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옥한흠 목사
故 옥한흠 목사 ©사랑의교회 이미지 캡쳐

* 본지는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故 옥한흠 목사의 생전 주요 설교를 요약해 [다시 읽는 명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캄캄한 세상을 앞두고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고 하신다. 여기서 너희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이 우선이며, 그 제자들을 통해 복음을 듣고 오늘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펴고, 주님의 음성을 다시 듣는 우리가 되겠다.

그러나 열 두 제자들을 볼 때 세상 적으로 너무나 초라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다. 마치 이 세상에 내일이 이들에게 달려 있다고 하시는 말씀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당시 제자들에 비해 지금의 우리는 나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캄캄한 세상이라는 괴물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작은가. 무슨 소금, 빛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주님은 너희만이 소금과 빛이며, 너희마저 없다면 이 세상은 소망이 없고 절망뿐이라고 하신다. 어떤 면에서는 부담되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잘 봐주시는 것으로 감격과 긍지를 가지고 된다.

팔복을 통해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은 어떠해야 되는지 주님께서는 알려주셨다. 팔복의 요건을 우리가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오늘의 말씀이 실제로 관련이 없을지 모른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팔복성품을 다시 한 번 갖추어 주시길 바란다. 부족한 것이 많지만, 성령께서 이 시간 우리 마음을 감동하시고, 우리 마음을 은혜의 보좌 앞으로 인도하심으로 내 힘으로 갖출 수 없는 것을 주님의 은혜로 갖추어 질 줄로 믿는다.

소금은 짠 맛으로 방부제 역할을 한다. 옛날에는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은 정말 귀하고 중요했다. 소금의 방부제의 특성은 예수를 잘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감화와도 같다. 소금의 역할과 같이 우리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우리에게 비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때문에 다른 사람이 좋은 영향을 받는다. 어떤 면에서는 소극적이지만, 조용히 다른 사람에게 짠 맛을 내는 것은 중요하다. 가정과 직장에 이런 짠 맛을 내는 자가 있다면 사고 나지 않고, 영적으로 어두워지지 않는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그 가운데 있는 것을 환하게 드러낸다. 그 특성상 직선적이고 적극적이다. 어둠 가운데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을 보고, 우리 자신의 진면목과 구원받는 길을 알게 됐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예수님이 태양이라면 우리는 그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예수님의 다리이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에 있다. 우리가 빛인 것은 우리의 착한 행실과 진실된 모습과 의로움을 보고 세상은 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우리는 굉장히 중요하다.

어떤 영역에서 우리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먼저는 이 세상에서 도덕적인 우위를 지키는 일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선악을 앞에 놓고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자를 가리켜 도덕성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선악을 놓고 선을 선택하고 추구하는 자를 도덕성이 건전하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제대로 분별하지 못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자는 도덕성이 낮고, 실종된 자라고 말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세상 사람들의 비해 도덕적인 표준이 높고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소금과 빛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의 세계에 도덕적 기준을 하향조정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 가지 예로 ‘절대’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에 거부 반응이 있다. 심지어 절대 선이신 하나님을 필요시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필요 없을 시 내가 하나님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가 하나님을 밀어내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했다.

정직이라는 말을 할 때 어디까지가 정직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벌써 표준이 흐릿해져 있다. 흑과 백을 구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이 표준이다. 참과 거짓을 뒤 섞어서 살길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과 거짓을 혼동해선 안 된다.

The Barna Group을 설립한 조지 바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영향력을 가진 자가 되기 위해서는 도덕성에 있어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 비해 예수 믿는 사람들이 40% 이상의 격차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이 사회에 짠 맛과 강력한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면에서 한 참 달라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음을 놓고 주님께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새겨야 한다.

복음을 담대히 전해야 한다. 복음 자체가 부패를 막는 소금이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다. 우리가 가장 짠 맛을 내고, 강한 빛을 내는 것은 전도할 때이다. 뿐만 아니라 전도는 소금을 많이 만들어 내는 생산 작업이다. 한 사람이 전도되고 예수 믿는 사람이 늘어날 때, 소금과 빛이 많아지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복을 받은 것은 교회 부흥에 있다. 예수 믿는 사람만큼 회개하고, 양심을 바로 가지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럼으로 우리는 전도해야 한다. 전 국민을 전도하므로 주님 앞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보호에 앞장 서야 한다. 미래를 걱정하는 세계 석학들의 책을 읽어 보면, 21세기 인류의 가장 무서운 적은 ‘환경오염’이라고 했다. 20년 전에 남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가 됐다. 더 잘 먹고 살기 위해 자연을 파괴함으로 온도가 점차 올라가고 1년에 몇 백 종이 생태계에서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만큼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 벌과 나비가 사라짐으로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야생동물은 씨가 마르고, 하천은 썩어가고 있다. 세계 200개국 중 물 부족 국가로 한국이 꼽힌다.

미국 환경 분석가이자 월드 워치 연구소 (Worldwatch Institute)의 창립자인 레스터 R. 브라운은 “만일 우리가 지금처럼 환경을 파괴한다면 아마도 우리 후손들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후손들이 저주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파괴되어 가는 환경 앞에 심각한 고민과 함께 이것을 보전하기 위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고민해야한다.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며, 환경을 사랑해야 한다. 작은 것에서 사랑해야 한다. 욕심과 사치를 버려야 한다. 우리 자신이 검약하며, 노력해야한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 수필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는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하루의 세 끼를 먹는 대신 필요하면 한 끼만 먹어라. 백 가지 요리를 다섯 가지로 줄여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일도 이와 같이 줄여라”고 했다.

도덕적 우위를 유지하는데 빛과 소금이 되고, 복음을 전하는데 빛과 소금이 되고, 자연보호에 앞장 서는 빛과 소금이 되자고 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항상 노출되기 마련이다. 감출 수 없다. 그럼으로 이 노출 성을 최대한 이용할 필요가 있다.

빛과 소금으로서 환상을 가지라. 우리나라를 도덕 선진국으로 만들고, 전 국민을 복음화 시키며, 이 땅을 아름다운 금수강산으로 다시 만들어 후손에게 잘 사는 나라로 넘기자는 환상을 가지자. 이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놀라운 일들이 우리 앞에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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