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의 신놀이가 시작된다 -

* 경험론, ‘타불라라사(Tabula rasa)’

김광연 교수
김광연 교수

근대 이후, 인간 이성의 발달과 함께 가장 획기적인 변화를 묻는다면 과학의 발달일 것이다. 과학 기술로 인해 인간은 형이상학적 가치보다는 가설과 실험을 통한 엄밀한 수치와 정보에 대해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이 시대에 가장 큰 시대 흐름 가운데 하나는 경험론의 등장이다. 경험론은 과거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실재(Reality)를 추구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신뢰하는 가치관을 가진다. 말 그대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만 사실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손으로 만질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경험론은 지극히 과학적인 사실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한다. 경험론의 발달로 인해 위기에 봉착하는 인문학들은 쇠퇴기에 접어들 처지에 놓여 있다. 경험론의 등장, 곧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으로 인해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인 방법들은 점점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경험론자 존 로크(J. Locke)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라는 말을 사용하여 인간의 인식에 대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로크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백지상태’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세상으로 나온다고 했다. 타불라 라사는 백지상태를 의미한다. 경험론자에 의하면, 인간은 서서히 인식(경험)을 통해 하나씩 세계관을 만들어가고 백지에서 그림을 하나씩 채워나간다. 그들에게서 인간은 초월적인 현상이나 신(神)의 경험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경험론자들은 초월적인 경험은 불가능하고 그래서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적 인식만이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선천적인 인식’, 다시 말해 인간의 감각적 경험과 무관한 초월자인 신(神)의 인식은 불가능하고, 선(善)과 악(惡)의 이해, 아름다움과 추함 등의 추상적이고 선천적인 인식은 인정하지 않는다. 과학 기술도 마찬가지로 경험할 수 없는 것과 가설과 실험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것 외에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적인 방법 이외에 초월적인 경험들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 선악(善惡)의 인식, 경험 가능한 것인가?

주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스크린에 올라간 개봉작을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몰린다. 미국 헐리우드 영화 뿐만 아니라 액션 히어로 등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들을 기다린다. 과거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사람들에게 가장 흥미 있는 영화는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왜 선과 악의 대결 구도 또는 결국 선이 악에게 이기는 영화가 재미있는 것일까? 알다시피, 영화의 줄거리는 악의 세력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선을 지키려는 영웅들이 악을 물리치는 해피엔딩(happy ending)으로 마무리된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흥미를 느끼고, 악을 물리치는 선에게 찬사를 보낸다. 왜 그런 주제들이 영화의 관객들을 모으는 것일까?

인류는 오래전부터 선과 악 또는 천사와 악마라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존재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천사는 하얀 가운을 입고, 악마는 검은 두루마리를 걸치고 머리에는 무서운 뿔이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우리는 선과 악의 대립에서 궁극적으로 선의 승리를 기대한다. 영화에서도 악은 물리치고 선을 권하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잘 보여줄 때, 관객들은 흥미진진하게 본다. 이처럼 우리는 선악에 대해 감각적 경험이 아닌 내재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본능적으로 관심을 가진 인간의 마음을 터치하고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영화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인류는 선과 악, 두 실재들에 대해 이미 경험 이전부터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우리는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선과 악에 대해 배우는 것일까?

성경에서는 선과 악의 구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담과 하와가 사탄에 유혹을 받고 교만하여 죄를 짓게 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후, 인류의 죄는 유전되어 우리가 선천적으로 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한다. 그럼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죄와 벌 그리고 선과 악의 개념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일까? 성서에서 말하는 죄의 유전처럼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선과 악의 개념을 알고 동시에 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인가? 경험론에 따르는 선악의 개념은 ‘선천적으로’ 경험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교육이나 후천적인 환경과 여러 경험된 사실들에 의해 선악의 개념을 배울 수 있다. 경험론의 입장에서 인간은 죄의 유전이나 선천적으로 선악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경험론에 의하면, 타불라라사 다시 말해 인류는 백지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죄도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나 삶에서 발생되는 후천적인 것으로 본다. 정말 인류는 경험을 통해서만 백지 상태에서 선악의 개념,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개념, 아름다움, 정의 등의 추상적인 이해들을 채워나가는 것인가?

신학과 전통 형이상학에서 인간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선과 악, 사랑, 정의 등의 추상적 실재를 알고 태어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미 태어나기 이전부터 추상적 실재를 인정하고 이런 실재는 이성에서 파악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대표적인 사상이 합리론(rationalism)이다. 경험론 즉 기억, 의지, 정서 등 모든 인식은 감각에서 비롯된다는 사상과 달리, 합리론은 진정한 인식은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 진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합리론은 경험 이외의 가치들, 즉 경험 이전부터 우리는 이성에 의해 사랑, 정의, 진리, 아름다움과 같은 가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가치는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나오는 ‘생득관념(生得觀念)’으로 본다. 합리론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나온다고 본다. 그러나 과학과 경험론의 세계관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영역이다. 초월자의 인식,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세계의 인식은 직관적 경험과 무관하다. 과학기술이 발달되면서 점점 직관적 경험과 엄밀성을 추구하는 학문이 우리의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다. 점점 신학의 위기가 오고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신의 인식, 초월적 존재, 사랑, 정의, 정서 등과 같은 경험할 수 없는 가치들이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과학의 시대, 점점 과학 기술은 신놀이(playing God)의 만찬을 즐길 준비를 하고 있다. (계속)

김광연 교수(숭실대학교)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새벽 예배 후, 교회에서 꼭 필요한 것은??

#김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