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란인교회 이만석 목사

[기독일보=이만석 목사] 이슬람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뉴스 거리가 아니라 일반상식이 되어 버렸다. 미주나 유럽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이슬람식 베일을 쓴 여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보인다. 세계 종교인구 통계를 보더라도 1900년에 1억9900만(12.3%) 명이었던 무슬림들이 100년이 지난 2000년에는 10억7천만(18.9%)을 헤아리다가 2015년 현재 공공연히 17억(23.6%)을 말하고 있다. 반면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 인구는 1900년에 5억5800만(34.5%) 명이었는데 100년이지난 2000년에는 19억9900만(33.0%) 명이 되었고 지금은 22억(30.5%) 명이라고 한다. 1900년을 기준으로 볼 때 6억도 채 안 되던 기독교 인구가 2015년 현재 22억이 되었다고 하니 115년 만에 394%나 성장하여 참 많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세계 인구는 16억에서 72억으로 450%나 증가했기 때문에 기독교는 세계 인구 성장률에도 크게 미달하는 성장에 그쳤으며 세계 인구 중 차지하는 비율도 1900년 34.5%에서 2015년 현재 30.0%로 오히려 현저히 줄어들었다. 한편 이슬람 인구는 1900년 18.9%에서 지금 현재 23.6%로 급격히 상승했고 인구로 볼 때 854%나 급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렇게 급성장하고 있는 무슬림들은 그 증가 추세가 더욱 빨라지고 있으며 기독교 인구는 그 감소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제 이슬람 인구 급성장 문제는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고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우리 후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매우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슬람 인구가 급증하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 무슬림들의 높은 출산율

무슬림들은 출산율이 매우 높다. 출산율이란 한 여인이 평생 출산할 수 있는 아기의 숫자를 말한다. 부부가 결혼해서 아이 둘만 낳으면 인구가 유지될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결혼 전에 죽는 사람도 있고 결혼했어도 아이를 못 가지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가 결혼해서 평균 2.1~2.2명을 낳아야 인구가 유지된다고 한다. 그러나 유럽의 평균 출산율은 1.38명이고 대한민국의 2000년 이후 현재까지 평균 출산율은 약 1.25 수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3대 국가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권은 인구가 급팽창하고 있다. 출산율이 높기 때문이다. 참고로 필자가 1986년도 4월 처음 이란에 선교사로 나갔을 때 이란 인구는 4천만 명을 약간 상회할 정도로 대한민국 인구와 거의 비슷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란 인구는 8천만 명 가량인데 대한민국 인구는 최근에 간신히 5천만 명의 선을 넘어섰다.

이렇게 출산율이 높은 데는 이슬람 문화의 일부다처 주의에 조혼 풍습이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슬람권에서는 여성의 결혼 연령은 하한선이 없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50세 때 아이샤( Aisha)라는 친구의 딸과 결혼을 했는데 그 때 그 딸아이의 나이는 6세였다. 그러나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3년을 기다렸다가 9세 때부터 합방을 했다고 한다. 무함마드의 행동은 지금도 모든 무슬림들이 따라야 할 표준이요 모범이기 때문에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는 지금도 여자 아이가 9세가 되면 학교에서는 성인이 되었다는 잔치를 벌여준다. 이란에서는 그 잔치를 '자쉬네 노썰레기(jashn e no salegi)'라고 부른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을 주도했던 종교지도자 호메이니 옹은 여자 아이의 결혼 적령기라는 것은 없기 때문에 한 살이나 두 살짜리와도 결혼해도 좋지만 부부생활은 9살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보여준 행동 모범을 따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슬람권에서는 어려서부터 아이를 생산하는 경우가 많아서 출산율이 높을 수밖에 없고 낙태도 율법으로 금하고 있기 때문에 인구 증가 속도는 가중된다.

