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제1정책 목표는 국가 안보, 한 치 소홀함도 없어야
튼튼한 국가 안보는 국가보훈으로 국민 통합이 선행돼야
포츠머스시는 미국의 독립전쟁 유적지를 소개하는 보스턴의 프리덤 트레일을 모방해서 포츠머스 트레일까지 만들었다. 포츠머스의 교회와 학교는 매년 9월 5일 오후 3시 47분이면 해군조선소의 경적 소리에 맞춰서 10분간 종을 울려서 포츠머스 조약을 기념한다. 포츠머스 회담 이래 이어져 내려오는 소도시의 전통이다. 뉴햄프셔주는 이미 9월 5일을 포츠머스 조약의 날로 선포하고 주정부 차원의 기념행사를 가질 만큼 포츠머스 조약에 공을 들였다.
러시아와 일본은 회담 초반부터 강하게 충돌했다. 일본 대표 고무라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보호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러시아 대표 비테는 그럴 경우 러시아의 이익이 손상된다고 반대했지만, 결국 일본의 전쟁 우위와 완강한 태도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포츠머스 조약 2조에서 러시아는 일본이 조선에서 정치, 군사, 경제상의 특별한 지위를 갖는 것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일본이 조선을 지도하고 보호할 수 있는 권리까지 인정했다.
회담 막바지까지 갈등을 벌인 것은 배상금과 사할린 할양 문제였다. 고무라는 비테에게 ‘배상금을 포기하면 사할린 남부 할양을 받아들이겠는가?’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러시아는 할 수 없이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러시아를 의지하고, 아관파천을 하고, 러시아처럼 황제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고종의 꿈은 사라지고, 열강들의 조약으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조선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었다.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동북쪽으로 60km 거리에 있는 롱아일랜드 오이스터베이의 국립공원 사가모어 힐에는 포츠머스 조약의 산파였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재임 기간 1902~1909)의 사저와 박물관이 있다. 루스벨트는 여름철에는 이곳에서 정무를 처리했기 때문에 여름 백악관으로 불린 곳이다. 루스벨트 사저에서 200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루스벨트 박물관에는 메이지 일본 왕이 선물한 일본도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준 은으로 만든 포도주병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막후에서 조율한 지휘자였다. 포츠머스로 향하는 러시아와 일본대표단을 오이스터베이에서 먼저 만나서 중재에 나섰다. 회담이 난항에 부딪힐 때는 하버드대학교 동기생인 가네코 겐타로 일본 특사와 로젠 주미 러시아 대사를 만나서 배후에서 조정해 나갔다. 루스벨트는 포츠머스 조약을 성사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1906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루스벨트의 사가모어 힐 사저 1층 노스룸에 걸린 지름 30cm가량의 태극무늬 금속제 접시 한 점은 독립을 위해서 발버둥 치던 구한말 외교의 현장을 증언하고 있다. 자원봉사자 엘튼 엘리노 씨는 1905년 사가모어 힐을 방문한 이승만이 전달한 고종의 선물이라고 했다. 고종의 측근 민영환, 한규설의 요청에 따라 미국에 온 이승만은 1905년 8월 4일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서 조미 통상수호조약에 따라 포츠머스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하와이 교민들의 청원서를 전달하며, 한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조리 있게 설명했다.
이승만은 고종의 밀사로 루스벨트를 만났지만, 외교권을 이미 일본에 빼앗긴 조선 정부는 정식으로 특사단을 파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승만은 하와이 동포들의 청원서와 조선의 독립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의 비상한 인물됨과 하버드의 인연으로 루스벨트는 잘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이승만을 만나기 일주일 전인 7월 27일 일본을 방문한 태프트 국무장관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종주권’을 인정하기로 가쓰라 총리와 맺은 밀약을 이미 승인한 뒤였다. 1902년 1월 제1차 영일동맹 당시 형식적으로나마 남겨둔 ‘한국의 독립과 영토 보전을 보장한다’는 구절은 제2차 영일동맹에서 사라졌다.
포츠머스 회담은 일본이 당시 세계를 주도하던 영국과 미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뒤, 러시아를 상대로 벌인 마무리 외교였던 것이다. 일본은 이렇게 치밀하게 전략적으로 외교와 동맹을 통해서 한반도와 만주를 접수했다.
지금도 세계는 전략적 동반자와 동맹으로 국익을 위해서 치열한 외교권을 펼치고 있다. 전문적이고 실력 있는 외교관들이 정권에 따라 대기발령 상태로 외교에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 안보를 위한 한미 연합훈련과 국군장병들의 자긍심 고취와 교육훈련에 한 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정부의 제1정책 목표는 국가 안보이다. 안보가 무너지면 인권도, 민주도, 민생도, 경제도 다 잃게 되기 때문이다. 튼튼한 국가 안보는 국가보훈으로 국민 통합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범희 목사(㈔한국보훈선교단 이사장, 6.25역사기억연대 역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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