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영(미국변호사, 세인트폴 세계관 아카데미 대표)
정소영(미국변호사, 세인트폴 세계관 아카데미 대표)

얼마 전 EBS가 방영한 '발효'음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매우 흥미롭게 보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만들어 먹고 있는 다양한 발효음식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의 김치를 비롯해서 중국에서 먹는 두부 발효음식, 우리나라의 젓갈과 비슷한 베트남의 생선 발효음식, 그리고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유럽 여러 나라의 치즈와 발효된 육류로 만든 햄 등을 소개해 주었는데 이런 재료로 만든 요리사들의 음식들은 마치 예술 작품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효소 또는 곰팡이를 이용해서 음식을 삭혀 먹는 법을 알게 되었는지 참 신기했고, 그것이 또 소화율도 높고 건강에도 좋고, 긴 시간 저장이 가능해서 인류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옛 사람들의 지혜가 현대인들 못지않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한 가지 실험장면을 보여주었는데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여러 나라의 전통적인 발효음식을 맛보게 하고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발효음식인 '삭힌 홍어'도 그 실험에서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였다. 실험 결과,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발효음식에 대해서는 냄새나 맛이 싫거나 역겹지 않은 반면, 익숙하지 않은 다른 나라의 발효음식에 대해서는 토할 것 같다거나 냄새가 너무 역겹다거나 음식이 썩은 게 아니냐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 실험 결과에 대한 내레이터의 설명이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혐오감을 느끼도록 진화해왔으며 이것은 비단 음식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도 적용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인종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등도 이러한 진화의 메커니즘이 작용한 결과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요리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갑자기 '혐오와 차별'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과 함께 낯선 것에 대한 혐오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문화적으로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해결책까지 슬그머니 제시해 주니 좀 당황스러웠다.

재미있게 잘 보고 있다가 갑자기 '진화', '인종',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같은 단어들이라니.... 세계관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필자로서는 직업병이 발동해서인지 몹시 귀에 거슬렸다.

겉보기에는 매우 중립적이고 흥미로운 콘텐츠들 속에 성경적 가르침에 반대되거나,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을 흐리게 만드는 내용이 많아진 것이 요즘 미디어의 특징인 것 같다. 이런 콘텐츠들을 그냥 순진하게 받아들였다가는 자기의 생각이 어떻게 길들여지는지도 모른 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려 갈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가 본 발효음식 다큐멘터리에서도 음식에 대한 편견은 문화적으로 진화되어 온 탓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해 준 음식이 나에게 가장 맛나게 느껴지도록 입맛이 길들여지는 것을 진화라고 한다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입맛에 대한 자연스러운 선호나 혐오의 감정을 인종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감과 같은 종류로 슬쩍 엮어 버리는 것은 정말 놀라운 비약이다.

입맛은 취향에 관한 문제이고, 인종은 선천적 유전에 관한 문제이고, 성소수자의 성행위는 도덕적 판단이 가능한 행동에 관한 문제이기에 각각 서로 다른 기준과 규범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인데 말이다.

입맛이나 옷차림 같은 것은 개인의 취향과 선택의 영역이고 문화적으로 다양할수록 세상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측면이 있다. 물론 그것에도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상식선에서 이해 가능한 폭이 넒은 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단순히 타고 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차별하는 것은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수용할 수가 없다. 마음속으로야 어떻게 생각하든지 행위로 그러한 인종에 기반한 혐오를 표현하는 것은 제재 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성소수자의 경우는 어떤가?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의 성행위를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용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위가 자연적인 질서에 위배되고, 그러한 성행위가 사회전체에서 인정되고 확산되는 것이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 존속시키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성소수자 개개인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들의 성행위에 대해서는 취향이나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분별해야 하는 영역임을 분명히 하고 그들이 올바른 길로 돌이키도록 돕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세상은 자유와 방종, 도덕과 취향을 마구 섞어 버리고, 그것에 대해 애써 분별하려는 사람들을 혐오분자라고 하거나 차별주의자라고 몰아붙인다. 바른 길을 가려고 하고, 바른 길을 제시하려고 애쓰는 것을 편협하다며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냐고 회유한다. 이런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각종 미디어에서 콘텐츠를 넘쳐나게 생산해 내고 있는 세상에 살면서 요리프로그램 하나 조차도 마음 편하게 볼 수 없어진 이 시대가 너무 불행하게 느껴진다.

정소영(미국변호사, 세인트폴 세계관 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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