■ 개종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이슬람권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없다. 무슬림 부모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무조건 무슬림이어야 하며 개종은 법으로 엄격하게 다스린다. 이슬람 율법에 의하면 이슬람 신앙을 떠나면 사형에 처한다는 것은 묻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꾸란에 보면 무슬림에게 자기가 믿는 다른 신앙으로 개종하라고 권하는 자는 이슬람으로 돌아 오지 않는 한 어디서 발견하든지 살해하라(꾸란4:89)고 단호하게 명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나 타 종교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지만 무슬림들은 다른 종교로 개종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 이슬람권에서 태어나서 다른 종교로 개종한 자는 정식 재판에 의해서 국법으로 처벌을 하고 체형을 가하고 벌금을 물리기도 하지만 개종 자체를 가문의 수치로 여기기 때문에 가족들이 명예 살인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자체 모순에 환멸을 느끼고 스스로 마음으로는 이슬람을 떠난 사람들도 겉으로는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 무슬림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종교활동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소위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들이란 꾸란도 읽지 않고 무함마드의 가르침도 관심이 없지만 그 사회에서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무슬림이라는 종교 신분을 고수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실상은 무신론자 혹은 비무슬림이지만 법적으로는 무슬림인 사람들이란 것을 중동에 살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무슬림들의 숫자는 줄어들 수 있는 퇴로를 법적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증가할 수밖에 없다. 당대 최고권의 이슬람 학자이자 옥스포드 학술회원이면서 이슬람에 관한 책을 120여권 저술한 유수프 가라다위는 "만일 개종하면 살해하라는 율법이 없었다면 이슬람은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유투브 동영상에서 보았다.

■ 포교활동을 통해서

이슬람처럼 도저히 적응하면서 살기도 힘들 것 같은 교리를 가진 종교가 21세기 첨단과학 시대에 급성장한다는 것은 지극히 이상한 현상이다. 그런데 무슬림들이 서양에서 포교하고 있고 유럽의 청년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슬람의 포교는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 지고 있을까?

■ 교리의 단순함을 이용함

이슬람의 교리는 단순하다. 기독교의 교리는 삼위일체 교리라는 것이 있어서 신학을 전공한 목회자들도 불신자들에게 삼위일체를 납득할 만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슬람의 교리는 단순하다. "알라 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메신저다(라일라 일랄라 무함맏 라술알라)"는 것만 아랍어로 고백하면 개종에 다른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아랍어로 신앙고백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짧게 여러 차례 끊어서 복창할 수 있도록 일러준다. 이것을 따라서 복창함으로 무슬림이 되면 많은 무슬림들이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해 준다. 오랜 기간 동안의 성경공부를 거쳐서 세례문답을 거치고 세례를 받아야 정식 기독교인이 되는 복잡한 절차와는 달리 구두로 복창만 하면 무슬림이 되는 것이다.

이들이 교리적으로 가장 집요하게 공격하는 부분이 삼위일체다. 그들의 주장을 들어 보면 그럴 듯한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땅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과 하늘에서 그의 기도를 받으시던 하나님과 어떻게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느냐? 이것이 거짓말이란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식이 아니냐? 기독교인들이야 어려서부터 그것이 진리라고 세뇌되었기 때문에 속고 있지만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에 속을 사람은 없다고 주장한다.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본 일이 없는 기독교인들은 이런 도전을 받으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만이 유일한 인류의 구세주"라는 신앙고백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슬람에서는 예수나 무함마드나 아브라함이나 모세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러 왔던 선지자 들인데 무함마드가 최후의 선지자이기 때문에 특별히 존경하는 것이고 신은 오직 알라뿐이 없다고 주장하면 유럽의 젊은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간다고 한다.

■ 집단 행동을 통한 연대감

문화란 집단 습관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도 있다. 무슬림들은 습관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이슬람 율법을 들으며 태어난다. 아침에 눈을 뜨고 꾸란 구절을 암송하면서 눈을 뜬다. 새벽에 동이 트기 전부터 동네가 떠나가도록 찌렁찌렁한 스피커를 통해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Azan)이 울려 퍼진다. 그러면 아버지부터 습관적으로 수도가로 가서 무함마드가 기도하기 전에 씻었던 방법으로 세수하면서 자녀들에게 그렇게 세수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찬찬히 살피면서 잘 따라 하면 매우 기뻐하면서 칭찬과 상을 아끼지 않는다. 이것이 한 집안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집도 다른 동네 사람들도 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그렇게 하면서 연대감을 형성한다. 이런 실천적 신앙은 소속감을 분명하게 해 주고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연대감이기 때문에 보기에도 아름다워 보이지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따라서 무슬림들이 이슬람 문화에 종교적 자부심을 가지게 되고 현대 과학문명이 발달된 서구문화에서 청소년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들을 보면서 막연한 동경심이 생기게 되는데 무슬림들이 이를 잘 이용하는 것이다.

