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밖에서 묻는 질문들
도서 「교회 밖에서 묻는 질문들」

예수가 이 땅에서 보여준 모습은 우리에게 고통받는 이웃에게 시선을 돌리고, 각자의 십자가를 짊어지도록 격려합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그랬던 것처럼, 예수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고통의 순간마다 하늘을 바라보면 신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게 당연합니다. 그는 이미 고통의 낮은 현장에 내려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자신 또한 그 고통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돕고 그들의 아픔을 나누면서 함께 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자리에 함께 있을 예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성민 - 교회 밖에서 묻는 질문들

끝까지 서로의 곁에서
도서 「끝까지 서로의 곁에서」

인공지능이 건네는 위로의 말은 때로 사람이 건네는 것보다 더 정확하고 따뜻하다. 홀로 지내는 이에게 밤새 말벗이 되어 주고, 차마 꺼내지 못한 마음을 먼저 물어봐 주기도 한다. 그 다정함을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다만 그 말은 한 번도 죽음을 두려워해 본 적 없는 입에서 나온다. 같은 운명을 진 자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 곧 나 역시 언젠가 이 길을 간다는 그 동질감에서 비롯하는 위로만은 사람의 몫이다. 고인의 몸을 정성껏 돌보는 그 수고로운 손길 속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은 생명의 소중함과 삶의 거룩함을 지켜 왔다. 교회는 죽음을 맞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마지막 여정에 함께해 왔다. 그 동행 속에서 유가족의 슬픔은 위로받고, 서로의 감정은 깊이 이어진다. 인간에게는 몸이 있기에 마음도 있다. 체온이 있기에 온기도 전해진다. 인간의 몸은 완벽하지 않다. 상처 나고 지치고 무너진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한 몸들이 모여 서로를 위해 움직일 때, 슬픔은 비로소 가라앉기 시작한다.

박인조 - 끝까지 서로의 곁에서

불의한 분노의 치유
도서 「불의한 분노의 치유」

급한 분노는 어리석은 악덕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경솔함에서 시작되어, 대개 후회로 끝납니다. 성급한 자는 말이나 행동으로 이웃을 상하게 한 뒤, 나중에야 후회합니다. 그들은 마치 먼저 상처를 내고 나중에 그것을 싸매는 어리석은 의사와 같습니다. 상처는 치유될지 몰라도 흉터는 남습니다. 우리는 형제 사랑이 우리를 보복으로 이끄는 분노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10).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15절). 어떤 이는 “나는 형제를 사랑하지만 쉽게 화가 나는 것뿐이다”라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사랑은 오래 참고…모든 것을 견딘다”(고전 13:4, 7)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참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도 곧바로 분노하는 자들은 이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존 다우네임, 브라이언 G. 헤지스 - 불의한 분노의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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