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라델
제프리 라델.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제프리 라델의 기고글인 '나는 어떻게 20년 동안 사업을 우상처럼 섬기게 되었나'(How I worshiped my business for 20 years without ever meaning to)를 8월 18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제프리 라델은 작가이자 『킹덤 이코노미(The Kingdom Economy): 거래 중심의 세상에서 사랑의 유산을 세우다』의 저자다. 그는 또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사역과 조직을 세워가는 방식을 이끌도록 전환하는 과정을 돕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필자는 이미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당신은 자신의 사업을 위해 기도한다. 최소한의 헌금만 내는 식으로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기꺼이 베푼다. 직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직업 생활에서 그리스도가 어떤 자리에 계시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주저 없이 “제 삶의 중심에 계십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필자는 그 말을 믿는다. 필자 역시 똑같이 대답했을 것이고, 실제로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고통스럽고 조심스럽다. 약 20년 동안 필자는 아주 은밀하게 마음 한구석이 ‘비즈니스’를 숭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직함과 돈, 성공을 하나님 ‘대신’ 섬긴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과 ‘나란히’ 두고 섬겼다. 문제는 그것이 탐욕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찾아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오히려 필자의 성실함과 책임감 속에 숨어 있었기에 훨씬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필자는 스스로 안전하다고 확신했다.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지만, 당시 필자의 머릿속에서 돌아가던 계산은 대략 이러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바울의 경고를 알고 있었고, 관련 성경 말씀도 수없이 읽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필자는 비즈니스보다 예수님을 ‘더’ 높이 모시고 있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혼자 결론 내렸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우상숭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상숭배는 반드시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는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 옆에 무언가를 ‘하나 더 세워두는 것’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은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다른 제단들을 함께 남겨두었다. 블레셋 사람들 역시 빼앗은 하나님의 궤를 다곤 신전에 가져다 놓고 자신들의 신과 나란히 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날 다곤 신상은 하나님의 궤 앞에 엎어져 있었고, 다시 세워 놓은 뒤에는 머리와 두 손목까지 끊어진 채 발견됐다(삼상 5:4).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른 대상과 나누어 가지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여러 우상 가운데 ‘1등’이 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신다. 이것은 불안정한 질투심 때문이 아니라 자비 때문이다. 마음속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한 무언가는 언젠가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기 시작하지만, 하나님과 달리 그 우상은 결코 우리를 사랑하거나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무제표의 숫자들이 필자에게 말하고 있던 것

필자가 길을 벗어나고 있다는 징후는 기도나 헌금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둘 다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징후는 사업의 숫자가 요동칠 때 필자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있었다.

사업이 잘될 때 돈은 더 이상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나타내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필자를 증명해 주는 ‘증거’가 되어갔다. 실적이 좋은 해마다 필자는 자신에 대해 믿고 싶었던 이야기, 곧 자신이 유능하고 지혜로우며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확인받았다. 숫자는 더 이상 사업의 성과만 보고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필자의 정체성을 보고하고 있었다. 숫자가 좋아 보이면 필자 자신도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결국 필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의 답을 자신의 명함과 재무제표에 맡겨버린 셈이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외부에서는 매우 그럴듯하고 존경받을 만한 모습으로 보인다는 데 있다. 우상숭배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막중한 책임감처럼 보인다. 가족을 부양하는 것,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청지기답게 관리하는 것, 대충 일하는 것이 나쁜 간증이 되지 않도록 탁월하게 일하는 것 모두 그 자체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선한 언어가 우상이 숨기에 완벽한 장소가 될 수도 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좀처럼 “나는 돈을 사랑한다”고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의무’와 ‘책임’, ‘성실함’이라는 고상한 언어 뒤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은 이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을 주셨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수님이 우리의 ‘좋은 의도’를 먼저 측정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보물이 어디로 향하는지 살펴보면 결국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게 된다고 하셨다.

