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원 교수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지난달 31일~11월 1일 온양관광온천에서 개최된 한국기독교학회 제43차 정기학술대회에서 한국실천신학회 안덕원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는 '앨런 페이튼(Alan Paton, 1903-1988): 평화의 영성과 리더십'을 주제로 발제했다.

안덕원 교수는 "앨런 페이튼(Alan Paton)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자유당(Liberal Party of South Africa, SALP, 1953) 창시자이며, 인종문제)해결을 위해 일한 사회운동가요, 인종과 기독교신앙에 관련된 글을 저술한 작가이다"고 소개하며 "넬슨 만델라가 표현하는 대로 앨런 페이튼은 '남아프리카의 대표적인 휴머니스트중 한사람'이며 그의 인종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정치, 사회, 문화적 노력과 공헌은 가히 기념비적이어서 수많은 이들이 지금도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앨런 페이튼의 정치인으로서의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왕성하고도 헌신적인 활동의 이면에는 그의 기독교 신앙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는 독실한 성공회 성도로서 평생 기독교적 세계관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살았다. 마크 놀(Mark Noll)은 기독교가 페이튼의 인생에 있어서 '도덕적인 닻(Moral Anchor)'이라고 단언한다"며 "그러나 그의 문학적 업적이나 정치적 공헌에 가려 아쉽게도 그의 삶을 규정하고 인도한 기독교 신앙의 영향은 깊이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앨런 페이튼의 저서들과 그에 대한 자료들을 살펴봄으로 기독교적 영성이야말로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먼저 "앨런 페이튼의 부모는 신실하고 겸손한 기독교인들이었고 페이튼에게 차별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가르쳐주었으며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대하여 존중하는 마음을 길러주었다"며 "페이튼의 부모는 스코틀랜드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이민을 왔는데 가정에서 페이튼이 어려서부터 성경의 주어진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도록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 가정환경이 페이튼으로 하여금 기독교적 신앙 안에서 살며 묵상집까지 출판하도록 하는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페이튼은 1935년부터 1949년까지 젊은 흑인 범죄자들을 수용했던 딥클로프 교화소(Diepkloof Reformatory)의 교장으로 일할 당시 매우 혁명적인 개혁을 시도하였는데 예를 들면 기숙사를 개방한다거나, 수용자들에게 일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또 자신들의 가족을 방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며 "자신의 기독교적 사랑과 관용을 소명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한 것이다"고 평가했다.

또한 "페이튼은 '평화의 도구'(Instrument of Thy Peace)라는 묵상집에서 개인의 복음화와 사회의 복음화는 구분하여 설명한다"며 "분명한 것은 그가 사회의 제도나 구조가 개인에게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신앙인들이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는 사실이
다. 그는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어쩔 수 없이 국가의 정책에 반대할 수 있음과 국가와 교회가 적대적인(hostility) 관계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페이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며 "증오가 아닌 사랑으로, 복수가 아닌 용서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평화의 도구들이 만들어내는 궁극적인 변화에 소망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오른쪽)앨런 페이튼이 흑인 소년을 가르치고 있다. ©www.elsdedalt.com/tag/alan-paton/

이어 "페이튼은 백인 기독교인들이 백인들의 방식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그들만의 벽을 쌓고 그들의 문화적 우월성에 갇혀있음을 통렬하게 비판한다"며 "그들은 백인들의 기독교문명을 전하는 것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보편적인 사랑과 정의를 담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백인이면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백인들의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은 자신을 객관화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고 평했다.

안 교수는 "그는 그가 직면했던 최악의 죄악들을 부정의(不正義) 앞에서의 잔인함(cruelty)과 냉정함(coldness)이라고 고백한다. 암담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부끄럽다고 여기고 그것을 죄악으로 정의한 것이다"며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페이튼에게 있어서 선택사항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의 의무이며 그 의무에 충실하지 않는 것은 죄악된 행동인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페이튼의 신앙은 개인적 경건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평화를 위한 구체적 행동을 포함한다"며 "1976년 6월16일 소웨토(Soweto)에서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있었을 때, 페이튼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들에게 '우리의 사학함과 교만과 무지(Blindness)에 대하여 회개합시다!' 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덧붙여 "알렉산더는 그가 저술한 페이튼 전기에서 페이튼의 인생을 편파적인 인종차별에 항거하여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는데 투신한 삶이며 그의 주위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묘사했다"며 또한 "페이튼이야말로 권력지향적인 것을 미워하고, 지성과 독립정신을 실천했고, 고상함과 인내,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고 회고한다"고 소개했다.

안덕원 교수는 "페이튼에게서는 식자(識者)의 교만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자신의 신학적 견해를 교조 주의화 하는 오류도 발견할 수 없다.'오늘 나의 눈과 마음을 열어 당신을 위한 평화의 일을 할 수 있게 하소서'라고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고자하는 경건한 기도가 그를 자기신념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주었다고 본다"며 "깊은 묵상과 정의를 위한 활발한 정치활동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앨런 페이튼의 영성과 리더십은 시대를 뛰어넘어 깊고 넓은 파장을 가진다"고 평가했다.

덧붙여 "앨런 페이튼은 과거의 갈등이나 탄압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평화를 이루어 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났다"며 "그러나 그의 발자국은 그의 저서들과 활동들을 통해 후대의 수혜자들에게 거룩한 추종을 위한 길잡이로 오롯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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