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혁신학회(회장 이경직)는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소재 일원동교회(담임 권수경 목사)에서 제161차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학술심포지엄에서는 개혁신학 전통을 기반으로 신학과 사회, 역사, 교육을 연결하는 다양한 연구 주제가 발표되며 학문적 논의가 이어졌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권혁민 박사(북미주 KCBMC 사무총장)가 ‘이근삼 박사의 통합적 칼빈주의 이해’를, 김풍룡 박사(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가 ‘공화정적 파트너십의 회복: 레스 푸블리카의 결속을 위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기여’를 발표했다. 또한 주성규 박사(양산교회)는 ‘칼빈의 성자의 영원출생 교리(구속언약과 삼위하나님의 세 의지)’를, 홍성수 박사(고신대학교)는 ‘한국의 개화기 교육목적에 대한 기독교교육적 고찰’을 주제로 각각 연구 결과를 발제했다.
이날 학술심포지엄은 개혁신학의 역사적 흐름과 신학적 해석, 그리고 한국 사회와 교회에 미친 영향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는 자리로 진행됐다.
◆ 이근삼 박사의 통합적 칼빈주의 이해와 한국교회 신학적 유산
권혁민 박사는 발제를 통해 이근삼 박사(1923~2007)의 칼빈주의 이해가 구 프린스턴 신학과 신칼빈주의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이 그의 통합적 칼빈주의를 이해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이근삼의 칼빈주의 이해는 단순히 워필드 전통이 강조하는 변증적 신학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워필드의 변증적 신학 전통뿐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코넬리우스 반틸이 대표하는 화란 개혁주의 전통을 수용했으며, 동시에 아브라함 카이퍼 전통이 강조하는 포괄적인 삶의 체계와 문화 변혁 사상을 함께 포용했다”고 했다.
권 박사는 “이러한 점에서 이근삼의 신학이 변증학적 전통과 개혁주의 문화관을 통합적으로 수용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근삼 박사는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고려신학교에서 박윤선, 한부선, 한상동 등의 영향을 받으며 신학을 공부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고든 칼리지와 커버넌트 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코넬리우스 반틸 박사에게 수학했다. 이후 네덜란드 자유대학교에서 공부해 1962년 대한민국 한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63년 한국으로 귀국한 뒤 1994년까지 고신대학교에서 조직신학 및 교의학 교수로 재직했다”며 “그의 미국과 네덜란드에서의 학문적 경험은 한국교회 안에서 구 프린스턴 신학과 변증학, 그리고 네덜란드 개혁주의와 신칼빈주의에 기반한 기독교 세계관과 문화 변혁 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했다.
특히 “고려신학교를 기독교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학문 공동체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고신대학교 초대 총장을 맡아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기독교 학문을 발전시키는 비전을 제시했다”며 “이러한 비전은 이후 한국교회에서 전개된 기독교 세계관 운동과 기독교 학문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권혁민 박사는 이근삼을 한국교회사에서 칼빈주의 신학의 수호자이자 문화 신학자로 평가했다. 그는 “칼빈주의 신학을 깊이 이해하는 동시에 칼빈주의 문화관을 기독교 대학을 통해 실천하려 했다는 점에서 한국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사회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성경의 무오성과 문화 변혁을 함께 강조하는 균형 잡힌 신학적 관점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의 칼빈주의적 기독교 대학 비전은 고신대학교를 통해 구체적으로 구현됐으며, 한국교회를 위한 신학자와 교육자를 배출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권 박사는 “이러한 점에서 이근삼이 한국교회 역사 속에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을 가장 적극적으로 계승하려 했던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했다.
◆ 아우구스티누스의 공화정 신학과 시민적 동반자 관계
김풍룡 박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중심으로 공화정적 공동체와 시민적 결속의 신학적 의미를 분석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사회 구성원 간의 동반자 관계와 결속을 공화국 유지의 핵심 요소로 보았던 키케로의 공화정 이론에 영향을 받았으며, 이를 기독교적 틀 안에서 재구성했다”고 했다.
이어 “키케로의 정의 개념은 시민들에게 각자의 몫을 돌려주는 것으로 이해되며, 이는 시민적 동반자 관계와 사회적 화합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그러나 이러한 정의와 시민적 자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내면의 정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내면의 정의는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는 진정한 정의와 자유가 실현될 수 없다”며 “따라서 이러한 내면적 정의는 단순한 개인적 덕목에 머무르지 않고 경제적 연대와 공공의 책임을 실천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했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돌보는 행위는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로 이해됐다”고 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1서 강해」에서 사랑을 중력에 비유하며, 사랑이 사람들을 도움이 필요한 이웃과 공동체로 자연스럽게 이끈다”며 “이러한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나 내면적 태도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실제적인 힘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러한 신학적 이해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도록 이끌며, 올바르게 질서 잡힌 시민적 동반자 관계와 공동체 형성의 토대를 마련한다”고 했다.