필자의 마음은 어느새 스스로 허락한 적도, 의식한 적도 없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무너짐은 형벌이 아니라 폭로였다

코로나19가 덮쳤을 때 필자는 20년 동안 일궈온 사업을 모두 잃었다. 수입과 순자산은 사실상 ‘0’이 됐다.

오랫동안 필자는 이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다. 상실이 필자의 삶에 문제를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오랜 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의 무게를 떠받치고 있던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필자의 가치를 증명해 준다고 믿었던 돈이 사라지자, 그 아래 숨어 있던 교만과 잘못된 정체성도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거역한 결과라기보다 잘못된 대상에 쏟아부은 헌신의 문제였다. 그리고 필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무너짐을 자신을 사랑할 수도 구원할 수도 없는 껍데기에 계속 묶여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징계이자 사랑으로 이해하게 됐다.

필자는 다른 사람들이 이 진실을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깨닫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두 개의 경제 시스템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필자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사업과 삶을 운영해 왔는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필자는 철저히 ‘거래 중심의 경제(transactional economy)’ 속에서 사업뿐 아니라 영혼까지 굴리고 있었다. 이 경제의 논리는 단순하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만들어낸 결과에 비례한다. 성취를 통해 자신의 자리를 얻어야 하고, 성과가 곧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 지난 분기의 실적이 좋으면 가치 있는 사람이고, 실적이 무너지면 자신의 가치 역시 흔들린다.

더 두려운 사실은 매일 아침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이러한 운영체제를 그대로 삶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이 지점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판결문을 돈으로 사들이면서도, 그 수입의 십일조를 아주 성실하게 드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하나님 나라의 경제에서는 당신이 어떤 결과를 내기도 전에 이미 당신의 가치가 확정돼 있다. 그것은 당신이 결코 스스로 지불할 수 없는 대가를 통해 주어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자리를 ‘얻어내는(earn)’ 사람이 아니라 ‘상속받는(inherit)’ 사람이다.

이 말은 곧 비즈니스가 더 이상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처음부터 사업에는 그런 질문에 대답할 자격이 없었다.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가 가벼운 이유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이 이미 은혜로 받은 가치와 정체성을 다시 얻어내기 위해 끝없이 대가를 지불하라고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가볍다.

하나님 나라의 통화(currency)는 사랑이다. 감상적인 사랑이 아니다. 아무것도 사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되돌아올 보상을 계산하지 않고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이다. 이미 모든 것을 받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흘려보내는 사랑이다.

지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

숨은 우상을 발견하고 싶다면 자신의 좋은 의도만 점검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의도는 얼마든지 훌륭할 수 있다. 필자의 의도 역시 그랬다. 대신 다른 곳을 살펴봐야 한다.

사업 실적이 처참하게 무너졌을 때 당신의 내면에서는 무엇이 일어나는가. 회의 자리에서 내놓는 그럴듯한 설명이 아니라 새벽 5시, 홀로 깨어 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를 살펴보라.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앞세우는 타이틀은 무엇이며, 다른 사람들이 그 타이틀을 알아주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도 물어야 한다.

또 자신이 실제로 누구의 인정을 얻기 위해 그토록 애쓰고 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필자의 정곡을 찔렀던 마지막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라.

만약 내일 당신의 사업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당신은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마음이 크게 흔들린다면, 어쩌면 오랫동안 숨어 있던 제단을 발견한 것일 수 있다. 그 제단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성실함 자체가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성실함은 성경이 칭찬하는 덕목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선물이다. 온 마음을 다해 일하고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 역시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필자가 그런 선하고 좋은 것들을 방패 삼아, 어느새 하나님의 자리를 침범하고 있던 다른 무언가를 일 속에 숨겨두었다는 데 있었다.

따라서 당신이 일을 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증명하기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성취를 통해 ‘얻어내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그리고 은혜로 이미 주어진 것을 ‘상속받는’ 삶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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