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파키스탄 라호르 고등법원이 기독교 부부가 최소 2년 이상 별거한 경우 이를 이혼 또는 법적 별거의 사유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음을 10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번 결정은 파키스탄 기독교 공동체가 오랫동안 겪어 온 이혼 절차의 법적 장벽을 완화할 수 있는 중요한 판례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지난 6일 라호르 고등법원 자와드 하산(Jawad Hassan) 판사가 내렸다. 법원은 앞서 하급 법원이 기독교 남성의 이혼 소송을 기각한 판단을 뒤집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명령했다. 재판부는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내며 ‘유기(별거)’를 포함한 기독교 이혼법 규정을 적용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 사건은 샤로즈(Shahroz)로 알려진 기독교 남성이 제기한 소송에서 시작됐다. 그는 아내 타레자(Tareeza)가 간통과 학대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법적 별거를 신청했지만, 하급 법원과 항소 법원은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 “2년 이상 별거는 이혼 사유 될 수 있다”
CDI는 고등법원 심리 과정에서 부부가 최소 2년 이상 별거 상태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아내 역시 법정에서 별거 사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상황이 법적으로 ‘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자와드 하산 판사는 판결문에서 파키스탄 기독교 이혼법(Christian Divorce Act 1869)이 유기를 명확한 혼인 파탄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법은 배우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 배우자를 버리고 2년 이상 별거 상태가 지속될 경우 법적 별거를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판결문은 유기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여기에는 실제 별거 상태의 존재, 혼인 관계를 끝내려는 의도, 상대 배우자의 동의 없는 이탈, 정당한 사유의 부재, 그리고 최소 2년 이상의 기간 경과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하급 법원이 관련 법 조항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으며 종교 자유와 관련된 헌법적 권리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파키스탄 헌법 제20조는 시민이 자신의 종교를 자유롭게 신앙하고 실천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재판부는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개인법에 따라 혼인 문제를 해결할 권리 역시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고등법원은 가정법원이 새로운 쟁점을 설정하고 ‘별거에 따른 유기’ 여부를 포함해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명령했다.
기독교 이혼법 해석 개선 위한 사법 지침도 제시
이번 판결에는 기독교 가족법 사건을 처리하는 하급 법원의 절차 개선을 위한 행정 지침도 포함됐다.
재판부는 펀자브 주 지방 사법 행정 책임자에게 판결문을 주 전역의 판사들에게 배포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기독교 이혼법이 향후 재판에서 정확하게 적용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또한 펀자브 사법 아카데미에 판사들을 대상으로 기독교 이혼법과 종교 자유 관련 헌법 조항을 교육하는 워크숍과 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식민지 시대 법률이 만든 이혼 장벽
CDI는 이번 판결은 파키스탄에서 기독교인들이 이혼을 추진할 때 겪어 온 오랜 법적 어려움도 다시 조명했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의 기독교 이혼은 여전히 1869년 영국 식민지 시기에 제정된 기독교 이혼법에 의해 규율되고 있다. 이 법은 특히 남성이 이혼을 신청할 경우 배우자의 간통을 입증해야 하는 등 매우 제한적인 사유만 인정해 왔다.
또한 간통이 이혼 사유로 제기될 경우 상대 배우자와 함께 간통 상대까지 공동 피고로 지정해야 하는 절차가 요구돼 실제 소송 진행이 매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많은 기독교 부부가 이미 파탄난 결혼 관계를 끝내기 위해서도 간통을 주장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상당수 사건이 절차상의 문제로 기각되기도 했다.
파키스탄 법원은 과거에도 이러한 문제를 일부 완화하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2016년 라호르 고등법원은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정권 시절 제정된 조례로 제한됐던 기독교 이혼법 제7조를 복원했다. 이 결정은 법원이 기독교 이혼 사건에서 보다 폭넓은 혼인 파탄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독교 법률가 “종교 자유와 소수자 권리 강화 판결”
파키스탄의 기독교 인권 변호사 라자르 알라 라카(Lazar Allah Rakha)는 이번 판결을 환영하며 "진보적이고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기독교 시민이 이혼이나 법적 별거를 요청할 권리 역시 헌법 제20조가 보장하는 종교 자유의 일부"라며 "하급 법원이 기독교 이혼법 제10조와 제22조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으며 잔혹 행위나 별거와 같은 사유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됐다"고 지적했다.
라카 변호사는 고등법원이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낸 결정이 고정관념이 아닌 합리적 판단에 기반한 판결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판결문을 판사들에게 공유하고 사법 교육을 강화하라는 지침 역시 향후 기독교 혼인 사건에서 법 적용의 일관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만 파키스탄의 기독교 결혼 및 이혼 법 체계가 여전히 현대 가족법 기준에 맞게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권 활동가 메리 제임스 길(Mary James Gill) 역시 이번 판결을 환영하며 종교 자유와 성평등 측면에서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결정이 기독교 가정뿐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공정성과 존엄을 반영하는 개인법 제도를 마련하는 데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파키스탄의 기독교 인구는 2023년 국가 인구 조사 기준 약 2억4150만 명 인구 가운데 약 1.37%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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