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화숙 전도사
최화숙 전도사(탈북민, 한민족 대안학교 교장, 심리상담박사) ©에스더기도운동 유튜브 캡쳐

에스더기도운동이 주최한 ‘탈북민센터 북한구원 화요모임’ 26일 모임에선 최화숙 전도사(탈북민, 한민족 대안학교 교장, 심리상담박사)가,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었던 이야기를 간증으로 전했다.

최 전도사는 “저는 63년생이고 위로 오빠 셋,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다. 해령이 고향이지만 아버지가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고 쌀도 주고 설탕도 주고 공급이 좋은 아오지 탄광으로 자진해서 갔다. 도 경찰청 예심원으로 일하다가 쫓겨났던 아버지는 김일성이 하는 자랑들은 다 거짓말이고 믿지 말라고 하시며 정부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심했다. 혹시나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실수하시면 다 같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갈까봐 마음을 졸이며 살았다. 돌아보니 하나님이 저를 구원해주시려고 지켜주셨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성장했다. 어머니는 앓다가 13살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탄광에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돌아오셨기에 어린 동생들을 살피고 손으로 빨래하고 밥하고 설거지하며 뼈가 휘도록 일해야 했다. 주위 친구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이 부러웠는데, 하나님께서 그 부러움을 다 갚아주시고 채워주셨다. 부모의 사랑과 대비할 수도 없는 주님의 더 큰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나니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가를 나중에 다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는 부러움이 있지만 영의 눈으로 볼 때는 수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다. 부모의 사랑을 백배 합치고도 받지 못할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기쁨과 감격과 은혜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터질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닌 벌레만도 못한 인생에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신 것을 생각하면 벅차다는 마음으로 날마다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결혼을 잘못하면 남편과 시모의 사랑도 못 받고 인생을 종 친다는 생각에 고르고 골라 군관하고 23살에 결혼했는데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와 자식을 때리는 사람과 하루하루를 지옥 같은 곳에서 보냈다. 처음엔 남편을 잘못 만나서 고통을 당한다고 남편을 원망하다가 나중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복이 없다고 단정 짓고 자식들이 12살이 되면 자살할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았다. 돈을 잘 버는 은사도 있어서 아오지 탄광의 십몇만 인구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드는 부자로 잘살았다. 잘 살았지만 마음이 힘드니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런데 북한에선 잘 먹고 잘사는 사람이나 배고픈 사람이나 마음 졸이는 건 피차일반이다. 잘 살면 강도질을 당할 수 있으니 마음 졸이며 살고 배고픈 사람은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니 마음 졸이며 산다”고 했다.

최 전도사는 “큰 애가 13살, 작은 애가 12살 되던 해에 500달러를 주머니에 차고 누구도 모르는 곳에 가서 죽으리라 생각하고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으로 탈북해서 창고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 1998년 6월에 탈북했는데, 10월에 집 앞으로 아주머니 두 분이 '사람에게 하지 못할 마음의 고통을 하나님께 기도하면, 교회 가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며 복음을 전하셨다. 돈도 다 떨어지고 다리에서 죽으려 했다가 아이들 생각에 돌이켰었는데, 며칠 후에 복음이 전해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6개월간 교회를 다니면서 애들 소식을 듣게 해주시고 어디서든 같이 살게 해 주시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겠다고 열심히 기도했지만 아무런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하나님에게 전이되어 교회 전도사님에게 고통을 쏟아냈다. 공평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데 왜 나는 고통받게 태어났느냐고, 하나님 살아계심을 인정할 수 없다고 욥의 아내처럼 실컷 하나님 욕하고 내일부터 안 다닐 각오를 하고 전도사님을 만났다. 전도사님은 두 손을 잡고 사람의 마음으로는 위로할 길이 없고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든 위로해 주시라고 기도해주었다. 그리고 내일 오전 10시까지 와서 성경공부를 2시간만 하고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날이 하나님을 배반하겠다고 한 마지막 날이었는데 하나님을 만나는 날이 되었다”고 했다.

