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한 달여 앞두고 장기간 이어진 폭염과 남부지방의 폭우로 채소 가격이 크게 올랐다. 빵과 라면, 만두 등 가공식품 가격도 잇따라 인상되면서 장바구니 물가에 대한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비교적 안정된 흐름을 보였지만 소비자들이 자주 구매하는 먹거리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재료비와 인건비 부담이 외식업계로 번지면서 대표적인 서민 음식으로 꼽히던 김밥과 라면 가격도 더 이상 가볍게 보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8% 상승했다. 지난 6월의 3.2%보다 상승 폭이 0.4%포인트 낮아지며 다시 2%대로 내려왔지만, 체감물가와 밀접한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5% 올랐다. 전체 지표와 실제 장보기 과정에서 소비자가 느끼는 부담 사이에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 폭염에 시금치 95%·배추 61% 급등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고온에 취약한 채소류의 생육이 부진해지고 출하량도 감소했다. 농산물 공급 불안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히트플레이션’이 추석 먹거리 물가의 주요 불안 요인으로 떠올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시금치 100g의 평균 소매가격은 2121원으로 한 달 전 1088원보다 94.94% 급등했다. 같은 기간 배추 한 포기는 61.27%, 깻잎 50g은 53.6% 상승했다. 오이 10개 가격은 7977원에서 1만1069원으로 38.76% 올랐고, 애호박 한 개 가격도 38.51% 뛰었다.
채소 가격이 충분히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석 성수기에 접어들면 수요 증가까지 겹쳐 농수축산물 가격의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올해 추석이 다음 달 25일인 만큼 명절을 준비하는 가계의 장바구니 부담도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신선식품뿐 아니라 가공식품 가격도 하반기 들어 잇따라 올랐다. 식품업체들은 원재료와 포장재, 물류비 상승과 고환율 등으로 누적된 원가 부담을 가격 조정의 배경으로 들었다.
◈ 빵·라면·만두 등 가공식품 가격도 줄인상
CJ제일제당은 지난달 30일부터 햇반과 만두, 생선구이 등 8개 카테고리 27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8% 인상했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뚜레쥬르도 지난달 31일부터 빵 등 76종의 권장소비자가격을 평균 8.2% 올렸다.
농심은 이달 1일부터 주요 용기면과 스낵, 음료 제품의 출고가격을 각각 평균 6.0%, 5.5%, 7.7% 인상했다. 던킨은 도넛 39종의 가격을 평균 6.5% 조정했고, 풀무원도 간식과 김치, 냉동볶음밥, 소스, 만두 등 30개 품목의 소비자가격을 평균 6.7% 올렸다.
가격 인상은 이달 말과 다음 달에도 이어진다. 파리바게뜨는 오는 25일부터 빵류 86종과 케이크·디저트 41종 등 일부 제품의 가격을 평균 5.0% 인상한다. ‘상미종 생식빵’은 3900원에서 4100원으로, 카스테라는 2400원에서 2500원으로 오른다.
삼립은 다음 달 1일부터 빵 제품 50여 종의 가격을 평균 9%대로 인상한다. 편의점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정통보름달’은 1800원에서 2000원으로 조정된다. 팔도도 같은 날 왕뚜껑과 도시락, 팔도비빔면컵 등 용기면 12종의 출고가격을 평균 5.5%, 비락식혜 등 음료 9종을 평균 5.8% 올린다. 봉지면 가격은 유지하기로 했다.
오뚜기는 다음 달 7일부터 진라면과 열라면, 참깨라면, 컵누들 등 컵라면 11개 브랜드 29개 품목의 출고가격을 평균 6.7% 인상한다. 만두 3개 브랜드 16개 품목의 출고가격도 평균 7.7% 올린다. 오뚜기 역시 봉지라면 전 품목은 가격 조정 대상에서 제외했다.
◈ 서울 김밥 한 줄 평균 3838원… 일부 매장 5000원 넘어
가공식품과 농산물 가격 상승은 외식 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지역 김밥 한 줄의 평균 가격은 3838원으로, 1년 전보다 5.9% 상승했다.
광화문과 종각 일대 김밥집 7곳을 조사한 결과 가장 저렴한 김밥은 한 줄에 4000원, 가장 비싼 김밥은 5100원이었다. 평균 가격은 4400원이었다. 참치김밥 등 재료가 추가되는 메뉴에 라면까지 주문하면 한 끼 가격이 1만원 안팎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직장인들은 외식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김밥집을 찾고 있지만, 김밥과 라면 가격마저 오르면서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하기 어려워졌다고 호소했다.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김모씨는 “참치김밥 한 줄에 라면만 주문해도 1만원 정도가 된다”며 “외식 물가가 많이 오른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업주들도 가격을 올리지 않고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지만, 김밥이 ‘가성비 음식’으로 인식돼 있어 섣불리 가격을 조정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줄고, 가격을 유지하면 수익성이 악화하는 구조에 놓였다는 것이다.
◈ 쌀·달걀 가격 상승에 인건비 부담까지
지난 20일 기준 쌀 20㎏ 상품의 중도매인 연평균 판매가격은 6만410원으로 지난해 5만4674원보다 10.49% 상승했다. 특란 30개 가격은 7270원으로 지난해 8월 평균 6179원과 비교해 17.65% 올랐다.
서울 종로구의 한 김밥집 관계자는 “6000원이던 달걀 가격이 갑자기 9000원으로 뛰었다”며 “가격을 바로 올리면 소비자들이 반발하기 때문에 당장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김밥집 업주는 “주재료인 김과 달걀 가격이 오른 뒤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다”며 “인건비도 매년 상승하고 있어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재료비와 물류비, 인건비가 동시에 오르면서 자본력이 부족한 영세 외식업체의 경영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물가 상승으로 판매량까지 줄면 영세업체들이 사업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식사하려 해도 가공식품과 농수축산물 가격이 모두 올라 소비자 지출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폭염의 영향이 추석까지 이어지면 먹거리 물가를 통해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물가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먹거리 물가와 생활물가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정부 비축 물량 방출과 수입 확대, 유통업체·전통시장 할인 지원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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