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협 1월 월례회
노량진 교회 림인식 목사가 1부 예배 설교를 전하고 있다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본문: 마태복음 5:40~48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면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5:48)"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산상수훈의 말씀은 경전(經典)이나, 도덕 교훈이 아니다. '경전'이나 '교훈'으로는 죽은 영이 살아나지 않는다, 죄에서 구원 얻지 못한다, 무능한 인간이 능력을 얻을 수 없다. 산상수훈을 '경전'이나 '교훈'으로 보는 이는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는 말씀이 '불가능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불가능하다.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의 말씀'이다. 예수님십자가사랑의 말씀!, 부활생명의 말씀이다, 오직 예수님께서만 주시는 축복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29)라고 하신대로 받는 이는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라."는 말씀의 내용이 곧 산상수훈의 말씀이다. 영으로 계신 하늘 아버지를 육신을 입은 사람이 볼 수 없기 때문에, 친히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직접 하나님을 보여주시며 본이 되어 주신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해주시고, 실천하셨다. 그러므로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처럼 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①'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준다, ②5리를 억지로 가자는 자에게 10리를 동행한다, ③꾸고자하는 자에게 거절 않고 거저 준다, ④원수도 사랑한다. ⑤핍박자를 위해 기도한다, 이것이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게 사는 것이다.

이 말씀은 즉

1. 십자가를 신앙생활화 하는 것

예수님주신 말씀대로 ①겉옷까지 준다, ②10리를 더 동행한다, ③꾸고자 하는 자에 거저 준다, ④원수도 사랑한다. ⑤핍박자를 위해 기도한다, 이렇게 실천하면 그것이 매사에 십자가 지는 생활이다. 예수님은 사상도 십자가 사랑이고, 실행도 십자가 사랑이시다. 십자가로 속죄 구원 얻은 그리스도人들이, 이 십자가를 믿는 동시에 각각 십자가를 생활로 실행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십자가 지는 것이 말로는 쉬운데, 실제는 이렇게 힘들다! 그런데 참된 생명과 구원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온다.

제 1세기 초대교회와 그리스도人들이 성령 충만으로 예수님께서 명하신 그대로 '가산 전토를 팔아 하나님께 바쳐, 가난한 사람들을 십자가 사랑으로 '구제(救濟)' '구빈(救貧)'으로 도와주었다, 그것이 날마다 구원 얻는 무리가 많은 '구령(救靈)'으로 나타났다. 새해를 맞은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人들은 초대 교회 신자들처럼 성령 충만한 가운데 십자가사랑을 실천하는 '구제' '구빈'으로 '구령'생활을 하자! 이것이 '하늘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게 사는 것이다.'

2. 타애(他愛) 교육적 진리이다.

예수님 말씀대로 겉옷까지 주고, 10리를 더 가주고,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자를 위해 기도하면!? 그 이상 없는 적극적인 타애 교육이다. 이기적인 지옥을 천국으로 돌이키려면 타애적인 모험이 있어야 한다, 적극적인 실천으로만 이루어진다. 이것이 개인이나 사회를 살리는 산교육이다. 로마는 이 타애교육을 실천하는 그리스도人들에 의해 개조되었다. 이기적 인간이나 사회는 예수님 말씀하신 이 교육으로만 새로워진다. 참 타애 교육이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삶'이 된다.

3. 유기적으로 필요한 말씀이다.

우리 몸은 유기체이다, 그러므로 몸의 한 부분이 상하였을 때는 그것을 회복하려면 두 배의 노력이 요한다. 사회도 따로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유기체이다. 죄악으로 타락한 소돔,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다 멸망하였다. '회개하라'는 요나의 외치는 소리에 상하군민이 모두 회개한 니느웨城은 다 구원받았다. 인간 사회는 모두 공동체인 동시에 마치 한 배를 탄 것처럼 공동운명을 가지고 있다. 죄로 상처가 심한 것을 고치려면 내 몫인 5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남의 몫까지 즉 10리를 노력해야한다.

사람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비록 아버지의 일이라고 해도 기쁘지 않고, 하기도 싫다, 그런데 그 5리를 더하는 10리가 결코 남의 몫이 아닌 내 일이라고 느껴질 때, 괴롭지도, 분하지도 않다. 마땅하게 여기고 한다.

