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믿을것인가

"어제 뉴스에 나왔던 그 막말 목사, 혹시 너네 교회 목사님?"이란 친구의 물음에 얼굴이 화끈,

지친 마음을 달래고자 찾은 교회에선 시작부터 헌금 이야기, (맥이 탁)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보고 실컷 욕했는데 알고 보니 '기독교인', (뒷목이 빡!)

그러나 정작 가장 웃픈(웃기며 슬픈)현실은

종교가 뭐예요?'라는 지인의 물음에 '교회 다녀요'라고 답하고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근데 날라리 기독교인이에요'라는 말을 덧붙이는 나. (뒤통수 긁적)

이러한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김형석 교수의 책 『어떻게 믿을 것인가』를 권한다.

이 책은 김형석 교수의 '올바른 신앙의 길'이란 무엇이냐는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이다. 우리 시대 지성이라 불렸고 그랬기에 평생 동안 묻고 찾을 수밖에 없었던 문답은 묵직하다. 책의 곳곳에는 그의 고민과 고뇌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어 책장 하나하나를 넘길 때마다 시간의 무게와 진정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김형석 교수는 이 책의 시작을 유럽 교회 방문 중에 품었던 걱정의 시선으로 열고 있다. 웅장하고 멋스러운 외관에 내부는 교인들로 가득 찼던 유럽 교회가 이제는 교인을 기다리는 예배당으로 변해버렸다. 그가 방문했던 250년 된 교회 역시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들을 씁쓸한 우리 교회 현실에 연결 짓는다. 외형적으로 비대해져만 가는 교회, 예수가 말했던 사랑과 인간 평등을 전하면서 정작 부목사와의 관계는 일반인들보다도 못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목사들, 교회 정치에 눈이 먼 장로들, 앞자리에 앉아야 복을 많이 받는다며 예배당으로 뛰어 들어가는 샤머니즘에 가까운 신앙을 가진 신도들....... 그는 기독교의 위기가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아버린 우리 교회의 현실과 일그러진 신앙에 있다고 지적하며 이런 문제가 지속된다면 문을 닫고 있는 유럽 교회의 모습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더불어 이러한 문제들이 결국 우리가 모두 겪고 있는 인간적인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 받을 수 있다는 신앙의 근본에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예수와 기독교 정신에 보다 본질적으로 다가설 것을 주문한다.

그렇다면 그가 이야기하는 기독교 정신과 신앙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책 속의 이야기 몇 구절을 소개한다.

"파스칼은 '인간의 위대함은 스스로 비참함을 아는 데 있다'고 말했다. 믿음의 선조라고 불리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도 처음부터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였을까? 아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부족한 면들을 가진 인간 중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회개와 축복의 과정을 통해 믿음의 선조로 남게 되었다. 종교는 인간을 가장 비참한 위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환희에 찬 위상까지 알려주고 체험하게 만든다. 죄인에서 성자가 되는 과정이 곧 신앙이란 의미다. 따져보면 우리도 그 세 사람 중 하나다. 그런 우리가 언젠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과거를 뉘우치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과 삶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믿음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물론 뉘우침이 큰 사람은 축복도 커지며 새 출발이 특출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수도 있다." P.131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최고의 휴머니스트 중의 한 사람은 '공자'다. 그 공자가 갖고 있었던 인간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이가 그리스도였다. 공자만큼 수고롭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고뇌 속에 산 사람은 없었다. 그 공자에게 '수고롭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다 나에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해주리라'고 말한 이는 예수였다. 예수의 정신은 공자와 같은 사람을 이단이라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품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는 것이었다. 기독교의 정신은 바로 여기에 있다." P.147

이 책은 앞서 소개한 믿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뿐만 아니라 '십일조는 신앙생활의 필수조건인가?' '불신자와 결혼해도 되나?' '성직자들의 정치활동은 옳은 것인가?' '제사는 드리면 안 되는가?'와 같이 현실에서 답이 필요했던 문제들(그러나 정작 물을 곳도 없고, 막상 교회에 가서 물으려 해도 '눈치가 보여' 차마 던질 수 없는 질문들)까지 하나하나 다루며 우리를 올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네가 옳았어'라고 다독임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본질을 잃고 형식에만 얽매여 헤맸던 신앙을 돌아보게 되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제가 찾던 예수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한층 더 깊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독자의 평은 이 책이 지닌 의미를 더한다.

새롭게 교회를 다니게 된 신자, 스스로를 '선데이 크리스천'이라 부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묵직한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 터무니없는 목사의 설교와 세상보다도 못한 교회의 모습을 보고 들으며 '나는 지금 어디?'를 되뇌며 흔들리고 있는 이들, 신앙생활을 오래 했으나 자신의 신앙을 한 뼘 더 키우고 싶은 이들 등, 믿음과 신앙의 본질을 찾으며 고민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 『어떻게 믿을 것인가』를 권한다.