◆ 칼빈의 성자의 영원출생 교리와 삼위일체 신학 논의
주성규 박사는 칼빈의 성자의 영원출생 교리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삼위일체 신학의 중요한 쟁점을 분석했다.
그는 “엘리스가 니케아 신조의 표현인 ‘하나님으로부터의 하나님’을 부정하면서 칼빈이 어거스틴의 성자의 자연적 출생 개념을 제거하고 위격적 출생만을 주장했다고 해석한 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고 했다.
주 박사는 “칼빈의 원문과 역사적 맥락을 분석한 결과 이러한 해석이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특히 칼빈은 젠틸리스의 종속론과 세르베투스의 양태론적 종속론을 모두 배격하면서 성자의 출생에 대해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인정했다”고 했다.
이어 “그 두 측면은 성부로부터의 본질적 전달과 위격적 출생이다. 주 박사는 칼빈이 이 두 측면을 모두 인정함으로써 삼위일체 신학의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벌코프가 제시한 세 의지 가능성과 어거스틴의 니케아 용법 차용이 칼빈의 입장과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며 “반면 엘리스는 칼빈을 바르트적 틀 안에서 해석하면서 일정한 해석상의 오류를 범했다”고 설명했다.
주 박사는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위격의 본질적 하나됨과 구별성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신학적 방법론이 중요하다”며 “이러한 방법론이 존재할 경우 세 위격의 외적 사역과 구별되는 의지 역시 인정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신적 본질 안에서 하나의 신적 의지로 귀결된다”고 했다.
아울러 “이러한 이해 속에서 성부는 기원자로서, 성자는 실행자로서, 성령은 적용자로서 역할을 나누며, 이는 세 위격 사이의 자발적 합의로 이루어진 구속언약 안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밝혔다.
◆ 개화기 교육과 기독교교육의 역할에 대한 역사적 고찰
홍성수 박사는 한국 개화기 교육의 목적과 기독교교육의 역할을 역사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개화기 교육을 통한 근대화의 이상이 ‘새사람, 새시대, 신교육’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며 “그러나 개화기 당시 한국의 현실은 이러한 이상을 안정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했다.
이어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사회적 관습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의 압력이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홍 박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화기는 자율과 타율이 동시에 작용하는 형태로 진행됐다”며 조선은 제국주의 시대 속에서 완전히 주체적인 근대화를 이루기 어려웠지만, 유학과 성리학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실학 사상을 발전시키며 개화 사상과 교육으로 이어지는 자율적 흐름도 나타났다”고 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도 교육을 통해 국가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며 “조선 후기 정부는 근대교육을 위한 법안을 마련하고 교육입국조서를 공포하면서 학교 설립과 국민 교육을 추진했다”고 했다.
그는 “교육입국조서에서 고종은 근대교육의 방향을 덕양, 체양, 지양의 삼육론으로 제시하며 교육을 통한 국가 발전을 강조했다”며 “이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낡은 제도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개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어 “이와 함께 선교사들과 교회는 기독교학교 설립과 운영을 통해 개화기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기독교 선교부의 본질적 사명은 복음 전도였지만, 기독교학교는 한국인들에게 신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새로운 시대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홍 박사는 “이러한 기독교학교 교육이 개화기 교육의 이상을 현실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했다.
또한 “1910년 한일합방 이후 한국 근대화의 이상은 크게 위축됐으며, 1930년대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로 인해 기독교학교 교육도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됐다”며 “많은 학교들이 폐교되거나 변질되는 과정을 겪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 후기에서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시기 동안 개화기 교육은 정부와 민간, 그리고 선교사와 신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며 “이러한 교육 활동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려는 공동의 노력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홍 박사는 “이들이 모두 새 시대와 새 사람,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통된 이상을 공유했으며, 구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인재 양성을 목표로 했다”고 했다.
또한 “개화기 교육은 정부에게는 교육입국의 정책이었고 백성들에게는 구국과 번영의 길로 받아들여졌으며, 선교사들에게는 복음 전도와 함께 조선 사회를 섬기는 방식으로 이해됐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학술심포지엄은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의 강평 순서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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