 결과가 나타나기 전에 오랫동안 버티지 않을 수 없다.

이전의 선교사들이 울부짖었던 ‘오 바위, 바위, 언제 열릴 거냐?’ 하는 생각은, 매서인들이 복음증거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마을들을 지날 때마다 그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매일 외치는 말이다. 길주에서 일하는 매서인 김기안(Kim Kel An)은 어느 추운 날 밤 마을 밖 어둠 속으로 쫓겨나 한숨 쉬며 기도했는데, 그 마을은 매서인에게 어떤 배려도 허락지 않았다. 그가 탄식을 하며 떠났듯이, 1909년에도 많은 마을과 장이 그런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계속 돌아다니며, 그런 곳에 돌아가 사랑의 권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제 1910년 올해에는 그 지방 곳곳에 교회들이 여러 곳 생겨났다. 지난번 그의 숙박을 거절했던 그 마을을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게, 사람들을 위대하게 변화시킨 그 매서인에게 칭송을 보내며 열렬히 환영했다.” <계속>

『매서인은 교회설립의 선구자였다』에서 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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