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캐릭터 사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고향을 떠나 상경했다. 디자인업체에서 일을 배운지 2년 만에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1999년 회사를 설립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한국의 토종 캐릭터를 들고 해외에 나갔다.

독특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는 캐릭터는 금세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잘나가기 시작했다. 회사는 창업 10년 만에 누적 매출 5,000억 원을 거두고, 연매출 200억 원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2000년 글로벌 캐릭터 ‘뿌까’를 탄생시킨 이래, 국내 캐릭터 산업을 10년 넘게 이끌어온 ㈜부즈 김부경 대표(39)의 이야기다. 그를 만났다.

   
▲(주)부즈 김부경 대표 ⓒ월드얀뉴스

놀이동산에 온 것 같았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부즈 사옥 지하 1층 카페테리아 내부는 아기자기한 캐릭터 상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직원들은 저마다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누는 이야기를 가만히 엿들어보니, 담소라기보다는 업무에 관한 내용이다. 각자 비슷한 정장을 입고 싸우듯 회의를 진행하는 여느 회사와 달라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김부경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면바지에 슬림한 반팔티셔츠 차림으로 기자에게 명함을 건넸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자유로운 기업 분위기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됐다. 김 대표는 말했다. “디자인 쪽 일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복장이나 사내 질서를 엄격하게 따로 두지 않습니다.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근무여건을 제공하고 있어요.”

그래서일까. 그들이 내놓은 캐릭터도 자유분방하다. 부즈의 대표 캐릭터 ‘뿌까’는 좋아하는 남자를 죽자 사자 쫓아 다니는 여자아이캐릭터다. 쪽머리를 하고 실눈을 뜬 뿌까는 항상 남자친구 ‘가루’를 향해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펼친 끝에 기필코 입술에 뽀뽀를 하고 마는 성격을 가졌다.

2000년 국내 캐릭터로는 최초로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통해 대중에게 소개된 뿌까는 당시 ‘엽기캐릭터’ 붐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다. 이 기발한 캐릭터가 탄생된 배경에는 김 대표가 항상 추구해온 신념이 바탕이 됐다. 김 대표가 말했다. “이 시대의 모든 콘텐츠에는 재미와 감동 그리고 새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뿌까는 ‘캐릭터는 어린이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10~20대 여성층을 타켓으로 삼았어요.”

분홍색, 상아색과 같은 부드러운 색 대신 강렬한 빨강과 당시 캐릭터에는 금기 시 되던 검은색을 조합해 캐릭터를 만들었다. 중화요리집 딸이라는 설정과 연애 시 성역할에서 남녀를 뒤바꿔 적극적인 구애작전을 펼치는 여성성을 부여하는 역발상을 더했다.

경상도 사투리로 ‘뽀뽀해 뿌까’의 ‘뿌까‘를 차용해 캐릭터 이름도 재미있게 지어냈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단순히 귀엽고 예쁜 캐릭터가 아니라 ‘재미와 감동의 스토리’를 지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눈이 즐거운 캐릭터보다 마음이 즐거운 캐릭터에 대한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김 대표는 회상했다. “당시 국내에서 캐릭터로 무언가 사업을 해보려 하면, 무조건 극장과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야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신생 캐릭터 뿌까 하나를 들고 있는 신생 업체에게 그런 힘이 있을 리 만무했죠. 그래서 해외로 나갔습니다.”

넓은 폭만큼 기존 경쟁자로 인해 벽도 높았던 해외시장이지만,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를 가진 뿌까의 차별성으로 꾸준히 파괴해 나갔다. 그 결과 현재까지 170여 개국 500여 곳의 사업자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3,000여 종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중국에만 174개 단독 매장이 있고,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에선 10대∙20대 여성층에게 최고 인기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2008년에는 브라질에서 ‘뿌까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뿌까에 연이은 후속 캐릭터들 역시 꾸준히 히트를 쳤다.

성공가도를 달려온 비결을 물었지만, 김 대표는 손사래를 쳤다. 그에게 아직 성공이라는 단어를 꺼내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경상도 남자 특유의 겸손함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진심이 느껴졌다.

그는 성공비결 대신 꿈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말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아하는 일이나 분야를 결국 찾아내야 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봅니다. 마음을 먹고 과감하게 뛰어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꿈을 믿어야 하는 것이 두 번째고요. 마지막은 그 분야의 선배가 가지 않은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가 걸어온 길이 그랬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후 캐릭터가 좋아 무작정 대구를 떠나 연고도 없던 서울로 향했다. 그림을 통해 세상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어린 시절부터 커다란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캐릭터에 확신이 서면, 노력 끝에 들어간 회사에서도 과감하게 박차고 나왔다.

20대 후반, 적은 자본금을 모아 동생과 함께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세상에 캐릭터를 공개한 이후, 국내 시장을 과감하게 제쳐두고 해외시장으로 직행했다. 해외캐릭터 박람회장과 전시회장을 누벼가며 캐릭터를 알리며 고생한 끝에 결국 빛을 보았다. 그가 생각했던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대표는 말했다. “동양인이 만든 문화콘텐츠 중에서 큰 장벽 없이 서양으로 바로 진출하기에 정말 유리한 분야가 캐릭터 산업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만화와 캐릭터는 세계 공용어입니다. 동서양문화 및 인종의 벽이 없기 때문이죠.”

그의 말대로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입은 한국 어린이와 뽀로로 인형을 든 미국 어린이가 느끼는 감성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 이 시대에서 ‘누가 만들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들었는가’이다. 그가 스물아홉살이 되던 해에 깨달은 그 확신은 이제 비단 캐릭터 분야뿐만 아니라, 현 시대를 움직이는 여러 가지 산업에서도 등장한다.

스마트폰을 쓰는 이라면 누구나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의 존재가 그 증거다. 얼굴도 나라도 인종도 모르는 누군가가 만든 애플리케이션은 오로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세계 곳곳에 다양한 감성을 실어 나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깨닫고 확신을 가질 것인가. 이 어려운 질문에 김 대표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말을 이어갔다. “청소년 시기에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지식과 경험이 모여 하나의 답을 향해 가지 않을까 합니다. 학창 시절 같은 시간 똑같은 지식을 습득해도 각기 다른 꿈이 탄생하는 걸 봐도 명백하게 정해진 길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누구나 자신의 꿈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죠. 그 해답에 찾아가기 위해서 꾸준히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며, 언젠가 ‘짠’ 하고 찾아올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기다리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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