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요 11:38-46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사람이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나이다.
도량이 좁고 여유가 없어 내뱉은 성마른 한마디 말이 마음의 평안을 깨트리고 말씀 앞에 맹인이 되게 합니다.
르우벤은 물의 끓을 같은 혈기와 정욕을 다스리지 못해 장자의 명분을 잃었습니다.
육신에 속한 혈기와 정욕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아들의 권세를 무력하게 합니다.
속히 엎드려 나의 죄과를 자백하오니 불쌍히 여기사 사하여 주소서.
심는 자나 물주는 자는 아무 것도 아니나 무엇이나 된 듯 한 망상에서 깨어나게 하소서.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아들의 죽음과 무덤은 영생을 사는 문이오니, 나를 그리고 인도하소서.
내 영혼이 잠잠히 주의 구원을 바라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다.
그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조문객들에게 사망의 슬픔이 임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가셨다. 그의 누이들은 오라비가 죽은 후 도착한 예수를 탓하였다.
'선생님이 여기 계셨다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겠습니다'
조문객들 역시 이에 동조하였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자가 어찌 사랑하는 자를 고치지 않았는가?'

그런데 나사로의 병듦과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4절).
그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으신다.
아버지의 일하심을 따라 일하는 아들은 마르다에게 신적 자기계시를 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이에 대해 마르다는 '마지막 날 다시 산다'는 바리새적 교리로 대답한다.
그리고 예수에 대한 정형화된, 하지만 참된 신앙고백을 한다.
그가 그리스도요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누이들과 조문객들이 슬퍼하자 그 영이 격동하며 안타까워하신다.
이는 그들이 죽음을 이기신 부활이요 생명이신 아들을 목전에 두고도 죽음의 세력에 종노릇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즉시 구원의 행동을 개시하신다.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예수께서 다시 영이 격동하시며 무덤으로 가셨다(38절).
무덤은 동굴이었고 그 문은 돌로 막혀 있었다(38절).
예수께서 '돌을 옮겨놓으라'고 말씀하시자, 마르다가 말하였다.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39절).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40절).
그러자 사람들이 그 돌을 옮겨놓았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아버지께서 항상 내 말을 들어주시는 줄 내가 아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을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한 것이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는 것이옵니다"(42-43절).

이렇게 말씀하신 후 큰 소리로 외치셨다. "나사로야 이리로 나오라"(43절).
죽은 자가 천으로 손발이 감긴 채 나왔으며 얼굴은 수건으로 싸매어져 있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44절).

마리아를 위로하러 왔다가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었다(45절).
그러나 그 중의 몇 사람은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고하였다(46절).

요한복음에서 표적은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예시하며 하나님이 보내신 자 아들의 영광을 드러낸다.
그 마지막 표적은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이다.
표적의 목적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의 이름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20:30-31).
그러므로 표적의 본질은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실제에 있다.

나사로는 무덤에 있으나 살아났다.
이것이 최후의 표적인 것은 인자가 삼일 밤낮 무덤에 있을 것이라는 공관복음서의 진술과 일치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 12:39-40).

예수께서 죽음의 세력으로 인해 그 영이 다시 격동하며 비통히 여기신다.
그리고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서 그 문에 있는 돌을 옮겨놓으라고 명하신다.
당시 유대 사회의 무덤은 자연동굴을 사용하였는데, 그 문을 돌로 막아놓았다.

그러자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주저하며 말한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이는 부패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사흘이 지난 죽음의 상태는 생명의 절대적인 이탈을 의미한다.
'사흘이 지나면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고, 시신은 부패하기 시작하며, 그 때까지 시신의 주변을 맴돌던 영혼이 육체로부터 이탈한다.(G. Dalman, Jesus-Jeshua, 220).

마르다의 말은 나사로가 완전히 죽었음을 고지한다.
물론 그의 부활을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다.
예수께서 그녀에게 상기시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나사로의 병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4절).
마르다와의 대화에서는 '영광'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 인용문은 26절에 관련되며, 곧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기도의 자세를 취하신다.
그리고 이제까지 아버지가 자신의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드린다.
이어서 항상 그의 말을 들으시는 줄을 안다고 확신한다.

여기서 아들은 구체적으로 기도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나사로를 살려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아들이 아버지와 연합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연합된 아들에게는 세세하고 구체적인 기도문이 없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녀 역시 그러하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하나님은 그의 필요를 채우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가 기도하는 목적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다.
곧 그들이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신 것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기도로 인해 어떤 특별한 기적을 시위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버지가 자기를 보내신 것을 저들이 믿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기적수행자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그대로 복종하는 자이다.
이로써 아들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보내신 이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을 알리신다.
그 일의 본질은 아들을 믿는 자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5:24; 6:29).

예수께서 무덤에 있는 나사로에게 명하신다. '나사로야 나오라"
이에 나사로가 살아났다. 무덤에 누운 자가 살아났다.
죽은 자들이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 바로 이때다. 듣는 자는 살아난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5:25).

그의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또한 나사로에게 하신 말씀은 마지막 날 무덤에 누운 자가 일어나는 말씀을 예증한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8-29).

