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모 교수
류현모 교수

서양의 전통적인 세계관인 기독교 세계관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인간 지성의 확장으로 이신론적 신관을 가진 시대를 지나게 된다. 이신론(理神論, deism)은 이성적인 신론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시작에 창조주 하나님과 세상의 끝에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은 인정하지만, 인간의 삶에 동행하며 일일이 개입하는 하나님은 부정하는 신론이다. 이와 같이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과 격리된 인간은 즉시 무신론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리고 1800년대 중후반의 다윈의 진화론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무신론적 세계관으로의 이행을 촉진하여, 모던(modern)시대를 이끄는 쌍둥이 같은 세속적 인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던시대를 지나면서 너무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에 실증을 느끼고,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적 사회변혁을 주도했던 전체주의나 독재정치에 대해 크게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프랑스의 좌파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자신들이 이전에 주장했던 마르크스주의의 실패한 부분을 가리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이 포스트모던주의이다. 이들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생각한다.

포스트모던은 스스로를 세계관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포스트모던에는 메타네러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통용되는 절대 진리는 없다. 그 대신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만 통용되는 작은 국소적 네러티브(스몰네러티브)가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시대에 개개인은 그 스몰네러티브들에 자기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좋은 것이며, 사회는 개개인들의 독특한 의견들을 서로 잘 참고 받아주어야(관용) 한다고 주장한다.

자끄 데리다는 서양철학에서 형이상학의 해체를 시도하였는데, 특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기독교의 형이상학적 기반을 해체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런 철학분야의 시도는 예술에 도입되어 전통적인 미의 기준을 해체하는 다다이즘으로 연결되어 캔버스 위에 소변기를 부착한 작품까지 등장한다. 건축에 도입된 해체주의는 전통적 건축물의 기준을 해체하여, 창문이 없거나 곡면으로 구성된 건축물이 등장한다.

롤랑 바르트는 문학에서 해체주의를 주장했다. 그는 ‘작가의 죽음’이라는 책에서 “글을 출판하면 작가의 역할은 그것으로 끝이다. 작품의 뜻을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시작된 문장의 해체는 문학작품 뿐 아니라 법조문이나 성경의 해석에도 적용되었다. 미국 법원에서 낙태를 합법화하는 “로 대 웨이드” 사건을 판결할 때에도 법조문을 해체하여 입법의 정신과는 다르게 해석했다고 비난받았다. 자유주의적 성경해석의 배경에도 해체주의적 문장 해석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은 “인간이 언어로 구성된 실체”라고 생각한다. 언어로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그 실체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또 소수로서 다수를 선동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기술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거짓도 진실처럼 만드는 선동문구를 절묘하게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동성혼 합법화를 주장하는 구호로 “이성애적 결혼식의 신성함을 믿는 것은 퇴보의 증거이며, 동성결혼의 법제화를 선호하는 것은 열린 마음의 증거이다.” 성해방 구호로 “금욕적 교육 운동을 벌이는 것은 구속하는 행위이며, 자유로운 사랑과 혁명을 추진하는 것은 해방의 표지이다.” 이들에게는 메타네러티브가 없으므로 세상의 시작이나 세상의 끝과 같은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들은 관심 밖의 사항이다.

나의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포스트모던주의는 네오막시즘과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에 의한 소수의 핍박이 세상의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면 아무리 옳은 제도나 법률이라도 나쁜 것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프로이트의 학설을 의지해 정신질환들이 성적인 충동을 너무 억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핍박받는 소수는 무조건 선이고, 이들을 핍박하는 다수는 무조건 악이다. 그래서 사건의 진실과는 별개의 이야기가 만들어져서 선악의 규정을 합리화하는 선전도구로 사용된다.

그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들은 문제의 근원을 기득권을 가진 다수가 힘없는 소수를 핍박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 해결책은 소수들이 힘을 모아 기존의 권위와 문화에 도전하여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지적인 작은 충돌과 다툼을 통해 사회의 기반을 흔드는 것이 필요하다. 억압된 소수들이 그들을 억압하는 다수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어떤 불법을 행하더라도 그것은 정치적으로 정당하다고 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 파업, 불법 점거, 불법 파괴행위 이후에도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들의 해결책은 소수를 억압하는 다수의 근본을 뒤흔들어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어디로 가는가? 다른 무신론자들처럼 영적인 측면을 부정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사후세계는 없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면 모든 것은 끝이라고 생각한다. 죽음 후의 심판이나 윤회의 고리 등, 이생의 삶의 선택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마음대로 사는 삶이 가능할 수 있다.

포스트모던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철학과 네오막시즘이 이념적 배경이다. 68운동의 구호인 “모든 금지함을 금지하라”처럼 이들은 사회의 모든 권위와 주류 문화를 파괴하려 한다. 이념의 순수함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그 이념대로 행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념은 좌파지만 생활방식은 부르주아인 강남좌파가 그들의 정체이다. 자신들 이념의 파괴적, 분열적 특성 때문에 하나의 세력으로 모이기는 힘들다.

그러나 ‘네 마음대로 해’라는 유혹적인 구호 때문에 다른 세계관들을 쉽게 오염시킨다.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의 근원을 이해하고 우리에게도 오염된 이런 요소들을 분별해 내기 위해서 포스트모던 세계관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묵상: 포스트모던이 지향하는 제한이 없는 자유의 결과는 무엇일까?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