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시크교 인류학자가 설명하는 하나님이 위대하게 이해된 과정'[How God got so great (according to a Sikh anthropologist)[를 2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오늘날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이처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본 적이 있다면, UC 데이비스(UC Davis) 교수이자 시크교(Sikh) 출신 인류학자인 만비르 싱(Manvir Singh)이 최근 『뉴요커(The New Yorker)』에 기고한 「How God Got So Great」라는 글에서 그 설명을 제시한다.

최근 『Shamanism: The Timeless Religion』을 집필한 싱은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이 되기 전, 야훼(Yahweh)는 엘(El)이라는 신이 지배하는 다신교적 체계 안에서 종속적인 존재였다. 엘은 흰 수염을 가진 신들의 왕으로 고대 레반트 지역 전반에서 숭배되었으며, 그의 배우자 아세라(Asherah)와 함께 바알(Baal)이라는 폭풍의 신, 얌(Yam)이라는 바다의 신, 그리고 지하 세계의 통치자 모트(Mot)를 포함한 여러 신들의 집회를 다스렸다.”

싱은 이어 “엘이야말로 이스라엘 민족의 원래 수호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야훼는 천둥과 비를 동반한 날씨와 전쟁의 신으로, 사해 너머 산악 지대와 연관된 존재였으며 기원전 1천 년 무렵 엘을 대신해 이스라엘의 최고 신으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설명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에게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싱은 하나님 신앙의 핵심 의미가 신학적 진리라기보다 사회적·정치적 기능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강한 집단 정체성과 도덕적 결속을 형성하고 대규모 협력을 가능하게 하며, 이러한 기능이 기독교와 이슬람의 세계적 확산을 설명한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의 가치는 하나님이 궁극적 실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형성하고 집단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 된다. 즉 하나님이 위대하게 된 이유는 사회적 필요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실제로 위대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싱의 주장에 나타난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그의 분석이 신적 계시 가능성을 배제하는 자연주의적 전제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세속 인류학자로서 싱은 종교를 사회적 진화의 산물로 이해하며 하나님이 실제로 자신을 계시했다는 가능성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이 창조주이며 역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셨고 성경을 통해 점진적으로 계시하셨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인간 문화가 만들어 낸 개념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이자 궁극적 실재라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신교에서 발전했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싱은 초기 이스라엘 종교가 다신교였으며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야 유일신 사상이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매우 초기부터 핵심 진리로 제시한다. 신명기 4장 35절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이가 없느니라”고 선언하며, 이사야 45장 5절에서도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고 말한다. 물론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 숭배를 행했던 사실은 성경에서도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이 이스라엘의 신앙 자체가 다신교였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엘(El)’이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히브리어에서 ‘엘’은 고유명사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의미하는 칭호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신을 의미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자료 역시 성경의 하나님이 엘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세 번째 문제는 종교를 단순히 사회적 결속의 기능으로 환원하는 접근 방식이 가장 중요한 질문을 회피한다는 점이다. 싱은 하나님 개념이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고 협력을 촉진하는 사회적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며 도덕적 질서 역시 하나님의 본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즉 신앙은 단순한 사회적 기술이나 정치적 상징이 아니라 궁극적 진리에 대한 선언이다.

싱은 글의 마지막에서 종교적 결속이 다원주의 민주주의 사회와 긴장 관계에 있다고 말하며, 하나님 없이도 도덕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과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무신론자들조차 하나님 없이 절대적 도덕 기준을 확립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나님이 존재할 때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책임, 그리고 하나님의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개념이 가능해진다.

하나님이 없는 세계에서는 결국 각 개인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수많은 ‘작은 신’이 등장하게 된다. 역사 속에서 이러한 상황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싱의 설명은 종교가 자연적으로 진화했다는 전제를 가진 학문적 접근에 기반한다. 이러한 관점은 신적 계시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종교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단순한 사회적 구조나 도덕적 신화가 아니라 궁극적 실재에 대한 주장이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기독교가 어떤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참인가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질문이 하나님이 왜 위대한지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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