영생은 무덤에서 일어나며 현재에서 이미 시작된다.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에 장사됨으로써 일으킴 받는 영생이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아들의 무덤에 연합되어 아들 안에서 일으킴을 받은 자, 그는 위의 것을 찾는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

또한 영생은 마지막 날 육체의 부활을 통해 완성된다.
그 시신이 수의를 입고 싸매여 졌으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 무덤에서 일어난다.
그 때는 아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재림하실 때이며 그가 어떤 상태로 죽었을 지라도 다시 살아난다.
다시 살아난 몸은 하늘에 속한 영광스런 형체이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2-53).

그런데 죽은 자를 살리신 표적을 보고 사람들은 다시 둘로 나뉘어진다.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었으나 어떤 이들은 예수의 대적자 바리새인들에게 고지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들은 표적 앞에서 신앙과 불신앙의 길로 갈린다.

무덤은 인생의 종결이며 이생의 모든 것이 몰수되는 절망이다.
그리고 세상의 그 누구라도 그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무덤에서 다시 사는 것을 꿈꾼다.
그래서 애굽의 바로왕은 피라미드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유사이래 그 누구도 무덤에서 살아난 자는 없다.
오직 한 사람,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 무덤에서 살아났다.
우리의 무덤이 그리스도의 무덤이 될 때 영원을 살며 영생한다.

4. 나의 묵상
나의 인생, 죄가운데 살다가 죽어 무덤에 들어가는 자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나의 실존 자체가 무덤 같은 인생이었다.
생명의 부재 속에 살면서 사망에 악취를 내며 사는 자였다(고후 2:16).

그러다가 마침내 무덤에 누운 자가 되었다.
시편 88편, 무덤의 노래는 나의 노래가 되었다.
사방으로 갇혀 나갈 수 없는 자, 죽어 냄새나는 자였다.
그런데 그런 악취나는 곳에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거하셨다.
나의 무덤이 아들의 무덤과 연합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영생의 삶이 시작되었다.

아간이 하나님의 것을 훔쳐 무덤의 심판을 받았다.
아골 골짜기가 그의 무덤이었다(수 7:26).
나의 무덤 역시 나의 죄과로 인해 받은 아골 골짜기이었다.
그런데 그런 무덤에 구원자 그리스도가 들어오신 것이다.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삼으시고 영생을 주신 것이다.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호 2:15-16).

뿐마 아니라 내게 영생의 포도원을 허락하셨다.
영생의 공동체 안에서 하늘나라의 기쁨을 누린다.
어제 교제모임은 참으로 위로와 기쁨의 시간이었다.
나를 포함하여 다섯 사람에 불과하나 하늘 잔치였다.
힘겨운 살림살이를 하며 아들만 셋을 기르는 젊은 엄마의 묵상...
아이들의 잠든 새벽 1시에 일어나 4시까지 나눈 주님과의 사귐, 약함 속에 거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인해 하늘의 기쁨이 충만하였다.
아, 영생의 복된 공동체는 참으로 실재한다.

그렇다! 내게 무덤은 표적이다.
그곳에서 아들의 생명을 얻고 하나님과 사귐이 시작되는 성전이 지어졌다(골 2:12; 요 2:19).
그리고 언젠가 내 육체는 기진하고 죽을 것이다.
수의를 입고 꽁꽁 싸매어져 장사되거나 화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날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그 날에 이미 썩은 내 몸은 썩지 아니할 영광스런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그 소망이 분명하기에 병든 것도 죽는 것도 자유하다.

오늘도 실존의 무덤에서 한 날을 시작한다.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자의 일상, 그것은 무덤이다.
또한 죽을 몸을 지배하는 죄의 세력으로 인해 무덤을 산다.
새벽, 좀 더 자자 하면서 내뱉은 성마른 한마디가 평안을 빼앗아간다.
말씀 앞에 나와도 맹인이다. 무덤을 피할 수 없는 자이다.

아, 내가 사는 것은 아들의 음성뿐이다. '나사로야 나오라'
어둠뿐인 내 무덤, 어두움을 이기신 주님이 나를 이끌어내신다.
나의 죽음과 무덤은 부활의 주님에 참여하는 복음이다.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5. 묵상 기도
아버지...
무덤의 실존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내 무덤에 아들의 부재했나이다.
살면 살수록 탐심과 정욕이 들끓고 사망의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마침내 무덤에 누운 자 되어 소망이 끊겼습니다.
나의 죄과로 인한 무덤, 아골 골짜기였습니다.

아버지여...
그런데 그 칙칙하고 어두운 무덤에 빛이 임했습니다.
말씀이신 아들이 거기에 함께 계셨나이다.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삼으시고 영생의 포도원을 주셨나이다.
영생의 지체를 주시고 영생의 공동체를 세우셨나이다.
그들과의 사귐으로 하늘의 기쁨이 가득합니다.

아버지...
오늘도 아들의 죽음과 무덤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는 거기에서만 영생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실존의 무덤을 향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아들아 나오라'
주님이 나의 어둠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를 끌어내셨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다스리십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시고 영혼들을 구원하시나이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http://cafe.daum.net/wmmission)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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