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
도서 「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마흔두 명이 어우러져 그리스와 튀르키예로 향했다. 눈이 아닌 손끝과 발끝, 그리고 마음으로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더듬은 10박 11일간의 뜨거운 여정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신간 『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는 AL미니스트리가 기획하고 진행한 국내 최초 ‘촉각성지순례’의 감동적인 기록을 350여 장의 사진과 23명의 생생한 순례기로 담아낸 책이다.

눈이 아닌 온몸으로 읽어낸 성경의 현장

AL미니스트리는 시각장애인 성도들이 성경의 지리를 입체적으로 익힐 수 있도록 ‘촉각 성경 지도’를 제작하며 새로운 복음의 길을 열어왔다. 이번 성지순례는 그 지도가 평면을 넘어 실제 흙과 바람이 있는 현장으로 확장된 가슴 벅찬 도전이었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 정보나 유적지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가이드북이 아니다. 미끄러운 대리석 바닥을 조심스레 딛고, 파도 소리와 바람의 냄새로 드로아 항구와 겐그레아 항구의 차이를 느끼며, 거대한 메테오라 수도원 앞에서 비시각장애인 동역자들의 환호성에 공명하는 생생한 ‘체험의 기록’이다. 눈으로 훑고 지나가는 여행이 아닌, 손끝으로 더듬고 온몸으로 머무는 깊은 영적 여정인 것이다.

연약함 속에서 피어난 인간 바울의 숨결

"그래, 목회는 그렇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면서 하는 거야! 나에게 주어진 목회 현장도 감사함으로 감당하리라!"

순례자들은 거대한 유적 앞에서 위대한 사도 바울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춰진 인간적인 고뇌와 두려움까지 마주한다. 고린도에서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고백했던 바울, 고향 다소에서 10여 년간 초야에 묻혀 무명으로 지내야 했던 바울의 광야 같은 시간은, 오늘날 사명의 길에서 남몰래 눈물짓고 좌절했던 순례자들의 아픔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캄캄한 어둠 속, 서로의 눈이 되어준 동행

책 곳곳에 담긴 순례자들의 일화는 독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울린다. 어두컴컴한 밀레도의 유적지 옆 노천카페에서 오직 소리만으로 드려진 주일예배,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은혜는 보인다”고 읊조렸던 순간은 진정한 예배의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특히 파묵칼레의 노을 앞에서 나눈 시각장애인 목사님 부부의 대화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1억이 들어도… 당신 눈을 뜨게 해주고 싶어요. 하루만이라도 볼 수 있어도 난 그렇게 해주고 싶어요." (사모님) / "난 괜찮아요. 내 몫까지 당신이 보면 되지요." (목사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순례자들은 눈으로 보는 풍경 너머, 서로의 연약함을 기꺼이 채워주는 사랑과 낮아짐을 통해 살아있는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보고 있었다.

『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는 ‘나 중심의 복음’, ‘보는 것에만 익숙해진 신앙’에 갇힌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의 지형을 새롭게 그려주는 값진 통로다.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함께 걸으며 서로의 눈이 되어주는 참된 공동체의 사랑과 거룩한 순례의 길로 흠뻑 빠져들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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