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식 선교사
주재식 선교사

따가운 불볕이 내리쬐는 남미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처음 밟는 이 미지의 땅, 소란한 대도시 한복판으로 의료복음선교의 부르심을 따라왔다. 그 깊은 뜻을 다 헤아리기도 전에 순종함으로 옮긴 발걸음이었다. 이곳에서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아픈 현실 앞에서, 나를 이 땅으로 보내신 주님의 계획을 다시금 감사로 받게 된다.

진료소가 마련된 교회는 육중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경계에는 커다란 철제 정문을 지키는 오십 대의 중년 남자가 있었다. 그는 늘 문 곁에 서서 고통스러운 얼굴로 들어오는 이들과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나가는 이들을 묵묵히 지켜보던 ‘파수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환자로 진료소를 찾아왔다.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온 복부의 딱딱하고 쥐어짜는 듯한 통증 때문이었다. 기도를 담은 치료가 끝난 직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는 곧바로 교회 안으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배를 보여주며 통증이 사라졌음을 외쳤다. 기쁨에 가득 차 아내에게 전화를 걸던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지친 파수꾼의 것이 아니었다.

며칠 뒤, 그는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다시 찾아왔다. 암과 발목 부상으로 걷지 못하게 된 친구 할머니를 도와달라는 간절한 요청이었다. “주님은 그분을 고쳐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의 말에는 이미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얼마 후, 보행기 없이 걷게 된 할머니의 영상이 교회에 공개되었을 때 모두가 환호했다. 더 도울 약이 없느냐는 그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나는 답했다. “내가 가진 약보다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능력이 지금 이곳에 계십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고백해야 할 선교지의 유일한 진리였다.

사역을 마치고 떠나던 날, 그는 정문 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끌어안고 울며 배웅하던 그의 얼굴은 처음 만났던 어두운 표정의 파수꾼이 아니었다. 생업을 위해 철문을 지키던 사람이 이제는 주님의 일을 기쁨으로 증거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육신의 고통에 갇혀 있던 영혼을 자유케 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선교지에서 다시금 목도한다. 나는 다만 부르심에 순종하여 허락하신 은혜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울타리의 철문을 지키던 파수꾼에서 은혜의 파수꾼으로 변화된 그의 환한 미소 속에서,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더 깊이 만난다.

주재식 선교사(세계 순회 의료복음선교사, 한의사,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총연) 캐나다 노회 파송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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