반대로 기독교 문화가 뿌리를 내렸던 유럽에서는 신학의 타락으로 인해 절대가치가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풍조가 만연하여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성을 부인하며 구시대의 산물로 조롱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종교 다원주의가 팽배하여 어떤 종교도 나름대로의 존중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면서 기독교를 절대진리가 아니라 상대 진리로 전락시켜 버렸다. 그래서 교회가 텅텅 비게 되고 목회자들을 모실 수 있는 재정형편이 안 되는 교회들이 많다. 따라서 기독교 문화에서 자랐지만 성경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본 일도 없고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들어본 일도 없는 청년들이 볼 때 어른이나 아이나 나란히 줄을 서서 굽혔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면서 하루에 다섯 번 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을 보면 매우 경건해 보이고 신앙적으로 철저해 보이기 때문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개종자가 속출하게 된다.

■ 타끼야 교리

이슬람의 포교의 방법 중 매우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타끼야 교리다. 이는 소위 위장 교리라는 것으로서 이슬람, 무함마드, 꾸란, 알라... 등 이슬람에서 최고의 자리에 둬야 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이교도들에게 거짓말도 허용한다는 논리다. 매스컴이나 이슬람 성직자들의 인터뷰 기사 등을 보면, 분명히 꾸란에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는 사람 목을 잘라 죽이라는 구절이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은 꾸란8장 12절이라든지 47장 4절이라든지 목을 쳐 죽이라는 구절이 분명히 있지만 이런 구절이 있다는 자체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생각 때문에 감춰야 하겠는데 이미 인쇄된 꾸란이 누구나 사서 볼 수 있도록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상황에서 거짓말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여 거짓말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대중매체를 통해서 이슬람을 미화시킨 거짓말을 한다. 예를 들면 이슬람에서는 이혼이 너무 쉽기 때문에 구두로 세 번만 통보하면 이혼이 성립된다. 그러나 한국의 이슬람 지도자들은 매스컴에 등장만 하면 이슬람에서 이혼이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방송 담당자들은 성직자들이 자신의 교리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꾸란에 보면 이혼은 두 번까지니라(꾸란2:229) 혹은 아내를 바꾸는 방법까지 설명하고 있으며(꾸란4:20) 심지어는 이혼장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꾸란 65장이 있다. 그런데도 방송을 통해서 이슬람에서는 죽을 때까지 이혼이 안 된다는 미화된 거짓말을 한다. 그 방송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누가 일일이 그 꾸란을 읽어보고 그것이 거짓말이었음을 확인하겠느냐고 생각하고 일단 거짓말을 하면 이슬람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좋아질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생각된다. 포교를 쉽게 하기 위해서 이슬람에서는 미화된 홍보용 거짓 자료(동영상, 책자, 전단지 등)들을 많이 만들어 놓고 유통시킨다.

