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혁 교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기독일보=평화와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 3월 둘째 주말을 분수령으로 완연한 봄으로 들어선 것 같다. 셋째 주는 줄곧 포근한 가운데 수요일엔 봄비도 촉촉이 내린다고 한다. 산자락에 있는 캠퍼스에는 한 곳에서는 수양버들이 물을 머금고 고개를 숙여 봄바람에 말리고 있다.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는 꼬까신 신고 뒷산의 진달래를 따러 갈 수 있을까. 봄이 사람을 찾아오나, 아님 사람이 찾아가야 하는가?

올 봄에도 영변에는 어김없이 진달래가 피겠지만 거기에 봄은 이미 유린되었는지도 모른다. 죽임의 수단이 거기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반도의 동해 일대에서는 매년 3~4월 한미합동군사연습이 진행되고 있는데 북한을 공격하는 연습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그에 맞서 북한도 군사연습으로 맞대응 하며 청와대는 물론 워싱턴까지 공격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보이고 있다. 북한정권의 그런 큰 소리 뒤에는 동원과 경계에 동참해야 하는 주민들의 고단함이 숨어 있다. 농사 준비를 위해 나서는 들에, 공장에 출근하는 골목길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을 망울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전단을 날리는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봄은 찾아왔다. 정부가 발표한 천안함 사건 보고서의 허점이 점점 드러나고 있는데도 그 사건을 빌미로 공개 대북 전단 날리기를 강행한단다. 사건의 진실규명과 그 희생자들에 대한 치유, 그리고 평화기원보다는 악마를 재생산하고 긴장을 조장하는 일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사람들은 무엇을 꿈꿀까? 그들에게 평화의 봄은 사치이고, 대신 표현의 자유는 내릴 수 없는 깃발인가. 그런데 생명권, 소유권, 그리고 평화권은 인권의 목록에서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

제네바에도 봄은 찾아오고 있을 것이다. 몽블랑은 아직 겨울의 끝자락에 있겠지만 몽트뢰 산책로에는 풀꽃이 일어날 것이다. 거기서 남북은 대단한 인권 논쟁을 하고 있다. 인권침해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에 세워야 한다고. 그에 맞서 공화국의 주권침해를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주권을 이유로 인권을 유보할 수 있단 말인가. 또 국가안보와 다른 이유로 인권 후퇴를 합리화 한다니, 모두 시대착오적이다. 둘이 풀어야 할 인도주의, 인권 문제도 풀지 못하면서 이억만리까지 가서 싸우는 작태는 봄 기운을 밀어내고 있다. 인권의 오염, 곧 정치화, 안보화가 심각하다.

공포를 조장해 동원을 이끌어내고 침묵을 강요하는 건 군사주의 문화의 특징이자 독재정치의 주된 방식이다. 강요된 복종을 자발적 복종으로 치환시키고, 소외된 사람을 권력의 대행자로 앞세우되 그걸 동일시 효과로 은폐시키는 데서 권력정치의 정점을 보게 된다. 보궐선거를 왜 치러야 하는지 반성하지 않고 비방과 독선에 빠진 구태정치에 유권자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을 터이다.

적과의 동침은 가당치도 않다. 미우나 고우나 타령만으로도 어렵다. 필요에 의해, 상호 필요에 의해서 공변(共變)을 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주요 내역에 평화와 인권의 상호의존이 자리하는데, 하나 더 추가할 주요 사안이 있다. 남북의 경계는 물론 한반도를 초월하는 초국경, 탈이념적 사안으로서 환경 오염문제다. 초미세먼지가 남북 대결, 이념 갈등으로 뒷전에 서 있지 않다. 제2, 제3의 후쿠시마의 유력한 후보지가 중국 동해, 한반도 동해가 아닐 바랄 뿐. 아무래도 봄이 사람을 찾아오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이 찾아가야 할 것 같다.

글ㅣ서보혁 교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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