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젠트젠 프랭클린 목사의 기고글인 '예수의 십자가는 오늘도 깨어진 삶을 다시 회복시킨다'(The cross of Jesus still puts broken lives back together)를 24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젠트젠 프랭클린 목사는 다지역 캠퍼스를 운영하는 교회인 프리 채플(Free Chapel)의 담임목사이며, 젠트젠 프랭클린 미디어 사역(Jentezen Franklin Media Ministries)의 설립자이다. 또한 그는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성금요일(Good Friday)은 우리가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도록 초대한다. 그것을 단순한 상징이나 익숙한 종교적 이미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깨어짐이 하나님의 회복의 능력과 만나는 자리로 바라보게 한다.
우리는 흔히 십자가 사건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시선으로 이해해 왔다. 복음서 기자들은 그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가운데에는 예수님이 계셨고, 양옆에는 두 강도가 달려 있었다. 종교 지도자들은 조롱했고,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 흩어졌다. 그 장면은 패배처럼 보이고, 실패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또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시편 22편에서 다윗은 예언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묘사하며 십자가의 깊은 고통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는 황소들이 달려드는 모습과 사나운 개들이 둘러싸는 모습을 묘사하며 그 잔혹함을 표현한다. 실제로 들짐승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채찍에 찢긴 몸과 손과 발에 박힌 못, 옆구리를 찌른 창은 그 고통을 충분히 그렇게 느끼게 했다. 십자가의 고난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감당해야 했던 극심한 고통이었다.
그 고통의 한가운데서 중요한 장면이 펼쳐진다. 한쪽 강도는 예수님을 조롱했지만, 다른 한 강도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았다. 그는 가시관을 쓰고 피 흘리며 매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며 여전히 “주여”라고 부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왕처럼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그 안에서 왕을 보았다. 손에 못이 박힌 왕, 죽어가지만 여전히 통치하시는 왕이었다.
그 강도는 놀라운 요청을 한다. “주께서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여기서 ‘기억하다’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단순한 기억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해체된 것을 다시 하나로 모으다’라는 뜻을 포함한다. 즉 ‘찢어진 것을 다시 이어 붙이다’는 의미다.
그 강도의 고백은 이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십자가와 내 삶이 나를 산산이 무너뜨렸습니다. 죄가 나를 조각내어 버렸습니다. 나는 모든 선한 것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주께서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다시 온전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은 놀라운 은혜로 응답하신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 순간 예수님은 십자가의 목적을 선포하셨다. 죄가 찢어 놓은 것을 회복하시기 위해 오셨고, 분리된 것을 다시 하나로 잇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이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을 돌아보면 인간이 본래 어떤 존재였는지를 볼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였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그 관계는 깨어졌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분리가 생겼다. 불타는 칼이 그 길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은 관계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십자가는 그 단절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골고다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이 찢기고 피가 쏟아지도록 허락하셨다. 성경은 생명이 피에 있다고 말한다. 피가 몸에서 분리될 때 죽음이 찾아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이 산산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당하셨다. 그러나 그 희생을 통해 우리는 다시 회복될 길을 얻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성찬이 갖는 깊은 의미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요소를 받는다. 떡은 그분의 몸을 상징하고, 잔은 그분의 피를 상징한다. 십자가에서는 몸과 피의 분리가 죽음을 의미했지만, 우리가 떡과 잔을 함께 받을 때 우리는 생명을 선포한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주님, 내 삶에서 찢어진 것을 다시 이어 주십시오.”
그분의 몸과 피를 통해 죄 사함이 주어지고, 상처 입은 삶이 치유되며, 묶인 것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삶 속에서 산산이 부서진 느낌을 경험한다. 어떤 이들은 삶의 사건들로 인해 무너졌다고 느끼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선택 때문에 깨어졌다고 느낀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졌다고 느끼거나, 평안과 소망에서 분리된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십자가가 전하는 진리는 분명하다. 예수님은 오늘도 기억하신다. 오늘도 찢어진 삶을 다시 이어 붙이신다. 십자가 위 강도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은혜의 능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은혜는 우리가 완전해진 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의 우리를 만나 회복시킨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 혹은 성찬의 자리로 나아갈 때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내 삶 가운데 찢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영역이 있는가?”
그 해답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깨어진 것은 영원히 깨어진 상태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 십자가를 통해 다시 이어지고, 회복되며, 구속된다. 그래서 십자가는 오늘도 여전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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