■ 지하드를 통한 포교

이슬람의 포교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즉 거짓과 폭력이다. 거짓은 타끼야 라고 한다면 폭력은 지하드(성전)라고 한다. 혹자는 지하드는 자신과의 내적인 투쟁을 의미하는 대 지하드와 이슬람을 방어하기 위해서 무기를 잡아야 하는 전쟁을 의미하는 소 지하드로 나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지하드라는 개념이 너무 혐오스럽고 끔찍하기 때문에 비무슬림들이 들을 때 반감을 줄이기 위해서 후대에 만든 사상으로서 꾸란과 하디스의 개념과도 맞지 않기 때문에 이슬람 정통 학자들도 이 하디스는 근거가 없는 가짜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하디스란 무함마드의 언행록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는 이슬람의 제2의 경전으로 취급될 정도로 이슬람 율법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지하드를 성전(Holy War: 聖戰)이라고 번역하는 사람이 많은데 무슬림들은 알라를 위해서 싸우는 전쟁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비무슬림들이 볼 때는 테러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단순히 이슬람을 믿지 않고 무함마드의 계시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웃을 죽이러 가는 전쟁이 어떻게 거룩한 전쟁일 수가 있을까? 그러나 꾸란에서는 이 지하드는 모든 무슬림들의 가장 우선되는 최고의 가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느 날 아라비아 반도에 사는 유목민들이 "우리도 이슬람에 귀의하겠습니다."라고 찾아왔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이들이 비무슬림들은 무조건 죽이기 때문에, 죽기 싫어서 신앙심이 없음에도 귀의했다고 고백한다고 책망하면서 진정한 무슬림의 정의를 내려주었다. 진정한 무슬림이란 첫째는 알라와 무함마드를 믿으며 둘째는 절대로 의심하지 않으며 셋째는 생명과 재산을 바쳐 지하드 하는 자라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진정한 무슬림이라고 말했다. (꾸란49:15)

오늘날도 이라크와 시리아 지방에 근거를 둔 소위 이슬람 국가를 자처하는 수니파 무장단체 IS가 이슬람 율법대로 실천하는 이슬람 국가를 만들고 만일 진정한 무슬림이 되기를 원한다면 IS에 합류하여 지하드를 하라고 촉구하자 세계 각국에서 헌신된 무슬림들이 모여들고 있다. 런던의 무슬림들 80%가 IS를 지지하며 매주 평균 5명씩 IS에 가담한다고 한다. 프랑스의 무슬림들의 69%가 IS를 지지한다고 한다. 유럽사회에서 제공하는 모든 복지 혜택을 받아 누리며 자라난 무슬림 2세들이 잔인한 IS를 지지하고 동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슬람의 경전 꾸란이 이를 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 다른 설명이 불가능할 것이다. 혹자는 무슬림 젊은이들이 유럽에서 따돌림을 받았기 때문에 분노가 쌓여서 폭발시킬 돌파구를 찾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럽은 똘레랑스(관용)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어서 이유 없이 누구를 따돌리지도 않고 오히려 최대의 편의와 복지를 제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함부로 남의 종교나 문화를 모독하거나 비하하면 가혹한 징계를 가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 놓고 실제로 집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설 땅을 잃을 것이다. 사람을 납치해 목을 잘라 죽이고 산채로 불태워 죽이는 것 등 최근에 보여준 IS의 끔찍한 행동은 오히려 "너희가 얼마나 잔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네 이웃과 싸우라(꾸란9:123)"는 구절을 실천하기 위한 헌신된 무슬림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 이민 정복 정책

무함마드가 보여 준 행동은 모든 무슬림들이 따라 해야 할 모범이다. 무함마드가 주후 622년 메카에서 핍박을 피해서 메디나로 이주한 것을 이슬람에서는 헤지라(Hejira)라고 하며 이를 이슬람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에 이슬람 달력은 이 때를 원년으로 한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메디나라는 낯 선 땅으로 이주하여 잠시 그 곳에 살다가 1년 6개월 만에 세력을 얻어 그 곳의 총 통치자가 된다. 그리고 그들을 규합하여 주변 도시들을 점령해 나가고 결국 630년 자신의 고향 메카까지 점령하여 정치적인 목적을 이뤘다. 당시 메카의 카아바 신전 안에는 360여개의 우상들을 안치해 놓았었는데 그는 신전의 문을 열고 모든 우상들을 깨드려 버리고 카아바 신전을 오직 알라의 신전으로 명명하고 아라비아 반도의 유일신 종교인 이슬람 체제를 확립했다.

이것이 무함마드가 보여준 행동모델이다. 무슬림들은 오늘날 역시 유럽과 세계 각처로 이민을 가서 그 곳의 혜택을 모두 누리면서 그 사회와 체제를 전복하여 이슬람 체제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무함마드가 칼과 폭력으로 점령했듯이 현대의 무슬림들도 자신들을 받아 준 국가의 체제를 이슬람으로 바꾸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타끼야가 적을 속여 아군의 숫자를 늘리는 작전이라면 지하드는 적들을 죽여서 적들의 숫자를 줄여서 아군들이 우위를 점령하게 하는 방법이다.

