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선 박사는 외상의 치유와 회복을 돕는 것은 장기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며 초기에 섣불리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밝히려고 하는 시도는 피하라고 했다.   ©오상아 기자

12일 안산제일교회(담임목사 고훈) 1층 가나홀에서 '세월호 참사 정신적 외상 극복을 위한 대화마당'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안산 지역 교회 교역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나타나는 유형별 증상과 자살예방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주제로 발제한 김정선 박사(정선심리상담소 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는 먼저 '외상'이란 단어의 뜻을 정의하며 "외상(Trauma)이라는 단어는 겉에 난 상처를 말하지만,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외상은 Psychic Trauma를 줄인 말로 심리적인 외상 즉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마음과 정신에 커다란 상처가 난 것을 말한다"고 했다.

그는 치유와 회복 과정에서 목회자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제시하며 먼저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것은 외상치유의 필수적인 요소이다"고 했다.

김 박사는 "과거를 기억하고 슬퍼하는 것이 과거에 연연해하는 나약한 모습이거나 불신앙이 아니다. 충분히 슬퍼할 때에 감정에 대한 좀 더 효과적인 통제력을 얻으며 감정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 이루어진다"며 "따라서 우는 자와 함께 울어 주는 것이(롬 12:15)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주의할 점으로 "외상경험을 낱낱이 생생하게 파헤치면서 이야기하게 하는 경우 때에 따라서 2차적인 외상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기억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민감하고 부드럽게 이 과정을 겪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사회적 지지망은 외상 치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외상의 치유과정은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기에 지속적인 지지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매주 정기적으로 모이는 교회공동체는 지속적인 돌봄과 지지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탁월한 치유 공동체가 될 수 있다"며 "목회자를 도와 위기 상황에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평신도들의 교육과 훈련도 필요하지만, 교인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외상과 위기관련 교육을 통해 교회 전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민감하게 돕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세번째로 김 박사는 "외상 경험은 평소 가지고 있던 믿음 즉 세상은 기본적으로 안전하고 합리적이라는 생각과 가치관이 산산이 깨지는 경험이다"며 "종교는 사람들이 외상의 경험을 해석하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틀을 제공해 줄 수 있으며, 목회자는 이런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신학적인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치유와 회복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나님은 왜 이런 일을 내게 허락하셨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은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왜 내버려두셨을까?', '악은 무엇이고 선한 하나님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나?' 등과 같은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과 씨름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초기에는 외상적 사건에 대해 조급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숨은 뜻이나 섭리를 섣불리 밝히려고 하는 시도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박사는 '도움이 되지 않는 신앙인들의 상투적인 반응들'로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셔서 혹은 더 필요하셔서 천국으로 데려갔다', '우리를 시험하시고 연단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이런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등을 들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의 시험을 주신다'는 말에 대해서도 "이 말이 진리이고 어떤 경우에는 소망을 줄 수 있는 말이지만 극한 절망에 있는 사람에게는 공허하게 들리며 상처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이 사라질 것이다'는 말도 피하라고 했다. 그는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 고통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고통의 순간엔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다"며 "오히려 '당신이 외롭지 않게 당신과 함께 있어 주겠다'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김 박사는 죤 패튼의 저서 '목회적 돌봄과 상황'에 나온 어느 목사의 고백을 소개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 기도를 더하라고 요청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나보다 더 많이 기도해 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 나는 그저 침묵하겠다. 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고 말했지만, 한 사람은 애도의 말을 하거나 성구를 인용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와 함께 앉아 있었다. 내가 일어서면 그 사람도 일어섰다. 내가 문 쪽으로 걸어가면, 그 사람도 함께 걸어갔다. 그때만큼 기독교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위로와 따뜻함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마리아가 예수님께 와서 울면서 '주님, 당신이 여기 계셨다면 나의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말했던 일을 기억하게 해주었다. 예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영으로 신음하고 계셨다. 이 순간에 누군가가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순간에 말없이 함께 있어 주는 것은 기도의 가장 좋은 표현이다"

이어 김 박사는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이 계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할 수 있나? 정말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거냐?'와 같은 피해자에 질문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 이 세상을 선하게 이끄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지금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분노를 표현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오히려 이렇게 하나님에게 분노할 만큼 지금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음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박사는 "외상은 장기적인 치유와 돌봄이 필요한 과정이니 목회자 자신이 탈진되지 않도록 자신을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며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기보다는 믿을 수 있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함께 이 과정을 헤쳐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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