저자소개

김형석(金亨錫)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났다. 일본 조치(上智)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시카고·하버드 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로 철학 연구에 대한 깊은 열정으로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으며, 끊임없는 학문 연구와 집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60~70년대에는 사색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외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으며, 특히 사복음서를 기반으로 예수의 행적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예수』는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로 9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방송과 강연, 집필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책 속에서

한국 기독교에는 기독교 초창기의 본질적인 요소와 더불어 상당히 많은 서구적인 상황이 기독교의 실체적인 것으로 둔갑해 있다. 그것을 우리 것으로 바꾸기 위해 한때는 교회 음악에 판소리를 접목시켜 보기도 했고, 예배 양식에도 몇 가지 변화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인으로 태어나 살면서 우리가 모두 겪고 있는 인간적인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 지을 수 있다는 신앙의 근본문제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기독교 정신을 효도 사상으로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알맞은 효의 정신은 어떤 것인가를 찾아야 한다. 막연히 선비정신은 귀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선비정신이 기독교와 접목되어 민족정신과 정서에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를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신부의 옷을 입지 않은 평신도의 신앙과 정신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계승될 수 있어야 하며, 목회자의 설교보다도 교수나 법관의 신앙 정신이 새 세대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신부나 목사가 그 일을 해줄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그러나 우리는 다산 정약용과 같은 분을 통해 그런 삶의 양식과 내용을 배우기도 해야 한다. P.20

이러한 평가가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한국의 교회들은 지나치게 교회주의에 빠져 있으며, 각각의 교회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권위는 있어도 권위주의에 빠지면 안 되듯이,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있어야 하나 그것이 교회주의에 빠지면 본래의 길에서 어긋나기 쉽다. 가톨릭이 교회 지상주의에 빠졌을 때 잘못을 범했던 것과 견주어보면 알 것이다.

교회주의란 다른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을 교회에만 국한하는 일이다. 신앙생활은 가정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며 직장에서도 전개되어야 한다. 크리스천들이 사는 공동체 속에는 언제나 신앙이 꽃피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한때 프랑스 신부들은 일요일만 되면 성당을 떠나 공장과 부두, 빈민촌을 찾아갔다. 교회에 오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복음을 나누어주는 일은 당연한 책임이다. 그래서 교회는 핍박을 받는 일이 있어도 신앙은 짓밟히지 말아야 한다. P.28

내가 이야기한 사람들 외에도 교회에 왔다가 기독교를 떠난 사람들은 수없이 많이 있다. 많은 지성인은 교회에 팽창해 있는 기복신앙의 미신적 요소들을 보았기 때문에 떠났다. 또 어떤 이들은 교회 지도층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에서 환멸을 느꼈다고 했다. 적지 않은 대학생들은 기독교를 가지고서는 한국과 민족의 장래를 희망적으로 건설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형식적인 행사와 타성에 빠진 교회생활에 환멸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가지 잘못이 있었다. 그들은 기독교회와 교리나 목회자를 믿고 따르려 했을 뿐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지는 못했다. 기독교회나 기독교 전통이라는 집 부근만 돌아다녔을 뿐 집안에 들어가 예수를 만나보지 못했다. 만일 그들이 전 인격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했더라면 교회를 떠나고 기독교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그리스도를 떠나거나 배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P.59

개신교에서도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죄다 아니다는 식의 구속을 주기보다는 그런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어떻게 하는 것이 조상들의 선한 유지를 받아들이는 길인가를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신앙이 생긴 후에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방법이 옳을 것이다. 신앙적으로 무엇은 죄가 되고 무엇은 죄가 안 된다는 것은 신앙인이 된 후에 스스로 선택하고 해결 지을 문제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지만 선조들의 선한 뜻을 저버리는 사람보다는 제사를 드려서라도 선조의 고마운 봉사를 이어받는 후손들이 옳다고 믿고 있다. 그 생각이 교회와 다르다고 해서 죄악의 책임을 묻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P.123

내가 예수의 고향을 찾아보았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예수는 '인간 중의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예수는 이렇게 살았고 이런 말씀을 남겨주었는데, 그 삶이 거룩함을 성취시켜 주었고 그 말씀은 인류의 진리가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성당이 있는 공간이나 사찰이 있는 고장보다도 양심이 있고 인간의 존엄성이 깃든 곳이기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거룩한 삶'이지 그것이 깃드는 공간이 아니다. 성당이나 예배당은 그릇을 보관하기 위한 보자기에 해당하고, 교회는 그릇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좋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그 그릇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거룩함이 있는 삶 자체, 즉 인격과 신앙이 아니겠는가. P.157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어떻게믿을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