■ 다문화 정책

다문화 정책이란 유럽에서 1970년대부터 유럽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로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도와주면서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정책이다. 문화라는 것은 지역 조건에 맞게 혹은 역사적 배경에 따라 독특하게 형성된 자신들만의 집단 습관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어느 특정 지역에서 오래 살려면 그 지역의 풍습에 동화되고 어울려 공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선은 언어를 배워야 하고 그 지역만의 독특한 예의 범절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토착민들과 동화 되야 마찰 없이 평화공존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다문화 평화공존을 교리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이교도들을 절대로 친구로 삼지 말라고 강조하는 꾸란 구절이 한 두 구절이 아니다.(꾸란4:139~144, 꾸란3:28 등) 기독교 유대교인들을 친구로 삼지 말라(꾸란5:51)는 특정 종교를 대상으로 관계단절을 촉구하는 구절도 있다. 이런 구절들 때문에 무슬림들은 타문화권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은 그들에게 최선의 혜택을 베풀어 주면 그들도 감동해서 평화공존이 가능할 것으로 확신하며 계속 복지 혜택을 늘려 나갈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무슬림들의 테러 덕분에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어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보호법까지 2중 3중으로 만들어 놓았다. 심지어는 그들을 동화시키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줘야 한다는 정책 덕분에 유럽에서 조차 무슬림들에게 1부4처제도를 인정하는 법들이 실제로 적용되고 있고 줄어드는 유럽 인구를 충당하기 위해서 무슬림들 출산에 많은 복지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무슬림들의 율법인 샤리아로 재판하는 샤리아 법정을 운영하는 곳이 85개 도시에 있을 정도다. 따라서 무슬림 인구는 다문화 정책을 힘입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 우리의 대책

이슬람의 급성장에 대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이슬람의 정체를 알리는 일이다. 그들의 예쁘게 포장된 양의 가면만 보고 있으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이리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없다. 교회 지도자들이 알아야 교회를 지킬 수 있다. 매년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이슬람의 실체를 알리는 세미나를 열어 교인들을 일깨워야 한다. 유럽과 미주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의 80%가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통계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또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슬람의 실체를 바로 알아야 국가 안보를 지킬 수 있다. 무슬림들의 미화된 강의를 들었다면 이슬람의 실체를 알리는 강의도 들어야 이슬람을 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회에서 성경말씀 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 그래서 무슬림들이 파고들어 올 수 있는 틈을 보이지 말아야 하는데 예배만 드리고 교양강좌나 유명인들의 간증을 통해서 교인들을 즐겁게 하는 데는 많은 예산을 배정하면서 정작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 변증을 위한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는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유대교의 뿌리를 뽑아버리려고 만들어진 총체적인 시스템이다. 그들은 성경을 변질 위조된 책으로 선언하고(꾸란5:13) 꾸란은 하늘에 있는 책의 원본을 가지고 내려온 것으로 성경의 진위를 분별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한다.(꾸란3:4) 이런 사실을 모르고 우리 주변으로 몰려드는 무슬림들을 대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한 때 살기 좋았던 유럽이 이제는 무슬림들을 키우는 온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유럽 본토인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무슬림들과 내부에서 태어났지만 본토인들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가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무슬림 2~3세들의 복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면서 세금을 내고 있다. 정부는 다문화 정책 대신에 이들의 노동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출산을 장려하여 자체 인구를 늘려 나가야 할 것이다. 출산장려가 단시간에 이루기 어렵다면 낙태를 엄벌함으로 인구감소현상을 막아야 한다. 낙태만 막아도 인구문제는 거의 해결된다고 볼 수 있다. 다문화 정책이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라 무슬림들은 그들의 경전인 꾸란의 가르침과 무함마드의 행동모범 때문에 절대로 타문화와 평화공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위험한 것이다. 세계의 이슬람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을 모르면 한국교회를 지킬 수 없고 국가 안보를 지킬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후손들에게 평화로운 미래를 물려 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글ㅣ이만석 목사(이슬람전문가·한국이란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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