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훈 교수(연세대학교·평통기연 공동운영위원장)

[기독일보=평화와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입니다. 십자가 수난 앞에서 예수님은 인간적인 두려움이 없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여, 하실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이미 제자들에게 십자가 수난을 여러 번 예고하셨던 예수님께서도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립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인류를 살리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으로 인해 이 땅에서 부활의 생명이 싹트고, 죽음의 세력은 무력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나'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너'를 죽이려고 합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이라면, '나' 아닌 '너'는 죽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너'는 '나'를 위한 희생물이 되어야 하고, '나'를 위한 도구나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너'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너' 역시 '나'를 포함한 수많은 다른 '너'를 죽이려는데 주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나와 너', '너와 나'의 관계는 긴장과 갈등, 대립과 투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은 세상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보여줍니다. 수많은 '너'를 위해서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너'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면, '나'는 죽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 '너'를 위한 희생물이 되고, '너'를 위한 도구나 디딤돌로 기꺼이 내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여기 십자가의 길에서 긴장과 갈등이 해소되고, 대립과 투쟁이 중지되며, 진정한 평화가 움터 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요즈음 한미동맹관계에 있는 미국이 남한 지역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를 방어한다고 하지만, 미국의 주적(主敵)인 중국을 위협하는 용도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사드의 용도가 중국용이라고 하면, 미국이 비용을 부담하고, 기지 확보를 위해 남한정부에 요청을 해야 할 터인데, 북한의 핵무기 방어용이라 하니 남한이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기지까지 자발적으로 내주어야 할 상황입니다. 설사 사드가 북한의 핵무기 방어용으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남한을 방어하기보다는 미국 본토와 일본을 방어하는 비중이 더 크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여튼 사드 배치로 인해서 한반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처럼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 또는 '동맹'만 살아보겠다는 사드의 배치가 '너'와 '적들'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를 위협하면서 재난으로 이끌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순절 마지막 주간 수요일,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의 방식만이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에서 더불어 사는 생명의 유일한 방식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글ㅣ정종훈 교수(평통기연 공동운영위원장·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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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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