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조이 베하르와 ‘더 뷰’,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오만한 예수’"Joy Behar, 'The View' and that arrogant Jesus)를 4월 27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아주 오래전, 미국 심야 토크쇼가 지금처럼 정치적 논쟁의 장이 되기 전, 복음전도자 빌리 그래함은 조니 카슨(Johnny Carson)이 진행하던 ‘투나잇 쇼’에 출연했다. 대화 도중 카슨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빌리, 예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신다면 우리는 또 그를 죽일지도 모릅니다.”
당시에는 다소 충격적인 말로 들렸지만,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면 오히려 예언처럼 들린다.
최근 미국 방송 더 뷰(The View)에서 진행자 조이 베하르(Joy Behar)는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을 그리스도처럼 묘사한 이미지 논란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은 ‘내가 구원자다’라고 떠들고 다니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진행자들이 예수께서 실제 자신을 구원자로 밝히셨다고 바로잡자 그는 “아니다. 예수는 훨씬 겸손하셨다. 내가 아는 예수는 이런 식으로 자기과시적인 분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한 공동 진행자가 “구원자가 자신이 구원자라고 말하는 것이 자기과시는 아니다”라고 응수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낯설지 않다. 예수 당시에도 많은 이들이 그를 오해했고, 심지어 그 이유로 그를 죽였다.
오늘도 불편한 존재로 남아 있는 예수
영국 시인 오든(W. H. Auden)은 왜 무신론에서 기독교로 돌아섰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그분이 내 꿈을 하나도 충족시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또 부처나 공자, 무함마드와 예수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다른 누구도 내 존재 전체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게 만들지 않는다.” 이것이 오늘날 부드럽고 온순한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예수상에서 종종 지워지는 부분이다.
오늘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예수는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고, 논쟁을 피하며, 늘 따뜻한 말만 하는 존재다. 그러나 복음서 속 실제 예수는 그런 인물로만 남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나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지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걸려 넘어지다’는 말은 ‘충격과 논란을 일으키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다시 말해 예수 자신이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존재라는 뜻이다.
실제로 그는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충격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불편해하는 이유는 비슷하다. 예수께서 인간을 죄인이라 부르신 것, 자신보다 다른 모든 관계를 뒤로 둘 만큼 절대적 헌신을 요구하신 것, 그리고 심판을 경고하신 것은 여전히 거슬리는 메시지다.
무엇보다 죄를 용서할 권세가 자신에게 있다고 하신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처럼 들렸다.
오늘 예수께서 어떤 도시에 들어오셔서 사람들이 “구원자가 오셨다”고 외친다면, 당시 사람들처럼 “당신 제자들을 조용히 시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의 가족이 한때 그를 두고 “정신이 나갔다”고 했던 것처럼 오늘도 누군가는 그를 광인으로 볼 수 있다. 혹은 당시 반대자들처럼 “귀신 들렸다”고 말할 수도 있다.
특히 자신을 하나님과 하나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선언은 지금도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예수의 말씀들이 여전히 인간의 자존심을 흔든다는 데 있다. 성경은 그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라고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그는 반대를 받을 표적으로 예언되었다. 그래서 그는 멸시받고 배척받는 종으로 묘사된다.
오든이 말했듯,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여전히 그를 십자가에 못 박고 싶어 하는 충동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오실 때는 다르다
조니 카슨이 “예수가 다시 오면 또 죽임당할 것”이라 말했을 때, 빌리 그래함은 매우 진지하게 이렇게 답했다: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랑으로 오셨지만 다음에는 권능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때는 누구도 그를 해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단지 역사적 인물이나 문화적 상징 정도로 축소하면 비판하거나 재정의하기 쉽다. 하지만 그의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예수를 오만하거나 자기중심적인 존재로 단정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말투였는가, 아니면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은, 그의 말씀이 지닌 권위 자체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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