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행정 예고한 건축기준 개정안을 발표 9일 만에 거둬들였다. 고시원의 책상 설치 의무를 없애고 욕조 설치는 허용하는 안을 내놨다가 현실과 동떨어진 청년 주거 정책이라는 비판과 조롱이 쏟아지자 결국 재검토하기로 입장을 바꾼 거다.
국토교통부가 고시원에 대한 건축기준을 바꾸려는 의도는 2022년 기준 고시원이나 고시텔에 거주하는 가구가 15만 8천 가구로 집계되는 등 1인 가구 증가가 계속 증가하자 규제를 완화하려는 차원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현실성이 떨어지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고시원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고시원은 본래 고시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거주하는 주거시설이다. 도심의 비싼 임대료 부담 때문에 책상 하나와 자기 몸 하나 겨울 누울 정도로 비좁다. 이런 공간에 욕조를 놓도록 건축기준을 바꾸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청년들이 처한 현실에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청년 주택 해결 방안으로 폐기 버스를 활용하자는 제안을 했다가 온갖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됐다. 네덜란드 ‘보트 하우스’를 모델 삼아 버려진 버스를 청년 주거시설로 쓰자고 제안한 건데 우리의 주거 현실과 동떨어진 데다 청년을 난민 취급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반면에 정부와 서울시가 용산공원에 아파트를 짓는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헐고 그 자리에 1만 5000가구 아파트를 짓자는 시민의 역제안은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 시민이 SNS에 “서울에서 가장 생산성이 떨어지는 기관”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의 내용은 국회의사당을 세종시로 완전히 이전하고, 기존 터 약 10만 평에 용적률 500%를 적용해 고밀 개발을 하면 전용 20평에서 30평 위주로 대략 1만 5000채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대한민국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사당을 이전하는 문제는 정치적 상징성과 결부돼 가볍게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그런데도 이런 제안이 큰 반향을 일으키는 건 정부가 내놓은 각종 공급 대책들이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데 원인이 있다.
이걸 조롱이나 비아냥으로 해석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분노에 가깝다. 국토 균형 발전을 외치는 정치인들부터 자기 공간을 내주고 솔선수범을 하라는 국민적 메시지로 새겨들어야 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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