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던 날
영화 <내가 죽던 날> 메인 포스터
SYNOPSIS
업무수행 중 발생한 사고로 휴직 중인 형사에게 복직의 발판이 될 사건이 주어집니다. 미제 중인 한 소녀의 실종 사건을 자살로 마무리 지으라는 것이지요. 소녀는 범죄 사건의 핵심 증인이었기 때문에 외딴 섬 안가에서 경찰의 보호와 감시를 받던 중이었습니다. 수사를 위해 섬에 도착한 형사는 소녀에게 거처를 제공했던 마을주민 순천댁을 만나 소녀의 행적을 추적해 나갑니다. 그런데 수사를 진행하면서 소녀가 자살하지 않았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춰진 진실과 마주하게 되지요.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공감과 연대
형사는 믿었던 남편의 외도로 인해 깊은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매일 밤 자신이 죽어 있는 꿈을 꿀 정도로 피폐한 상태지요. 소녀는 아버지의 밀수범죄가 드러나 있는 비밀장부를 멋모르고 경찰에 넘겨줘 버린 바 있습니다. 제 손으로 아버지의 죄를 밝혔다는 자책감과 경찰의 감시 아래 살아야만 한다는 강박은 사춘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고통이었지요. 순천댁은 중병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어린 조카를 키우고 있는데요. 조카를 요양원에 보내려는 주변의 조치에 결사적으로 맞서느라 농약을 들이마시는 바람에 목소리를 잃은 상태입니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형사는 소녀의 절망에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소녀의 아픔에 공감함은 물론, 소녀의 상처를 통해 자신의 상처 입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죠. 그런데 수사를 계속할수록 소녀와 순천댁의 사이에 교감이 있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사라진 소녀, 그녀의 행적을 쫓는 형사, 그리고 소녀와 교감했던 순천댁, 이 세 사람은 삶의 벼랑 끝에서 서로 연대함으로써 제목과는 달리 ‘다시 태어난 날’이자 ‘새롭게 살아가야 할 날’을 열어냅니다. 이는 ‘죽으려고 그랬던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살려고 그랬던 거’라는 형사의 외침이 소녀와 자신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장면에 투영된 처연함의 정서
소녀가 서 있었을 벼랑 끝은 소녀뿐만이 아니라 형사가 처한 상황을 표상하기도 합니다. 남편의 외도는 물론 이와 무관하지 않았던 사고, 경찰조직 내에서의 갈등, 이렇게 인생의 끝자락에 내몰린 주인공의 처연한 심경이 벼랑이라는 영화적 장치에 배어나 있지요.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외딴 섬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섬이란 들어오기도, 나가기도 쉽지 않다는 점 때문에 고독과 소외라는 정서와 연결되지요. 마음 둘 곳 없는 등장인물들의 외로움은 외딴 섬의 쓸쓸한 풍광과 적절하게 조응합니다.

형사는 명색이 남을 수사하는 사람임에도 정작 자기 남편의 외도를 까맣게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범죄자인지 몰랐던 소녀도 마찬가지였죠. 이는 가장 친밀해야 할 가족관계에서조차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은 우리의 민낯을 솔직하게 반영합니다. SNS를 비롯한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정작 서로의 본 모습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단면이 이와 같을 겁니다. 주인공이 도시를 벗어나 외딴 섬에 가서야 비로소 공감하며 연대할 대상을 찾게 된다는 점 또한, 수많은 인간관계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막상 내밀한 상처를 공유할 상대란 좀처럼 찾기 힘든 현대인의 서글픈 자화상이 아닐까요.

상처 입은 자들에게 조용히 건네는 위로
순천댁은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소녀에게 말로 위로했을 리는 없습니다. 섣불리 어른 행세를 하며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겠죠.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소녀와 형사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입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들춰내지 않고 그저 상처에 공감하는 것이 진짜 위로를 주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훈계합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언 10:19).

위로에는 두 종류가 있을 겁니다. 슬픔을 당한 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또 다른 하나는 함께 울어주는 것이죠. 후자는 전자보다 무력해 보일 뿐 아니라 상대에게 큰 힘이 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높은 자리에서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마치 해답을 다 알고 있는 양 섣불리 충고하려 하지 않습니다. 실컷 울라며 오히려 눈물샘을 자극하지도 않겠지요. 그저 상처 입은 자의 옆에 가만히 다가가서 숨죽여 함께 울어줄 뿐입니다.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위로란 눈물을 닦아주기 보다는 함께 울어주는 쪽입니다. 그것이 또한 이 영화가 표상하는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방식이죠.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상처 입고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지만, 나의 삶이 힘겹다는 이유로 서로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며 연대함으로서 서로를 위로할 뿐이죠.

우리의 삶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팍팍합니다. 그럼에도 힘겨운 우리네 삶에 희망이 자라날 수 있는 곳이란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이 모인 곳일 겁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내가죽던날 #노재원 #무비앤바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