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회자가 강단에서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선택 받을 인간과 유기 당할 인간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요지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대번 이런 물음이 제기될 것이다. 하나님은 유기 당할 인간들을 애초에 왜 지으셨냐고. 또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는 분이냐며 더 나아가 죄의 원작자가 아니냐고 말이다.

▲대신총회신학연구원 박상봉 박사.

얼마 전 한국칼빈학회에서 제 3차 정례 학술발표회가 있었다. 칼빈의 신학이론 중 당시에도 지금도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는 (선택과 유기가 정해져 있다는)‘이중 예정’을 주제로 박상봉 박사(대신총회신학연구원)가 주제 발표를 했다. 당시 박 박사는 칼빈 그리고 히에로니무스 볼섹(Hieronymus J. Bolsec)과 요한 불링거(Johann Heinrich Bullinger)의 예정론 논쟁을 비교 분석하면서 칼빈의 예정론의 이해를 한층 심화하려 했다.

박 박사는 먼저 칼빈과 예정론 논쟁을 벌인 볼섹에 대해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타락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드러내기 위해 신적인 예지만을 역설하고 있다"며 "그의 사고는 로마 가톨릭 구원론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펠라기안적 입장에 서 있다"고 말했으며 불링거에는 "칼빈이 스스로 ‘비참한 작정’으로 표명한, 하나님의 비밀한 작정에 근거한 유기의 개념을 불링거는 수용하지 않았다"며 "유기가 하나님의 작정에 속할 경우 하나님을 죄의 원작자로 만들 수 있다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링거는 오직 선택만을 하나님의 작정에 근원을 두었으며, 유기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인간이 자유의지적으로 행한 타락의 결과로 봤다"고 평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볼섹이나 불링거 모두 자칫 교조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칼빈의 예정론에 문제를 제기함에 있어 인간의 자유의지 유,무 그리고 그 정도를 가지고 논박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타락 이후 인간에게 조금의 자유의지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칼빈의 예정론에 각각 반기를 들고 나섰던 것이다. 이런 류의 문제 제기의 선 상에 선 하나님은 편협한(?) 독재자의 모습을 띌 뿐이었다.

칼빈의 예정론이 이렇듯 인간의 자유의지의 연장선 상에서만 논의되어야 하는 것일까? 26일 서대문에 있는 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한국기독교장로회 신학연구소(이하 기장신학연구소) 이재천 소장은 칼빈의 예정론을 이해함에 있어 영역의 혼재를 피할 것을 주문했다. 이 소장은 "내가 해결하고 핸들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하고, 궁극적으로 내가 해결하고 핸들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가 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영역이다. 칼빈은 이 부분을 혼재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장신학연구소 이재천 소장.

그는 이어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 그게 행위다 아니다 믿음이다 이런 것들은 사실 다 상대화 되고만다"며 "궁극적으로 내가 어쩔 수 없는 질적 영역에 관한 부분은 그저 하나님의 주권의 문제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 칼빈은 양보를 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인간의 의지의 영역과는 질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에서 칼빈의 예정론을 이해할 때 그 개념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아울러 칼빈이 예정론을 주창한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속박하려 함이 아니었다는 주장도 했다. 이 소장은 특히 칼빈이 강조한 양심론에 주목했다. 그는 "전혀 뜻 밖에도 칼빈 같이 양심론을 강조한 사람이 없다"면서 "루터는 자유의지 얘기를 많이 했지만 칼빈은 양심론을 강조했다. 우리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상당히 열려있다는 말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를 구속하려는 차원에서 (예정론이라는)그의 논지를 전개한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동 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익명을 요구한 L박사도 거들었다. 칼빈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자유의지를 꺼리낌 없이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L박사는 "형식논리상으로는 모순이다. 칼빈 같은 경우는 두 가지를 그냥 다 말하자는 것이다. 그게 성서적으로 옳다는 것이다. 그것을 논리적으로 해소시켜서 한차원으로 통일된 체계를 만들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모두 말했다"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두 가지를 섣불리 조화를 시키려다 보면 굉장히 천박해지기 쉬워졌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L박사는 이어 "(선택과 유기는)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의 문제이고, 신자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주시고 구원해주셨다는 믿음 아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칼빈은 목회적으로 이 사람은 구원받을 사람이고 저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할 사람 등의 편 가르기를 하려하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칼빈에 정통한 최영 박사(기장신학연구소 연구실장) 역시 칼빈이 예정론을 목회적으로 적용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최 박사는 "칼빈은 그의 신앙교육서에서 예정에 관해 확실히 얘기하고 있다"며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다 하나님께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확신을 목회적으로 이야기 한다. 칼빈은 수많은 설교를 했는데 설교단에서 누가 예정되었고 누가 거부되었다는 식의 예정에 대한 얘기를 안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기독교강요를 통해 칼빈이 예정론을 설파한 것에는 "칼빈이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사실 그리고 현장의 문제를 풀어서 설명을 하려 했던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최 박사는 이어 "구원의 문제에 관한한 하나님의 전적 주권을 강조하려는 것이 칼빈의 의도였다"며 "구원의 문제는 나와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이 만세 전에 정하신 것이고 변할 수 없다는 것. 가톨릭 교회가 나를 들어 생명의 책에서 지워버리고 나를 축출하고 나를 정죄한다고 해도 나의 구원 여부는 교의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 태초에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려 함이었다"고 덧붙였다.

‘선택과 유기’란 칼빈의 예정론과 같은 맥락에 있는 구원의 보편성 문제에 대한 논의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L박사가 "(선택과 유기가)보편 구원이냐 일부만 구원하는 것이냐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자 최영 박사는 신학자 칼바르트의 화해론을 언급했다. 최 박사는 "누구를 예정하고 누구를 버리냐는 문제나 하나님의 구원의 범위가 보편적이냐 제한적일 것이냐는 똑같은 맥락"이라며 "바르트의 경우 그가 보편 구원론을 주장하지는 않았는데 다만 텍스트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있어서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화해론에서 비유를 통해 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박사에 따르면, 바르트는 그의 화해론에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은혜의 핵주먹, 은혜의 쓰나미로 비유했다. 최 박사는 "은혜의 쓰나미가 떠밀려 올 때 하나님께 끝까지 반항하고 저항하고 배교하며 적 그리스도 같은 일들을 했던 사람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열려있는 문제다. 죽을지 살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라며 바르트 역시 구원의 문제에 관한한 하나님의 전적 주권을 강조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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