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웬델 빈슨의 기고글인 ‘극우 진영에서 확산되고 있는 반유대주의적 적대감은 보수 진영이 반드시 맞서 저지해야 할 문제다’(Rising anti-Jewish animus on the far-right must be resisted by conservatives)를 2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웬델 빈슨은 미국 전역과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지역사회에 생필품 지원과 재난 구호를 제공하는 교회 역량 강화 네트워크인 시티서브 인터내셔널(CityServe International)의 공동 설립자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미국 사회의 양극화와 분열을 두고 수많은 논평가들이 이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40년 넘게 목회자로 섬겨온 필자로서는, 점점 더 초당적으로 번지고 있는 한 가지 심각한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바로 반유대주의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오래된 편견은 이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노골적인 형태와 은밀한 형태를 가리지 않고 양당 모두에 깊이 스며들고 있다.
최근 있었던 터커 칼슨과 닉 푸엔테스의 인터뷰 이후에도, 이 나라에서 커지고 있는 반유대적 정서가 오직 ‘각성한 진보 진영’에서만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안타깝게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물론 사실인 부분도 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치명적인 학살 이후, 미국의 명문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진 친(親)하마스 시위는 정치적 좌파에 의해 주도됐다. 민주당 소속 존 페터먼 상원의원이 반이스라엘 시위를 강하게 비판했다가 같은 당 내부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은 일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터커 칼슨이 자신의 팟캐스트에 극우 성향의 신나치 극단주의자 닉 푸엔테스를 초대하고, 그가 “미국을 하나로 묶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조직화된 미국 내 유대인들”이라고 주장했음에도 이를 반박하지 않았을 때, 반유대주의가 정치 스펙트럼의 양극단 모두에 존재한다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많은 보수 인사들은 이러한 발언을 강력히 규탄했다. 텍사스주 공화당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는 이를 “극도로 위험한 발언”이라고 일축했다.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위원회 역시 보수 진영을 향해 “자기 진영 내부에 있는 이 독을 직시하라”고 경고했다. 벤 샤피로는 지난달 TPUSA의 AmFest 현장에서 터커 칼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까지 했다. 그는 “닉 푸엔테스는 사악한 트롤이며, 그를 부각시키는 행위는 도덕적 무능의 표현”이라며 “터커 칼슨이 바로 그런 일을 했다”고 말했다.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인사들은 당파를 불문하고 이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동시에, 확산되는 반유대 증오의 물결에 맞서 일관되고 담대한 친유대적 연대와 선의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 모범은 이미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유대교 공동체와 기독교 신앙 공동체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는 진정성 있는 연대다.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에 과거의 아픈 역사가 있었음에도, 오늘날 이 두 신앙 공동체가 서로를 보호하고 지지하려는 헌신은 깊은 인상을 준다.
이스라엘에서 2023년 10월 7일 이후 대규모 구호와 재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우리 슈타인버그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곳에서는 매우 특별하고 독특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끔찍한 사건 이후,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돕기 위해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10월 7일 이후,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돕기 위해 기록적인 수준의 기부를 이어갔다. 그 이전부터도 헌신적인 기독교인들은 전 세계 소외된 유대 공동체를 위한 인도적 지원과 안보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후원해 왔다. 지난해 9월에는 수십 개의 기독교 교단과 지도자들이 ‘스탠드 업 선데이(Stand Up Sunday)’에 참여해 차별에 직면한 유대인들과 연대했다. 또한 전국의 목회자들과 기독교 비영리 단체 지도자들은 반유대주의에 맞서는 옹호 활동을 대폭 확대했다.
슈타인버그는 “이 모든 것은 더 깊은 연대와 더 큰 소명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라며 “특히 다시금 우리를 갈라놓으려는 많은 냉소적 목소리들이 존재하는 이 시점에서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필자의 사역 파트너들 역시 이스라엘에서 활동 중이다.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이 주민 네 명 중 한 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키부츠 니르 오즈에서는 보안 인프라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가자 지구에서 불과 3마일 떨어진 에인 하베소르에서는 새로운 스포츠 단지 건설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 시설은 아이들이 다시 평범하고 자유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아이들은 그 끔찍한 날, 20시간 넘게 가족과 함께 대피소에 숨어 언제 테러리스트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떨고 있었다.
홀로코스트 이후 최악의 유대인 학살 사건을 겪은 이후,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유대 형제자매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했고, 행동으로 응답했다. 그들은 나섰고, 실제로 도왔다.
물론 비극적으로도, 일부 좌파 활동가들은 캠퍼스에서 반유대 폭력과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 동시에, 극우 반유대 세력 역시 소셜미디어를 통해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시끄럽기는 해도 소수에 불과하다. 정치적 성향을 초월해 인류의 가장 절박한 순간에 서로를 돕고자 하는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이 훨씬 더 많다.
분명히 해야 할 점은, 보수 진영의 지도자들이 극우 소수의 증오 선동을 외면하거나 중립을 가장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젊은 남성들을 위험한 이념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
반유대 극단주의자들이 주목을 받기 위해 싸우는 동안, 책임 있는 지도자들은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 이는 어디에서든 악을 악이라 부를 수 있는 도덕적 리더십, 그리고 이미 전 세계 곳곳에서 실천되고 있는 기독교와 유대인의 놀라운 연대를 기꺼이 조명하는 리더십을 의미한다.
그러한 본을 따른다면, 가장 큰 목소리는 증오를 퍼뜨리는 이들이 아니라, 굳건한 소망 가운데 함께 서 있는 이들이 될 것이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