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곤 목사(크릭사이드 한인교회)

화원에서 꽃을 피운 난(蘭)을 사서 집안에 가지고 오면 꽃의 색깔이 너무나 선명하여 난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싱그럽게 한다. 그런데 난의 꽃은 사계절 내내 자신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 집안에 온도와 햇살을 적당하게 조절해 주어도 난을 키우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꽃이 조금은 오랜동안 자신의 모습을 지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꽃의 자취는 어느 순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한번 난의 꽃이 지고 나면 그 다음해에 다시 그 난에서 꽃을 보는 것은 극히 드물다. 난에 대해서 지식이 부족하지만 난의 멋은 꽃이라고 본다. 그러기에 한 두해 그 난에서 꽃이 피어나지 아니하면 그 난을 보는 사람의 마음도 난에게서 관심히 멀어지게 된다. 집 안에서 수년 동안 꽃을 피우지 못한 난을 어느날 집사람과 상의하여 그것을 현관문 밖에 정원에 옮겨 심기로 했다. 그러면 다음해에 더 자랄 것이고 언젠가는 보라색 꽃을 피울것이라 생각했다.

가을에 집안에서 화단으로 옮겨 심어 놓은 난은 키가 쑥쑥 자랐고 줄기도 더욱더 넓어져 그것을 보는 우리 부부의 마음은 너무나 기뻤다. 그리고 겨울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따스한 봄날이 되자 난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매일 매일 집안의 문을 열고 난을 보면 잎의 줄기 중간 중간에 보기 싫을 정도로 틈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면서 난을 볼 때 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매일 같이 상처를 주는 범인이 있는데 그 범인을 좀처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달팽이의 식탐   ©pixabay

그런데 어느날 아침 출근을 하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보니 한 그루 난에 네마리의 달팽이가 붙어서 열심히 잎의 줄기를 먹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큰 달팽이들이 각기 하나 하나의 줄기마다 붙어서 먹는 것을 보고 생각이 났는데 그것은 어릴때 시골에서 모내기를 할때 크고,시커먼 거머리의 색깔처럼 달팽이도 그와 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달팽이들을 보았던 시간이 오전 8:30분 정도 이었고 그때 날씨가 너무나 좋아서 햇살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도 달팽이들은 식탐이 너무나 지나쳐 햇살이 강하게 비추는데도 습한 땅 속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계속적으로 난의 줄기를 먹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달팽이의 탐심이 자신에게 화(禍)'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바로 달팽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점액질을 이용하여 움직이기에 햇살이 비추어지면 점액질이 마르게 되고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면 햇살에 말라 죽게 된다. 햇살에도 자신의 탐심에 의해 난의 줄기에서 내려 갈 줄 모르는 달팽이들은 분명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퇴근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달팽이에 관해 인터넷으로 조사를 해 보았다. 그런중에 한가지 배운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겨울철에 난이 달팽이로 부터 아무런 상처도 없이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달팽이들이 겨울잠을 잔 것 때문이다. 달팽이로 부터 난이 상처를 당한 이유는 달팽이의 입에 혀가 있고 그 혀에는 이빨이 있는데 이 이빨이 채칼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달팽이는 난의 줄기를 기어 오르면서 그 이빨로 표면의 영양을 섭취한 것이다.

달팽이는 자신의 영향을 섭취하기 위해 해가 떨어지고 습해지면 밤에 땅 위에 올라와 밤새 영양을 공급하고 해가 솟아 오르기 전에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달팽이에게 더 이상 난의 줄기에 이르지 못하기 위해 아내가 어느날 아침 일찍이 난의 주변에 소금을 뿌렸다. 이로 인해 미처 아내가 소금을 뿌리기 이전까지 난의 줄기에 붙어 있던 달팽이들은 소금이 그들에게 독이 되어 소금에 달팽이가 녹아 없어진 것이다. 그것은 소금이 달팽이의 진액을 완전히 말라 버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달팽이의 식탐이 난의 줄기에 큰 상처를 남겼고 달팽이들은 아침에 햇살에 의해 말라죽었고 후에 일부 달팽이들은 소금으로 인해 피부가 찢어지고 녹아져 죽게 된것이다. 달팽이 자체만으로 볼때 달팽이는 사람에게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식용으로도 사용되어지고 달팽이의 점액질이 사람들이 사용하는 화장품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달팽이를 보고 느낀 것은 달팽이 자체가 아니라 식물의 잎을 적당히 먹고 자신이 온 길로 돌아가야 하는데 너무나 탐식이 크다 보니 욕심이 과하여 죽게 된 것에 관한 것이다. 달팽이의 지나친 식탐을 보면서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도 달팽이 처럼 지나친 탐심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탐욕이 강하면 나 아닌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주고 살 뿐 아니라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때로는 타인에게 거짓말을 해야하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을 숨겨야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무서운 것은 처음에는 작은 것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터 큰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삶에 지나친 욕심은 죄를 낳게 되고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탐심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으로 인해 때로 자유하지 못하여 불행을 경험한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많다. 그 이유는 인간이 가지고 싶어하는 소유에는 정도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탐심으로 인해 성령을 속여 죽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부부가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사도행전 5:1-11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초대교회의 공동생활에 영향을 받아 베드로 사도에게 자신들의 소유를 다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을 했다. 그래서 자신의 재산을 팔았는데 그것을 헌금으로 드리려고 하니 마음에 탐심이 생겨 자신이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하고 재산을 판 일부만 헌금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베드로에게 헌금을 드리면서 자신이 드린 것이 소유의 전부인것 처럼 가장을 한 것이다. 이에 베드로가 그것을 알고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으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이 책망이 아나니아에게 주어지자 그는 그것을 들은 즉시 엎드러져 혼이 떠나 죽게 된다. 그후 몇 시간 후에 그의 아내 삽비라도 동일하게 죽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적당하게 살아간다는 말을 쉬운 것 같지만 그리 쉬운것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며 살아가려고 하기에 항상 과욕을 부리게 된다. 그런데 과욕이 지나치게 되면 삶에 모든 중심이 자신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멀어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 갈 수가 없게 된다. 그 이유는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교만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모르고 탐심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육신뿐 아니라 영혼까지 죽게 된다.

글ㅣ김칠곤 목사(크릭사이드 한인교회·thecreeksidechur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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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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