그리스도人들이 남의 몫까지 힘쓰는 것은 멸망에서 함께 구원 얻는,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다. 멸망 받는 소돔 고모라가 되지 않고, 함께 구원 얻는 니느웨城이 되게 하는 일이라면 '겉옷까지도 주고,' '10리를 더 가며,' '꾸려는 자에게 거저 주고,'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자를 위해 기도한다.' 중국 성경학자 워치만 니가 젊은 시절에 농사를 지었다. 밤늦게까지 논에 물을 가득 대놓고 다음에 나가보면 논에 물이 다 빠지고 없어졌다. 아래 논 주인이 논두렁을 잘라 자기 논에 물을 다 뽑아 가버렸다. 여러 번 이런 일이 계속 되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아래 논 주인에게 "내 물을 왜 당신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말도 없이 다 가져갈 수가 있느냐?" 따졌다, 그 사람이 "잘못했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런데 워치만 니가 집에 돌아왔는데 마음이 평안하지 않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워치만 니, 그대는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닌가? 신자는 자기 일만 생각하고 남이라고 구별하여 생각하면 마음의 평안이 오지 않는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때(마22;39) 마음에 평안이 온다, 그의 일을 내 일로 생각하여 아래 논이 물이 없어 불편하구나? 생각하고 물을 먼저 대주는 것이 신자의 마땅한 생활이 아니냐?!"하는 음성을 들었다. 워치만 니는 "하나님 알았습니다."라고 대답을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나가서 펌프로 먼저 아래 논에 물을 채워놓고 자기 논에 물을 댔다.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러자 아래 논 주인이 마음이 변화되면서 서로 관계가 좋아졌다, 그도 결국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우리 그리스도人들이 목숨까지 던지면서 남을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곧 함께 사는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즉 산상수훈인데 예수님의 삶이고,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지는 생활이다.

4. 의식적 도덕이다.

예수님 말씀대로 '10리를 더 가주고,' '겉옷까지, 주는 데'서 '분발력'과 '아량'과 '상호애(相互愛)'가 생긴다. '꾸려는 자에게 거저주면, '형제'라는 느낌이 온다.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자를 위해 기도하면, '이타 정신'을 체험한다.

남을 향한 '분발력'이나, '아량'이나, '상호 애'나, '형제의식'이나, '이타정신'은 "의식적 도덕"이다, 이런 순수 도덕이 있을 때 훈훈한 인간관계와 믿을만한 사회가 이루어진다. "의식적 도덕"이 있는 사람은 일을 속임수로 하지 않는다, 그럴 때 행복한 사회가 이루어진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바로 도덕과 종교의 타락 때문이었다. 예수님 말씀대로 실행했을 때 얻어지는 의식적 도덕이, 진정한 日當 품삯인 보수(報酬)다. 이런 보수가 많은 나라가 행복 지수 1등 국가가 된다. 예수님 말씀대로,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삶'을사는 것이 "의식적 도덕"이 되고, 인간 사회를 아름다운 사회로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5. 경제적 원리로 투자이다.

억지로 5리를 가자는 것을 10리를 동행하는 것은 없어지고 손해 보는 것이 아니고, 경제상으로 말하면, 하나의 투자이다. 미국의 헨리 포드가 처음 운수 사업을 시작했을 때 몇몇 사람들이 포드 회사에 500$씩을 투자하였는데 그 회사가 세계적인 시장을 점유하게 되자 그 사람들은 모두백만장자가 되었다.(당시500$=자동차1대 값) 투자는 경제적 성공의 기초다. 그러나 반드시 꼭 성공할 수 있는 일에 투자해야한다.

예수께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고 하셨다. 완전히 자기를 희생하는 투자는 그 결과가 엄청나게 된다는 약속이다.

바울 사도는(빌3;8)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害로여기고, 배설물처럼 버린다.'고하였다. 장차 받을 영광을 바라보며 생명까지 송두리째 투자했다. 예수님 주신 산상수훈의 말씀을 행하는 것은 모두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산적 투자이다, 이렇게 투자했을 때, 인류가 영원히 놀랄 정도의 현세와 내세의 보상이 된다. 2세기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種子)이다'고하였다. 비단 순교자의 피만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人의 눈물, 땀, 시간, 재능, 말(言), 행위 모두가 종자이다. 많이 뿌릴수록 많이 거둔다.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삶"을 살자!

결론

새해인 금년 2019년은 기미년 독립 만세운동 100주년의 해이고, 남북통일의 관심과 실천의 음직임이 활발해진 때이다. 2019년 '한국교회 처음 사랑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하는 그 구체적 내용은 우리 그리스도인과 한국 교회가 예수님 말씀 그대로 산상수훈을 실행하여 ⒈십자가의 신앙생활 화로 구령을 이루어 가고, ⒉타애 교육이 되어 참 그리스도人을 키우며, ⒊유기체로써의 전체가 살아나게 하며, ⒋의식 도덕이 있는 인간관계로 세상을 바뀌게 하며, ⒌영적투자가 되어 인류구원의 현세와 내세의 엄청난 결실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실천이 확실하면 우리가 염려하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확신한다!!

/자료=한국복음주의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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