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산·기술·금·항공·해운 제재… 시행 시점은 공개 안 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을 세계 경제에서 고립시키기 위한 ‘경제적 배제 작전(Operation Economic Outcast)’에 돌입했다.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에 세컨더리 제재를 가해 이란 정권의 자금줄을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은 특히 중국을 비롯해 이란과 경제 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들이 이란 정권을 지탱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 국가가 이란과의 거래를 중단하지 않으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미국은 새로운 세컨더리 제재를 즉시 전면 시행하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시한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번 발표는 본격적인 제재에 앞서 관련 국가와 기업에 거래 중단을 요구하는 경고의 성격도 띠었다.
◈ “이란 정권 지탱하는 모든 경제적 생명줄 차단”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재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란과 이를 지원하는 세력을 대상으로 전례 없는 ‘경제적 배제 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은 “우리의 목표는 이란이 완전히 고립될 때까지 폭압적인 정권을 지탱하는 모든 경제적 생명줄을 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에는 이제 두 가지 길만 놓여 있다”며 “완전한 국제적 고립과 최저 수준의 경제를 감수하거나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와 세계 경제에 다시 합류할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 재무부가 이란이 원유를 밀수하고 기존 제재를 회피하는 데 활용해 온 거점과 조력자, 금융·운송 네트워크를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무부와 다른 정부 기관이 취하는 조치는 이란혁명수비대(IRGC)와 이란 정권에 흘러 들어가는 모든 잠재적 수익원을 차단하고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에 세컨더리 제재 경고
미 재무부는 이번 이란 경제적 배제 작전의 주요 대상으로 이란과 경제 관계를 이어가는 제3국을 지목했다. 해당 국가의 기업과 금융기관이 이란과의 거래를 중단하지 않으면 세컨더리 제재를 시행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베선트 장관은 “이란 정권의 마지막 피난처는 이란의 위협을 피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여전히 자금을 제공하는 국가들의 잘못된 판단”이라며 “더는 분쟁의 회색지대에서 활동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단을 요구한 활동에는 이란산 원유 운송을 비롯해 환전소와 자유무역지대를 통한 자금 유통, 이란 항공기의 입국 허용, 해상 연료 환적과 육로 운송 등이 포함됐다. 이란이 다른 나라의 은행을 불법적으로 이용하도록 묵인하는 행위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선트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각국 지도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란 정권과의 교류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며, 이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과 함께하는 국가들은 협력에 따른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이란 정권과 계속 얽혀 있는 국가들은 쇠퇴하는 정권과 함께 고립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란 자금세탁 기관, 달러 결제망서 퇴출”
미 재무부와 국무부, 미군 관계자들로 구성된 실무진은 세계 각국 정부 관계자들과 접촉하며 미국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조치를 전달하고 있다. 미국은 각국에 제재 대상으로 지목한 활동을 중단해야 할 기한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선트 장관은 “해당 국가들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재무부의 권한을 동원해 일방적으로 조치할 것”이라며 “이란 국영 멜리은행(Bank Melli Iran)의 모든 해외 지점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란을 대신해 자금세탁을 돕는 모든 기관은 미국 달러 결제 시스템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달러 거래가 차단되면 해당 금융기관과 기업은 국제 금융·무역 거래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된다.
미 재무부는 디지털 자산과 기술, 금, 항공, 해운 등 5개 분야를 겨냥한 부문별 제재 조치도 발표했다.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란의 원유 수출과 핵·미사일 기술 조달, 사이버 활동 등을 지원한 혐의로 60여 개 단체와 개인, 선박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 중국도 제재 대상 가능성…“누구도 예외 없어”
베선트 장관은 이란의 최대 원유 구매국인 중국도 향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이란이 해상으로 수출하는 원유의 80% 이상을 구매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는 중국이 제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누구도 미국의 제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답했다. 중국 기업이나 금융기관도 미국이 제시한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은 앞서 이란산 원유를 거래하거나 이란의 제재 회피를 도운 중국과 홍콩 소재 일부 기업을 제재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의 대형 금융기관과 주요 기업을 직접 겨냥할 경우 미중 간 경제 갈등이 더욱 커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새로운 제재를 추진할 경우 중국 측의 보복 조치도 감수해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 협상 교착 속 경제 압박 강화…구체적 시한은 비공개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발표에 앞서 이란에 대한 대규모 경제 압박 조치를 예고해 왔다. 베선트 장관은 전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이란을 겨냥한 경제적 디데이(D-Day)가 시작된다”며 고강도 금융 제재 구상을 밝혔다.
미국과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와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정권의 원유·금융 수입을 차단하는 대규모 경제 공세를 통해 압박 수위를 높였다.
다만 이번 조치의 핵심인 세컨더리 제재는 즉시 전면 발동되지 않았으며, 적용 대상과 시행 시점도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베선트 장관은 제재 일정에 관한 질문에 “구체적인 기한은 발표하지 않겠다”면서도 “미국이 무한한 인내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제재를 당장 시행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상황을 정리하고 관련 국가와 기업들이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국의 요구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달러 결제 시스템에서 퇴출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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