이어 “콧방귀를 뀌며 요한복음을 1장부터 읽어내려가다가 요한복음 11장 25절까지 갔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말씀과 고린도전서 15장에 '부활이 없다면 너희 믿음이 헛되다'는 말씀이 내 머리에 딱 박혀서 고꾸라졌다. 다시 사는 이것 때문에 믿어야 하는구나. 이 땅에서 자식들과 함께 잘 먹고 잘살다가 죽으면 끝이라는 것이 깨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산천초목이 새롭게 보이고 훨훨 날아가는 것 같았다. 마주오는 사람들이 새롭게 보이고 저 사람은 교회를 다니는지, 다닌다면 나처럼 하나님 없다며 마당만 밟던 그 교회를 다니지 않을까가 궁금했다. 또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구원과 천국의 확신이 생기니 세상에 무서운 게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고 했다.

최 전도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신학을 하게 되었냐고 묻는데, 하나님이 저에게 소명을 주신 날이 있다. 연변지역 침례교단에 여름 주일학교 수련회를 위해서 먼저 교사들 70~80명이 모여 수련회를 했었다. 그때 미싱기술을 배워서 돈을 많이 벌 때였는데, 손가락을 다쳐서 일을 못 하게 되었다. 다친 손가락으로 밥 해주는 봉사를 하러 갔는데, 손등이 부어서 일하지 않고 설교를 듣게 되었다. 설교하는 목사님이 ‘우리는 모두 분명히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부르심 받은 소명자들입니다‘라고 평범하게 말씀하셨는데, 긴 장검이 심장을 찌르듯 말씀의 검이 탁 박혔다. 그 자리에서 달달 떨면서 저는 북한에 언제 붙잡혀 갈지 모르는데 복음을 위해서 부르심 받은 소명자가 아니라고 하나님과 계속 싸웠다. 저녁에 텐트 속에서도 야곱이 됐다가 모세가 됐다가 하며 하나님과 싸웠다. 새벽 2시가 되니 잔잔한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께 북한에 붙잡혀 가면 이불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데 어떻게 복음을 전하라고 소명자로 부르셨냐고 원망과 불평을 했다. 그때 '네가 땅을 요로 삼고 하늘을 이불로 삼아 복음을 전하다 죽으면 그보다 더 좋은 천국이 있는데 왜 불평하고 원망하느냐'는 말씀에 불평하고 원망했던 걸 용서해달라고 납작 엎드려서 회개했다”고 했다.

이어 “복음의 소명자로 부르신 것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을 때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몰려왔다. 그 날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한국에 와서 침례신학대를 다니고 북한복지를 위해서 공부한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배우게 하셨다. 북한에서 돈 벌던 생각에 한국에서도 돈을 벌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그 길로는 인도하지 않으셨다. 42살에 신학대에 입학해서 아들뻘의 아이들과 공부하는 게 맞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께 다음 학기 등록금이 안 되면 공부하지 말라는 사인으로 알겠다고 했는데, 천일 장학회에서 장학금도 받고 익명의 장로님이 등록금을 내주셔서 하나님께서 다니라고 하시는 거구나 생각하고 4년을 꼼짝없이 다녔다. 박사과정도 대안학교의 사역도 빚 없이 하게 해주시고 지금도 대안학교 통해서 은혜와 물질의 축복을 주시고 계시다”고 했다.

최 전도사는 “한 마디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탈북자들이 북한이라는 험악한 토양 문화 속에서 살다 보니까 어디 나가서 사역을 유지하기도 힘들고 인간관계도 오래 유지하기 힘들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길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놀랍게 다듬으셨다는 것에 감사하다.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차근차근히 하면서 영적인 것, 지적인 것, 인격적인 것에 균형을 맞추게 하셨다”며 ”먼저(남한에) 내려온 탈북민들이 이런 것들에 균형을 맞춘 인격체로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북한의 문을 여시겠다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쓰임 받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고민하며 공부와 사역에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젊었을 때만큼 안 되는 것에 아쉬움은 있지만 하나님이 지금 이 시점에서 대안학교 사역과 탈북민 전도 사역, 상담 사역을 인도하시고 온전하게 주님 가운데 향할 수 있고 쓰임 받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고 했다.

아울러 ”북한을 위해서 저희보다 더 많이 기도하시는 여러분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다. 더 많은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면서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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